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뻑 젖었다

오래된 사진 바라보다가 그만 개울에 빠졌다

by 이봄

아들이 다녀갔다. 민족 대이동이란 설 명절을 맞았으니 너는 아비가 그리웠을 것이고, 아비는 아들이 그리웠다. 오고 가는 걸음마다 그리움 뚝뚝 눈으로 내렸을 길에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불렀겠지.

굳이 너의 이름 부르며 오라? 마라! 얘기도 없이 길마다 골목마다 '오너라, 오너라!' 말이 쌓였음을 나도 안다. 어쩌다가 떨어져 사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어미는 젖을 떼고 새끼는 어금니와 송곳니가 돋는 순차적 단계에 떨어짐도 당연이란 말이 포함되는 거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떨어졌다 다시 만나는 건 어쩌면 이렇게 얘기해도 좋을지 몰라.

'갓 지은 밥 숟가락 가득 떠서 후후 불며 먹는 거!'

그래서 우린 그리운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때 이렇게 묻고는 해.

"밥은 먹었니?"


돌이켜 보니 내게 남은 건 하나밖에 없더라고. 유명세라는 말로 회자되는 '이름'을 남길 주제도 아니고, 구멍가게 사업은 말아먹었으니 재산도 없고, 후학을 길러내는 선생도 아니었으니 제자도 없는 거야. 하기는'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했다지만 어디 이름 석자 남기는 게 그리 쉽다던가.

금수강산 풍류 절경 곳곳마다 한양사는 김 참봉에, 과천 사는 마름 놈까지 다녀감을 쪼고 새겨 차고 넘치기는 하다만, 그 어쭙잖은 이름이야 정으로 쪼고 새겨봐야 그 욕됨이 백 년을 살아남는 것일 뿐. 개 풀 뜯어먹는 공명이라도 있을 것인가 묻게도 되지.


개굴개굴 밤을 새워 개구리 운다 한들 뉘라서 도를 말하고 예를 찾을까나. 개구리울음은 그저 개구리울음이다.

후일 뎅그렁뎅그렁 요령소리로 떠나는 날, 만장이라도 바람에 나부끼길 원한다면 내 깜양을 돌아봄이 옳다. 그나마 곁에 친구 몇 남았다 치면

"친구야 잘 가라! 너는 그래도 꽤나 괜찮은 놈이었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스스로를 알고 고개를 숙였다면 아마도 그렇겠다 싶어.

억지와 떼로 남겨진 이름은 그 악취가 백 년을 씻기어도 가시지 않을 진데 자화자찬의 공덕비가 어디 비석일까. 썩어 문드러진 돌덩이지.


덩그러니 남겨진 깃털 하나 비에 젖어 울고, 깃털 하나 남겨놓고 북망산으로 날아간 비둘기의 흔적 바라만 보다가 가슴에 장맛비 내렸듯이, 아들이 주고 간 사진 마냥 바라보다가 고작 깃털 하나가 삶의 전부였던 비둘기가 꼭 나만 같기도 했다.

그렇다지만 어쩌랴. 그게 운명임을.

불린다 해서 다 이름이 아니요, 덮어썼다 해서 다 가죽이 아님을 안다면. 해서 강요되고 강제된 허울을기려는 마음만 버린다면 어쩌면 깃털 하나만으로도 공덕비에, 송덕비가 차고도 넘칠지 모를 일이다.


이름 모를 비둘기에 영면이 있으라 기원의 말을 남기고 싶었듯, 오래된 사진 찾아들고서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묻던 너의 안부의 말이 내겐 흠뻑 젖은 내 몸뚱이와도 같은 깃털이었나 보다.

뼈마디 어는 겨울에 얼지도 않는 젖은 깃털이겠다 말해도 좋겠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창동 뒷산의 품 넓은 신갈나무 알려주며 '아버지 외로울 때, 늘 바라보고 끌어안던 나무란다. 혹여라도 아비 그리우면 찾아와 가끔 아비 보듯 안아주면 좋겠구나!'했었지.

그렇게 살아도 그다지 나쁘다 싶지는 않다. 젖어도 뽀송한 흔적이 있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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