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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삐용 Dec 18. 2024

 층간소음이 나를 위로하다니

요즘은 잘 지내시나요?

우리 집도 다른 아파트들처럼 벽이 얇아

층간소음이 유독 심한 날이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귀를 쫑긋 집중하면

이웃집 아들과 엄마가 싸우는 것이 들리고,

마룻바닥에 귀를 대고 누우면

어느 집의 텔레비전 소리도 

가까이 있는 것 같이 들린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한창 공부를 할 나이었어서

층간소음이 미웠는데,

익숙해지려던 참에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생겼다. 


천장 쪽에서 어떤 남자가 

내가 당시에 좋아하던 미국 팝송을 

슬플 정도로, 소울 가득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가 몇 소절 부르는 것을 듣다가

잠시 소리가 멈추었을 때 

천장을 바라보며 다음 소절을 이어 불렀다. 


'내가 이어 부르면 소름 끼쳐서 멈추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멈춘 소절에 이어 그 남자가 또 불렀다. 

어느새 하고 있던 숙제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아 이 사람도 공부하느라 속이 속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이 와서

한 번 더 이어 부르고 노래를 마쳤다. 


이때까지 층간소음의 가해자를 

잔뜩 미워해보기만 했는데

나만 인생이 힘든 게 아니라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아 

오히려 고마웠다. 


그 이후로 노랫소리를 다시 들어보지 못했고, 

아마 그분은 이사를 간지 오래되었겠지만,

새로운 그곳에서는

목소리에 슬픔 없이 

즐거운 팝송을 부르고 있기를 기도한다. 


-그 시절 좋아하던 팝송을 흥얼거리며

빠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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