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잠들지 못했다

밤과 새벽이 뒤섞여 깜박일 때까지

by 이봄


#1

쉬이 잠들지 못했다

발소리 죽여 새벽에 이르는 골목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간 것들 대가리만 끌어안고

데굴거렸다

밤이 지나는 길은 고요했지만

모가지 잘린 어둠과 소리들

떼로 죽어 아우성쳤다


순결한 몸뚱이

뎅뎅뎅 종소리 울린다는

첫 입맞춤 꿈꾸는 입술

달뜬 마음과 여물지 못한 젖가슴

경험 없는 처녀의 모습이어야 했고

부끄럽고 새침한 시간이었다

해를 잉태하고 낳았다

새벽은 그래서

늘 아리따운 여인이어야만 했다

#2

쉬이 잠들지 못했다

희뿌옇게 동창이 밝을 때까지

절박하지도 꼭이란 이유도 없이

말들을 꺼내고 키를 재고 이름도 물으며

꽃분홍 편지지 곱게 펼쳐

너는 여기에 그래 너는 거기

그러니까 거기 구석에 빨간 옷 입은 너는

여기로 와서 그래 허리 굽히고 있어

잔소리는 깊고 마음은 어수선했다


편지 한 장 곱게 써서

어쩌면 너에게 부치고 싶었을까

밤새 부유하다 새벽이 되었을 때

편지는 구겨져 휴지통으로 날아들었다

연애편지는 늘 그랬다

얼굴이 아른거리고 목소리는 속삭였다

잡을까 말까 두근거리던 손은 또 어떻고

구겨지고 또 구겨지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갈피 없어 휴지통을 제 집 삼고

쉬이 잠들지 못했다 얘기하다

쓰지 못한 편지 한 장 곱게 남겼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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