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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삐용 Dec 19. 2024

장풍 맞은 지하철 아가씨

할머니, 놀라셨죠?

나는 쉽게 깜짝 놀라는 성격이다. 


그런데 놀라는 것도 선택적으로 한다. 

강 주변을 걷다가 뱀을 만나도 안 놀라고,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와도 안 놀라는데

사람한테만 놀란다.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엄마라도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말을 걸거나,

거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안방에서 나타나면

화들짝 놀란다. 


너무 놀라면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하도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풍 맞은 것처럼" 공중에 날아오른다. 


내가 왜 이렇게 잘 놀랄까 했더니,

우리 아빠 유전자가 그대로 온 것이었다. 


아빠는 예전에 출근 준비하실 때 

내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귀신인 줄 알았다며

"왁!" 또는 "우억!"하고 놀라셨다. 

그래도 요즘은 적응하셔서 

쿨하게 "회사 다녀올게" 하신다. 


한참 대학원 준비를 하던 때 

지하철로 학원을 왔다 갔다 했는데

내가 길을 잘 알게 생긴 관상인지

거의 매일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너무 자주 붙잡혀서 깜짝 카메라 인가 의심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들어왔는데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내 팔뚝을 꽉 잡으셨다. 

나는 갑작스러운 팔뚝 쥐어짜기에 깜짝 놀라서

작게 꽥 소리를 지르고 장풍 맞은 아가씨처럼 또 날아오르고 말았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보셨는지

나의 장풍 액션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시며

"아이고, 아가씨 많이 놀라네"하시며 

오히려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또 길치인 나는 최선을 다해 길을 안내해 드렸다. 


-내가 왜 길을 잘 찾게 생겼는지 또다시 의문을 가지며

빠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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