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오월이의 가출은 상처만 남았다
사무실은 내가 접수한다
5월의 달력을 넘기는 날이었는지, 6월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주차장을 둘러싼 높다란 축대 위엔 실록이 한창이었다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아침햇살이 정오의 정수리 위에 자리를 틀고 앉을 시간이면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는 날씨였다. 하기야 도심의 기온이라고 하는 게 어디 계절을 짐작하기에 알맞게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서 더웠다거나, 아주 더웠다거나 하는 기억만으로 정확한 계절을 어찌 맞출 수 있을까만, 늦봄이거나 초여름쯤의 어느 날이었다 짐작을 한다.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고 습관적으로 라디오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는 작은 창고에서 밤을 보냈을 오월이를 위해 창고의 문을 열어주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서 오월이는 이미 문 앞에서 이제나 저제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고양이 특유의 애정 어린 울음이 새어 나온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심술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앙칼지게 발톱을 세우고서 등줄기 활처럼 오므렸다가 캬악 소리라도 지르며 달려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오월이는 종일 사무실을 주름잡고서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어슬렁거리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의자로 뛰어올라 느긋하게 오수를 즐겼다. 사무실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녀석을 수발들기 위해 고용된 집사쯤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해 질 녘 저녁이 되면 일일천하一日天下 백주의 영광은 물거품이 되어 좁은 창고에 갇히고야 말았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거기 비쩍 마른 아저씨 정말 매일 이러면 재미없어!"
공갈과 협박이 난무하거나 아니면 눈치 백 단의 용의주도함으로 미리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오월아 어디 있니? 오월아 까까 줄게 나와 봐. 응, 오월아!”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서야 겨우 붙잡으면 발톱을 세우고서 발버둥을 치고, 야옹야옹 자지러지게 울었지만 밤새 사무실을 활보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수놈의 영역에 대한 집착은 대단해서 사무실 구석구석마다 영역표시를 하는 통에 안쓰러웠지만 가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놈의 영역표시만 아니라면 넓은 사무실을 종횡으로 뛰어다니게 하고 싶었지만 책장의 책이며, 몇 날 며칠 잠을 설쳐가며 작업한 광고 시안에도 영역표시를 해대는 통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작은 비품창고에 가둬 밤을 보내게 해야만 했다. 함께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
문이 열리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겨주는 환영의 행사를 거하게 치러야 했다.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몇 번이고 부비는 스킨십과 눈망울 촉촉하게 하고서는 내 얼굴 빤히 쳐다보면서 ‘내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는지 너는 짐작조차 어려울 거야!’ 처량하다 못해 청승맞은 눈빛을 한동안 날려주고는 꼬리를 치켜세우고서 그 잘난 영역 순찰을 했다. 거들 먹이는 몸짓과 오만한 울음을 울면서 마치 ‘나는 이 사무실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신 오월님이다!’ 세상 만방에 공표라도 하는 듯 요란을 떨었다. 일차 영역 순시는 사무실이었고 이어지는 이차 영역 순시는 사무실을 나서서 최근 식민지로 삼은 주차장 너른 마당이었다. 사각의 주차장은 각 모서리를 돌며 순찰을 했는데 일정 간격을 유지하면서 오줌을 싸서 자기의 영역임을 재차 확인하는 식이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외부의 침입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아프니까 사랑이야
“오월아, 어디 있니? 우리 점심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빨리 나와라”
그날따라 일이 많아서 다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오월이를 찾았는데 오월이가 없다. 사무실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주차장 이곳저곳을 찾아봐도 오월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차장에서 이어진 좁은 골목을 지나 작은 식당을 둘러보고, 그 옆에 자리한 액자가게를 둘러봐도 없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퇴근 무렵이 다 되어도 오월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잡아갈 정도의 부티 나는 고양이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다가 생각했다. 이 녀석이 가출을 했구나. 며칠 전부터 발정기의 암컷 고양이들이 애 울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암내를 풍기고 있었다. 종종 길고양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주차장을 어슬렁대기는 했지만 요즘 따라 생전 보지도 못했던 수컷들이 잔뜩 털을 세운 채 돌아다니더라니 싶었다.
“너무 걱정들 마. 오월이가 아마 장가들고 싶어서 나갔나 봐. 그러다가 돌아오겠지”
“네, 예쁜 암놈 만나 알콩달콩 사랑하다가 돌아올 거예요”
“봄바람 불면 어디 사람만 싱숭생숭하겠어. 오월이도 그러겠지. 참 그 녀석도...”
다 큰 수놈인데 암내 풍기며 암컷들이 유혹을 하는데 오월이라고 어찌 돌부처로 살까 싶었다. 별 탈 없이 돌아만 오면 그만이었다.
사랑을 찾아 나선 오월이의 가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아침이면 주차장이며 골목을 한참 둘러보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구나. 어린 고양이를 데려다가 근 5년을 같이 살았는데 느닷없이 가출을 하더니만 영 돌아오지를 않았다.
“아주 가버렸니? 아니면 길을 잃었? 고양이는 영악해서 집을 잘도 찾는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정말 어떻게 된 거야...”
한숨을 치 쉬고 내려 쉬고 땅이 꺼질 판이었다. 걱정을 넘어 어디서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리고 쓰렸다. 종일 머리에서 오월이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안달복달 애를 태웠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어디서든 굶지 말고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끝에 그만 잊자 마음먹었다.
그만 잊자 생각했다지만 사무실에 도착하면 주차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게 일이 되었다. 그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란을 돌아보는데 까마귀가 형님하고 절이라도 올릴 몰골로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혹시나 싶어 ‘오월아?’ 불렀더니 ‘야옹’ 대답을 한다. 오월이다. 일주일 만에 오월이가 돌아왔다.
“아이고, 이놈 오월아.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어디서 뭘 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가슴과 네 발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몸뚱이는 윤이 나는 잿빛 털에 검은 줄무늬가 가히 호랑이를 닮아 멋진 녀석이었는데, 가슴과 발에 솜처럼 희게 빛나던 털은 염색이라도 했다는 듯 시커멓고, 부티 좔좔 흐르던 얼굴은 발톱 자국 선명하게 털이 뽑혔다. 게다가 얼마나 굶었는지 비루먹은 늙은 말이나 진배가 없었다. 거지 거지 그런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눈곱은 또 얼마나 덕지덕지 붙었는지 차마 그 꼴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에라 이놈아, 덩치가 작기나 하냐? 먹을 걸 제대로 못 먹었냐? 덩치는 산만하고 살집은 씨름선수 못지않은 놈이 어디서 이렇게 두들겨 맞고 기어들어 왔어. 에라, 한심하다 한심해!”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자식이 매 맞아 울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지만 어떤 놈이 그랬는지 알아야 두들겨 패주기라도 할 텐데 속만 문드러질 뿐. 하긴, 오냐오냐 온실에서만 큰 녀석이 야전에서 달련된 길고양이를 어찌 이길까 싶기도 했다. 그나마 어디서 변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오월이의 가출은 그렇게 끝났다. 암컷의 꽁무니만 졸졸 따르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나저나 궁금하다.
“오월아? 그래도 한 번쯤이라도 불타는 사랑은 나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