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놀라셨죠?
나는 쉽게 깜짝 놀라는 성격이다.
그런데 놀라는 것도 선택적으로 한다.
강 주변을 걷다가 뱀을 만나도 안 놀라고,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와도 안 놀라는데
사람한테만 놀란다.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엄마라도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말을 걸거나,
거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안방에서 나타나면
화들짝 놀란다.
너무 놀라면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하도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풍 맞은 것처럼" 공중에 날아오른다.
내가 왜 이렇게 잘 놀랄까 했더니,
우리 아빠 유전자가 그대로 온 것이었다.
아빠는 예전에 출근 준비하실 때
내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귀신인 줄 알았다며
"왁!" 또는 "우억!"하고 놀라셨다.
그래도 요즘은 적응하셔서
쿨하게 "회사 다녀올게" 하신다.
한참 대학원 준비를 하던 때
지하철로 학원을 왔다 갔다 했는데
내가 길을 잘 알게 생긴 관상인지
거의 매일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너무 자주 붙잡혀서 깜짝 카메라 인가 의심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들어왔는데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내 팔뚝을 꽉 잡으셨다.
나는 갑작스러운 팔뚝 쥐어짜기에 깜짝 놀라서
작게 꽥 소리를 지르고 장풍 맞은 아가씨처럼 또 날아오르고 말았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보셨는지
나의 장풍 액션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시며
"아이고, 아가씨 많이 놀라네"하시며
오히려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또 길치인 나는 최선을 다해 길을 안내해 드렸다.
-내가 왜 길을 잘 찾게 생겼는지 또다시 의문을 가지며
빠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