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쩌다 우리는 만났을까?
오월이를 만났다
2002년 5월, 이른 더위가 거리를 달구던 날에 녀석을 만났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푸름을 더하고 진달래꽃이 뚝뚝 눈물처럼 떨어지던 날이었다. 가는 봄과 오는 여름의 경계가 모호하던 시간이었다. 소매를 걷어 더위를 식혀야 했던 시간에 녀석은 작은 종이상자에 담겨 세상에 나왔다. 호랑이 무늬가 멋들어진 녀석들 서넛이 올망졸망 두렵고 신기한 눈으로 세상을 구경하고 있을 때 초로의 노인은 연신 “고양이 사세요, 고양이!” 목청을 돋웠다. 바쁠 것 없는 점심시간을 바쁠 것 없는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던 그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상으로 나온 녀석이 만났다. 정수리 위에서 해는 빛났다. 그림자는 아이의 그것처럼 조막만 하고 아장아장 뒤뚱거리는 몸짓으로 그늘에서 그늘로 건너뛰며 사람들은 멀어져 갔다. 키 큰 은행나무가 만든 그림자는 개여울 건너는 징검다리였고 바다를 건너는 섬이었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징검다리 삼아 건너는 바다에 녀석들은 작은 종이상자 배를 삼아 마냥 출렁이고 있었다.
“할머니 얼마예요?” 묻는 말에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은 말똥말똥 동그랗게 떴을까? 문득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는 녀석이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 태어난 지 얼마나 됐나요? 건강하겠죠? 너무 어린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것저것 마구 물었을 때 이미 녀석의 운명은 결정이 되었고, 얼마냐 하는 물음은 뇌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출출한 배를 채우고서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던 그의 품에 민들레 홀씨처럼 보드랍고 간지러운 햇살이 촉촉하게 내려앉았다. 먼지를 떨어내듯 손 사레를 아무리 친다고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마치 도깨비바늘과 같은 것이었다. 늦가을 바짝 마른 수풀을 걷다 보면 따끔따끔 살갗을 찌르며 매달리는 대책 없는 도깨비바늘. 툭툭 털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워낙 질기고 사납게 매달린 도깨비바늘을 떼어내는 방법은 하나다.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잡아떼어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끊어낼 수 없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다가온 인연인데 야박하게 뿌리쳐 돌아설 그가 아니었다. 그렇게 도깨비바늘처럼 살갗을 파고든 인연으로 녀석은 오월이가 되었다.
“할머니 얼마예요?”
“사시게? 그럼 3만 원만 줘요”
흥정은 짧았다.
“비싸요 할머니. 조금만 깎아주세요”
흥정을 한다는 건 어쩐지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야옹야옹’ 우는 녀석과 눈을 맞췄을 때 녀석의 눈은 마치 맑은 물에 버들치 한 마리 헤엄치듯 반짝였고, 말갛게 갠 하늘처럼 깊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더 같이할 수 있을까?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오월이는 더는 새끼 고양이가 아니다. 한 때는 버들강아지 보드라운 털을 가졌었다. 가늘게 불어 가는 바람에도 찰랑거리며 반짝이던 털은 더는 반짝이지도 찰랑거리지도 않는다. 달달한 젖비린내 풍기며 아양을 떨던 어린 오월이는 없다. 짙은 잿빛 몸뚱이에 검고 힘찬 줄무늬가 멋들어졌던 젊은 오월이도 없다. 털은 윤기를 잃은 지 오래여서 쓰다듬는 손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새듯 짙은 호랑이 무늬는 한바탕 비 쏟아낸 구름처럼 희뿌옇다. 녀석이라고 어디 세월을 비껴갈 재주가 있을까.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 인양 거들먹거리던 수염도 성겨서 보기가 안쓰럽다.
오월이는 열여섯, 사람 나이로 치면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했다. 아니,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궁금한 그였다.
“고양이는 보통 몇 살까지 살 수 있나요?”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 열다섯 정도면 장수하는 거예요”
“아, 그랬구나. 녀석을 2002년에 만났으니 벌써 우리 나이로 열여섯이네...”
못해도 사람 나이로 치자면 일흔은 되었다는 얘기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았다고 여겼는데 오월이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이 아니었다. 사람이야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맞춰 나이를 먹고, 오월이는 저 먼 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시간으로 살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녀석의 눈에는 별들이 반짝였고, 울음 끝에는 늘 은하수 찰랑거리는 소리가 맺혔었나 보다. 별의 시간이었다. 그것도 태양과 가장 가까운 수성의 시간이 오월이의 시간이었다. 수성의 공전 주기는 약 88일, 사람의 일 년이 365일이듯 고양이의 일 년은 88일. 그러니까 오월이는 4배나 빠른 시간을 살았다. 때 이른 봄볕에 쪼르르 달려 나가 온몸으로 햇살을 반기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구나. 가장 뜨거운 심장으로 ‘가르릉 가르릉’ 햇살을 반겼었구나.
“왜? 밥이라도 줄까?”
볕 좋은 양지에 앉아 담배라도 피울라치면 어김없이 오월이가 왔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다리 사이를 오가며 온몸을 비벼가며 야옹야옹 운다. 야윈 얼굴이 얼마나 늙었는지 굳이 묻고 계산하지 않아도 나이를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배를 쓸어주었다.
“오월아, 뭐가 그렇게 좋니?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야옹야옹, 그냥 다 좋아요!”
“오월아, 우리 얼마나 더 같이 할 수 있을까? 너도 늙고 나도 늙어버렸네”
“그러게요. 귀밑머리가 하얗게 셌어요.”
겨울이 채 물러가지 않은 마당에 앉아 두런두런 말이 깊었다. 굳이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아도 좋았다. 너는 너의 말로 이야기를 하고, 나는 나의 말로 이야기를 하면 그만이다. 너는 너의 시간으로 오늘을 살면 그만이고 나는 또 나의 시간으로 오늘을 살면 그만이야. 다만, 여기 오늘처럼 볕 따사로운 마당에 앉아 너는 다리 사이를 오가며 비벼대고, 그러면 나는 또 오늘처럼 배도 쓸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줄게. 작별의 말이라도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느닷없이 떠나야 한다고 해도 괜찮아.
저기 어디쯤 반짝이는 거기에 너는 갔을 거고, 나는 한동안 여기에 앉아 널 보듯 별을 보면 되겠지.
“오월아, 있잖아. 이 형도 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