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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휴자 Apr 10. 2023

그전에는 가지 않았을 카페에 간다

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5

커버 이미지: Unsplash의 Jakub Dziubak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밥을 먹고, 식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간다. 약속 장소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을 때 근처 카페에 간다. 주말 동안 집에 있으면 마냥 늘어지기 쉬워 찾기도 한다. 이 외에 갖가지 이유들로 카페에 간다. 카페를 찾는 경우의 수가 많은 만큼, 한국에는 카페가 참 많다. 고맙게도. 체인 카페부터 개인 카페까지. 지나가며 본 뉴스에서 서너집 건너 카페라는 헤드라인을 본 것도 같다.


카페를 경험한 수만큼이나 취향은 점점 견고해졌고, 방문하는 목적에 따라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경지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오버스럽지만.

그중에서도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는 경우가 있다. 밖에 나왔는데 약속 시간이 붕 떠서 잠깐 카페에 가야 할 경우, 새로운 기분을 내고 싶어 찾아가는 경우,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를 가고 싶은 경우.


이렇게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는 경우에 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일찍이 배제가 되는 카페가 있다. 개인적인 취향이라 논리적으로 말에 담을 순 없지만, 그간 살아오며 쌓아 온 경험의 영역 안에서 무언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없으면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는 건, 특별한 경험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아마도, 취향 참.



‘뭔 카페 하나 가는 데 따지는 게 많냐, 뭘 안다고 이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쓰면서도 나도 나에게 저런 의문을 드문드문 던지고 있으니.



사실, 저렇게 갔던 건 좀 지난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다섯 번에 두 번은 그전에는 가지 않았을 카페에 간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느긋이 앉아 천천히 음미한다. 커피도, 공간도 함께.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게 있나, 재밌는 게 있나, 좋은 게 있나 둘러본다. 참 피곤한 놈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갔던 카페 중, 개인적으로 좋은 느낌을 받았던 곳이 몇 있다. 그중 한 곳은, 머리가 희끗한 주인이 눈길을 끄는 카페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주문과 동시에, QR 체크인(코로나가 한창때라 QR 체크인은 필수였다)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카페보다는 커피점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두 단어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한다면 사실 별 차이는 없겠지만, 내 느낌이 그랬다. 가사 없는 편안한 음악이 공간에 흐른다. 고개를 돌리니 창이 있는 곳에 화분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화분은 화분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지만, 머그컵이 화분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도 있었다. 감상을 하고 있자니,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Lotus가 자그마한 갈색 트레이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졌다. 깊고 느긋한 시간. 생각은 이리저리 맥락 없이 뻗어나간다.


'평범하다는 건 편안하다는 의미를 일부분 안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서 여기는 평범하지만 편안한 카페인 거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던 것 같다. 아, 조금 흠이라면 스피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 정도. 가끔 음악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이것도 맛이지’했다.






알고리즘의 폐해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알고리즘을 통해 나와 잘 맞는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인 일이지만, 그 편리한 틀에 갇힐 수도 있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덧붙여 그 틀, 그 편견에 갇히는 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한다고.


이 기사에서도 나왔지만, 아무래도 알고리즘은 취향의 편식을 만드는 게 분명하다. 까딱, 긴장을 풀었다간! 비슷비슷한 취향의 콘텐츠만 접하다 보면 균형 잡힌 생각은 어려워지고, 머릿속 곳곳에 영양가 없는 거품들이 잔뜩 끼게 되는,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결국, 그전에는 가지 않았을 카페에 가게 되었다. 이토록 헐겁고 시답잖은 생각이 내 행동의 동기라니.


자신이 경험한 세상만큼 생각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누가 그랬었던 것 같은데). 

그 말처럼 내 취향만큼 세상을 경험하고, 그 경험만큼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내 취향의 반대되는 선택을 해보고, 경험을 해본다. 속으로 내 머릿속의 영역이 조금 더 확장된 듯한 이미지를 그려본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그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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