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 꼬박 지난 편지를 보다가
호호 깔깔 자지러지던 애들을 떠올렸어.
배꼽 빠질 얘기도 없었고,
그렇게 웃기는 나도 아니었는데 애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웃었는지 몰라.
그 흔한 "왜? 나만 갖고 그래!"하는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어설픈 성대모사만으로도
애들은 오버액션으로 나를 웃게 했지.
애들도 웃고 나도 웃었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말로 포장된 역사의
희화 인지도 사실은 몰라.
그저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얘기야.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냉전이 극에 달했을 때
두 진영은 우주에서도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어.
달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 하는 따위로
사생결단 목숨을 걸고 극한으로 치닫던 때에 이런 얘기가 회자가 됐지.
무중력의 우주에서 잉크를 어떻게 하면 흘려보내
지구에서처럼 글씨를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들 수 있을까?
Nasa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을 때
소련이 첩보로 그 얘기를 접하고서 그랬다고 해.
"미친놈들, 그 돈을 왜 쏟아붓는데. 그냥 연필을 깎으면 그만인데!" 했다는 거야.
아,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에 관해
얘기하려던 건 아니야.
그런 거 있잖아. 어느 날 신이 얘기를 했어.
너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마.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말해 보거라 했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소원은 대부분 현실에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소원을 말하기 마련이지.
'저는 무엇이 되고 싶어요'라든가 아니면
'저는 타임머신을 갖고 싶어요'하는
따위의 소원 말이야.
신의 소원이 아니어도 과학으로 이루고 싶은 인간의 욕망 중 하나가
시간을 초월하는 타임머신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일 거야. 그래서 빛보다 빠른 비행체를 만들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공간을 왜곡시켜서 흘러간 공간의 뒷자락을 잡는다 거나
하는 얘기를 한다지만 그게 가능이나 하겠어.
빛보다 빠른 뭔가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래.
시간의 시작점이 어딜 것이며 흘러 당도하는 귀착점이 있기나 하냐는 것이지.
시작과 끝이 있어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인데
누구는 시간이 흐른다고 하고, 누구는 시간을 쌓인다고 해.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쌓이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의 나를 아니면, 과거의 그 시간을 만나고 싶다면
실현 가능한 연필 한 자루를 깎겠다 말하고 싶어.
우주용 볼펜이냐
아니면 그저 칼로 쓱쓱 깎으면 그만인
연필이냐 하는 선택의 얘기지.
오래된 딸의 편지를 읽다가 깔때기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물처럼 지난 시간으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빨려 들었어.
아, 나도 한 때는 저런 시간도 있었었지.
맞아, 그랬어.
반갑고 그리운 시간을 한참을 들여다보았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이미 아이가 아닌데
손에 든 편지 한 장으로 사춘기의 까뭇한 수염이 돋고, 고등학생이 된다고 설레어하던
아이들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오가는 거야.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면 가능한 타임머신이었어.
편지란 놈이 그렇더라고.
오롯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더라고.
물리학이니 뭐니 하는 첨단과 가늠할 수도 없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타임머신이 아니어도 과거로의 시간과 그 속에서
호호 깔깔 자지러지던 아이들을 만나게 한 거야.
시간여행이지. 마음 한 스푼에 우표 두 스푼
골고루 넣고 저어서
빨간 우체통에 넣어주면 때때로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티켓이 되는 거야.
간절하게 과거의 시간과 만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면
편지를 한 장 쓰는 건 어떨까 하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왕지사 쓰는 편지라면 체온마저
느낄 수 있는 손편지였으면 좋겠어.
컴퓨터의 자판으로 쓰는 글이야 깨끗하고
편하기야 하겠지만
오가는 정은 좀 그렇잖아.
간절히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그런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오늘 연필을 깎고 편지 한 장을 쓰는 거야.
아마 몇 날 며칠이 행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