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落鄕

#02 고향으로 돌아가다

by 이봄

한 마리 연어였으면 좋겠다

올망졸망 보따리와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종이상자 그리고 냉장고와 텔레비전, 침대 하나와 작은 농이 트럭에 실렸다. 도토리 키 재기라도 하듯 들어찬 짐들은 1톤 트럭 한 대면 그만이었다. 단출하다 이야기하면 ‘단출’이란 말이 화를 낼지도 모를 짐을 싣고서 돌아왔다.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걸음은 무겁고 우울했다. 구불구불 뱀의 몸뚱이로 똬리를 틀었던 길은 곧고 반듯해서 이십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터널의 한 끝에서 반대쪽으로 나가는 찰나의 시간이었다. 터널은 아가리 가득 어둡고 음습한 것들 가득 물고서 달려가는 트럭을 노려보았지만 결코 성난 송곳니 들어내어 물어뜯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가뜩이나 너덜거리는 살점들 물어뜯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 실었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아, 네. 일단 큰길로 나가시면 제가 알려 드릴 게요”

찍찍거리는 라디오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묻는 말도 대답의 말도 짧았다. 멀뚱멀뚱 창밖만 바라보는 사람과 멀리 시선을 고정한 채 운전에 열중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저 혼자 재잘거리는 라디오가 그나마 숨구멍이었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차갑고 시원했지만 말은 결코 시원할 수 없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트럭의 짐칸에 살림살이들을 실으면서도 머릿속에서 떠도는 말이었다. 말은 쉽사리 정리되지 못해서 웅웅웅 이명으로 시끄러웠다.

“뭐라고 얘기할까? 아니지, 뭐라 이름을 붙일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시간에 찾아낸 말은 둘이었다. 사전적 뜻풀이야 그저 단순 명료하다.

‘귀향歸鄕,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 하나이고, ‘낙향落鄕,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하다’가 둘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귀향이란 말도 맞다.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하는 것이니 낙향이란 말도 뜻이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놓지 못하는 말이 처량할 뿐이었다. 아니다. 말은 처량하지 않았다. 말을 주워 담아 되뇌는 처지가 처량했다. 금의환향 왁자하게 내려가는 걸음은 아니어도 야반도주하듯 숨어드는 길은 아니었어야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그래서 무겁고 어두웠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대양의 푸른 바다를 닮은 한 마리 연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면을 유영하다가 마침내 돌아가는 몸짓은 당당하고 뿌듯할 터였다. 돌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한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머뭇거려야 할 이유도 없었다. 냄새로 기억되는 고향은 늘 향기로웠다. 골골마다 쌓였던 잔설이 녹아 개울물 수다스럽게 흘러가는 날이면 짙은 흙냄새가 좋았다. 낙엽이 썩어 만들어내는 냄새는 바다를 떠도는 시간에도 머릿속을 떠다녔다. 고향의 맑은 물은 그랬다. 산 벚나무 눈꽃으로 내리면 달큼한 향기가 베어 들었고, 알싸한 꽃향기 콧구멍을 찌르면 여지없이 찔레꽃이 떼를 지어 떠내려갔다. 고향으로 가는 바다엔 익숙하고 그리웠던 냄새들이 이정표처럼 늘어서서 길을 일러주었다. 유년의 비릿한 향기를 좇아 거슬러 오르는 길은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주섬주섬 보따리 챙겨 들고 까치발로 걸어야 하는 길이 아니었다. 아가미 가득 고향을 담고 꼬리지느러미 힘차게 파닥이는 당당한 귀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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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일곱이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은 두터워서 머리에 푸른 이끼 몇 겹은 덮어썼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고향을 떠날 때 풋풋했던 총각은 달콤 쌉싸름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많은 것들이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더는 머물러 지켜야 할 것과 이유가 없어졌을 때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십여 년을 몸담아 살았던 도시는 더는 둥지를 틀 곳이 아니었다. 낯이 익었다 싶다가도 느닷없이 낯선 얼굴로 돌변하는 도시는 물과 기름이었다.

골목마다 주린 배를 붙들고서 웅크려 숨죽인 맹수가 날뛰었다. 약육강식의 냉혹함이 도시의 본성이라지만 허점을 보이거나 나약함을 들키는 순간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백기를 들었다. 나아가야 할 순간과 물러서야 할 순간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러서야 할 순간이 조금은 이르다 싶기도 했지만 불 보듯 뻔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데 앞으로 나아갈 무모함은 없었다.

“까짓 거 뭐 있냐? 인생 한방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우쭐거려도 그만이고,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평생 아니더냐 해도 그만인 게 인생인데.... 그래, 가자”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머리를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 휙 하고 던져버린 기분이었다.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진 것처럼 속은 시원했고 걸음은 가벼웠다. 아등바등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니 누구 하나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주유해도 좋지 않을까. 너는 그렇게 살고 나는 이렇게 바람이 되련다. 오래된 것들과 마주하고 앉아서 나도 그렇게 오래된 것이 되어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등 굽은 나무가 되어도 좋았다. 학수고대하며 버선발로 반겨줄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돌팔매에 머리가 깨지고 도리깨에 얻어맞아 피멍이 들일도 아니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달려 주렁주렁 이야기꽃을 피우겠지.

“아이고 있잖아. 누구네 막내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내려왔대. 뭐라더라? 하던 일이 안돼서 쫄딱 망했다나 뭐라나 그런다지 아마”

앵두꽃 곱게 핀 우물가에서 아낙네들은 입방아 찧기 바쁠지 모른다. 가뜩이나 할 일 없는 농한기의 무료함을 달래 줄 맛난 간식거리가 되겠지만 잘근잘근 씹어 오늘이 즐겁다면야 기꺼이 오징어 땅콩이 돼주리라 생각했다.

“어머머 세상에 그랬구나. 어쩐지 며칠 전부터 안 쓰던 창고 방을 쓸고 닦고 하더라니...”

맞장구치는 여편네의 볼따구니에 알 듯 말 듯 미소가 번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동네 여편네들 입방아에 오르내린다고 어디 죽기야 하겠어. 그저 잠시 얼굴 좀 팔리면 그만이야.

“에라, 가자. 어디에든 똥파리 몇 마리 윙윙 시끄럽기는 마찬가지고. 아니지, 어차피 똥파리 윙윙 시끄러울 바에야 고향 까마귀는 반갑기라도 하다고 고향 똥파리가 차라리 낫지. 암, 그렇고말고...”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는 없었지만, 어깨춤에 발장단 맞춰가며 한바탕 춤판이야 벌일 수 없었지만 먼 산 능선에 매달린 구름이 그제 서야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죄송한데 좀 달리시죠?”

“뭐 바쁜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갑자기 배가 고파서요.”

정말 그랬다. 입맛이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쳐야 했으니 어디 입맛이나 있었을까. 굶을 수는 없어서 라면을 끓이고 식은 밥 한 덩이 대충 휘휘 저어 배를 채웠었는데 배가 고팠다. 잘 익은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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