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筆揮之 단박으로

머뭇거리지 마라. 너는 그렇다

by 이봄


남도로의 여행에서 마주하게 되는 가슴 떨리는 대상이 있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그 단단함이 이유 중 하나일 터이고, 그 둘은 곧고 곧아 회절하지 않을 성품이 있어 그렇습니다. 살짝 이유에 붙여 뱀의 발을 얹자면 한수이북 동토에선 만날 수 없는 귀함이 있겠지요. 대나무가 그렇습니다. 길을 가다 만나는 참죽은 언제나 가슴을 떨게 합니다. 그 참죽의 일생에서 성장의 기간은 30~50여 일에 지나지 않다고 합니다. "우후죽순" 응축된 삶의 에너지 죽순에 고이 담았다가 순간 파죽지세로 자라나는데 하루에 80여 cm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얼마만큼 자랄지, 그 자람에 마디는 몇 마디로 자라날지 모든 것은 이미 죽순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가 근질근질 날개 돋으면 뛰쳐나가듯 자라는 대나무는 십 년이 지나도, 거기에 또 십 년이 지나도 더장이 없지요. 키도 그렇구요, 부피도 그렇지요. 두 달여의 생장으로 평생이 갈무리 되는 특이한 녀석입니다.

묵죽|심인섭

일필휘지 一筆揮之 , 첫 호흡으로 써내려가는 글을 이렇게 얘기하는 데 대나무는 그렇게 자랍니다. 군더더기 없는 붓글씨나 군더더기 없는 대나무의 생장은 일맥상통의 교집합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군자의 나무라 칭송받고 사랑받는 이유가 그 생장의 통열함에도 한 조각이 있을지 모를 일이지요.


곧고 곧은 성품도 좋거니와 회절하지 않는 절개도 좋았겠지만 두고두고 자라나는 여타의 나무와는 달리 붓을 놀리듯이 한 호흡만으로 일생을 결정짓는 그 단호함과 간결함에 환호했을지도 몰라요. 웬지 카랑카랑한 선비의 헛기침이 대숲에서 울릴 것 같지 않나요?

묵죽|민영익

대나무는 그렇답니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대숲에 꽃이 피면 장렬한 죽음을 맞는다고 합니다. 꽃이 핀 나무만 죽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 연결된 모든 형제나무가 다 죽음을 맞는 거죠. 숲 하나가 일순 바스락 바스락 말라버려 산화되는 나무. 모든 자양분을 꽃으로 피어내고 열매도 맺기전에 목숨줄 끊고 마는 비장함이 참죽의 죽음이라 하더이다.


잔설 잦아들고 대숲에 훈풍이 넘나들면 소리도 몸짓도 채 알지도 못할 어느 날에 삐죽이 죽순이 고개를 내밀거든 하루쯤 시간을 내어보세요. 무작정 턱이라도 괴고 앉아 그 몸살같은 생장을 훔쳐보아도 좋을 듯 해요.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르는 잭의 콩나무같은 몸서리침을 목도할지 뉘라 알까요.


아마도 그 보다 호사스러운 몇 시간은 없을 겁니다.봄날의 단비, 대지를 적시고 소리도 요란하게 대숲을 스치거든 양말도 그냥저냥 신는 둥 마는 둥 달려나가 우후죽순의 찰나와 조우해도 좋겠지요. 온통 숲이 깨어나고 대나무는 달음박질 칠 겁니다. 그만큼 하늘은 뒷걸음으로 물러나 시리게 푸를 테지요. 귀도 쫑긋 세워 들어보세요.

일필휘지 선비의 헛기침을 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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