"스몸비족은 횡단보도에서 위험합니다. 안전하게 다니세요."
우리 집 길에 이런 식의 현수막이 적어도 대여섯개는 되는 듯 하다. 처음에 이사왔을때는 크게 눈여겨 보지 않다가 미디어 리터러시 강의를 하면서 현수막을 유심히 읽어 보았고 스몸비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스몸비는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느라 신호와 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종종 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우리 집은 초등학교 앞이라 더욱 주의를 기울이라는 현수막이 인근 횡단보도마다 붙어있었던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길을 걸으면서 그렇게 스마트폰을 많이 본단 말인가? 좀 의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심도 잠시. 빨간 불에서 초록 불로 바뀌는 그 짧은 순간에도 초등학생, 어른 할 것없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앗. 나를 포함해서군.
돌이켜 생각해보니 기자를 했던 내내 스몸비족의 대표적인 모습이 나였다. 당장 확인해야 할 정보들이 매일 매일 넘쳐났고, 회사 메신져도 모바일용이 있었기에 중간중간 지시 내용이 있는지 눌러봐야 했다. 한 번은 스마트폰에 심취하다 별 생각없이 차도를 건너려고 하다가 빵하는 경적소리를 들었던 일들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하면서 다니던 시절이라 그런게 머 대수냐 하면서 크게 게의치 않았다. 그래서 기억 저편에서 아예 지워진 순간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초등학생들 마져도 스마트폰에 푹 빠져서 살게 될 줄이야.
학교에 강의를 가면 특별한 쉬는 시간을 맞는다. 쉬는 시간이 다가오면 기지개를 켜고 더 집중력이 또렷해지는 학생들.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일이 정말 힘들긴 하겠지라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반 대표 학생이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나왔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렸다. 나도 덩달아 따라 가봤다. 무슨 상황이지?
이거는 내꺼구, 이거는 너꺼 맞지? 이런 대화가 오가면서 아이들이 빠르게 스마트폰을 찾아갔다. 수업중에는 반납하고 쉬는 시간에 찾아가는 시스템이다. 또 어떤 학교는 수업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의 중 "스마트폰으로 주로 무얼 하세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유튜브요, 게임이요 같은 대답을 했다.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요?"에는 킥킥 웃으며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열심히 학습에 도움되는 작업을 하는 학생들도 있으리라.
우리나라 학교는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왜이렇게 스마트폰 사용이 자유로운 걸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등하굣길에서의 안전이 꼽힌다. 스마트폰이 유행하기 전 시절에 어린 아이를 유괴를 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고 바바리맨 등 변태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도 많았다. 나도 바바리맨을 만난적이 있다. 그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몇 년을 두고 몸서리치곤 했다.
부모들은 스마트 폰에 위치 추적기를 달기도 하고, 키즈용 앱 또는 유해 사이트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등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그냥 전화기가 아니라 안전을 담보로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 역할을 한다.
부모들의 스마트폰에 대한 니즈가 아무리 높다해도 법과 제도가 받침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이슈가 나올 때 마다 “학교 내 휴대전화 전면 사용 금지는 인권침해”라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 두가지 사안이 맞물리면서 학생들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스마트폰 사용이 급증하고, 학부모-학생과 갈등을 겪은 교사들의 자살하는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교내의 자유로운 스마트폰 사용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어느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버젓이 교단에 서 있는데도 동영상을 함부로 찍는 일이 발생했다. 학교 폭력을 담은 동영상이 빠르게 유출되기도 했다. 선생님의 훈계에는 "자, 여기에다 얘기해보세요. 다 찍어버리게"하면서 협박을 하는 일도 생겨났다.
강력한 전염 바이러스인 코로나19는 학생들을 집에만 있게 했다. 그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친구들과 사귈 기회가 없어지자 스마트폰에 더욱 의지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수면위로 올라온다. 우리나라 10대 스마트폰 보유율은 95.9%로 100%에 가깝다. 그중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2022년 기준 40.1%다. 코로나19 기간에 더 심화된 것이다. 교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놓고 선생님-학생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나 교육부는 그렇다할 입장이 없다.
해외는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관리에 오히려 엄격한 편이다.
프랑스, 영국 등에 이어 네달란드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 중국 등도 교내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 국가의 교육부는 "학생들의 스크린 중독이 심각하다"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등하교에만 스마트폰을 허용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봐도 스마트폰의 긍정적인 측면 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주는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부정적인 영향은 학습 집중력이 떨어지는게 가장 크다. 이어 SNS 및 게임 중독, 뇌발달 등 건강 저하 등 부작용을 심각하게 본다.
초등학생을 둔 미국의 한 가정을 들여다 보자.
저녁 식사를 마친 4명의 가족들이 거실에서 TV를 틀어 놓은 채로 태블릭PC도 하고 스마트폰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아버지가 "얘들아, 이제 잘 시간이야. 벌써 9시가 됐네"라고 하자, 초등생 아이 둘은 자신이 쓰던 모든 디지털 기기를 들고 안방으로 향한다.
금고 같이 생긴 곳에. 실제 금고일 수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 자신이 썼던 태블릿PC, 스마트폰, 노트북을 모두 집어 넣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더 쓰고 싶지 않을까. 순수히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한 삶의 루틴인듯 하다. 부모는 안방의 디지털 기기 금고(?)를 잠그고 그들도 잠자리에 든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미국의 가정은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대한 규칙이 존재한다. 사용시간, 이용하는 컨텐츠, 반납시간 등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의논해서 정한다. 규칙만 잘 따른다면 다른 시간에 사용하는 것을 자유롭게 허용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불만도 크지 않다.
영국의 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난 후 성적 하위 20% 학생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자극적인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특성을 지녔기에 학습에 더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아예 쓸 수 없는 환경이 되자, 뇌도 서서히 적응하면서 학습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중국의 교육부도 초·중·고 모두 교내 스마트폰을 금지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지 말 것을 권고한다. 학교가 먼저 나서서 스마트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나라 학교는 카톡 등 스마트폰을 이용해 안내문이나 숙제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그 원인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부재에서 찾는다. 특히 한참이나 뇌발달이 이루어지고 학습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경쟁하듯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이 환경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다. 그러한 일들을 제대로된 설명이나 교육없이 무조건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른인 내가 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 평생을 스마트폰과 미디어에 중독된채 건강을 잃는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준다면 학생들도 대부분은 찬성할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학생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인터뷰하는 학생들은 교내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 하는 것을 두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의 컨트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알기 때문에 그들도 교육부와 학교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따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일부는 더 사용하고 싶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정에서도 관리 감독을 동시에 하면서 아이들은 그러한 루틴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통해 스마트폰 디톡스, 디지털 디톡스를 해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더 건강하고 행복해집니다."라는 말이 허공에서 맴도는 느낌은 나뿐 일까. 스마트폰은 재미있는데 왜 디톡스를 해야 하나요?라고 묻던 한국 어른들이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