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름이 뭐니?

#06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마라.

by 이봄

친절한 금자 씨.....

시간이 많이도 흘렀다. SNS에서 친절하게 흘러간 시간을 일깨워 주었다. ‘이래춘님의 3년 전 오늘은 이랬답니다’ 한다. 굳이 꺼내어 들고서 킁킁 냄새를 맡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삽을 쥔 손바닥은 이틀 만에 화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물집이 잡혔다. 본디 그다지 예쁘고 고운 섬섬옥수는 아니었다지만 이렇게 물집 잡힌 손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우스갯소리로 머리를 잘 못 만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 하더니만 내 손이 딱 그 짝이다. 주인을 잘 못 만나면 이렇게 물집으로 굳은살로 네 초상도 일그러지는구나! 허나, 어쩌랴. 네 주인은 펜도 내려놨고 컴퓨터의 자판도 내려놨느니 이제 뭉툭하고 투박한 삽이 네 새로운 벗인 걸. 삽을 잡은 지 사흘이 되는 아침이다. 오늘을 넘기면 작심삼일의 고비를 넘길 터, 그러면 나름 끈기는 있네 하는 따위의 면도 설 것이고, 몸을 꿈적거려야 하는 날들에도 얼추 적응이 되겠지. 물집이야 잡히고 터지고를 한동안 반복할 테지만 그래도 이 신 새벽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도 있다 하자”


떠났다. 가을이 깊었을 때 고운 단풍 꽃처럼 피었다가 처연한 낙화로 멀어져 가는 낙엽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것들이 우수수 바람으로 떠났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헐레벌떡 달려가 개찰구를 뛰어넘듯 통과하고서 ‘열차가 진입하고 있습니다’ 안내전광판을 확인하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내달려 도착한 승강장 그 끝에 붉은 불빛 하나 남겨놓고서 멀어지는 지하철이 그랬다. 떠나는 것들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쩌면 다 그렇게 미련 한 줌 남기고서 총총히 멀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탈 수도 있었는데 하는 미련이 턱에 걸렸다. 아침이면 까뭇까뭇 자라나는 턱수염처럼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꿈도 있었고, 이십여 년을 살아온 세월도 한 바가지 매달렸다. 떨쳐야 하는 것들은 찰거머리로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잡으려는 것들은 토라진 애인이라도 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졌다. 놓지 못했으니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어야 했다. 움켜쥔 손아귀에서 모래가 좌르르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다. 더 단단하게 움켜쥐어도 모래는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갔다. 잡을 수 없는데 굳이 잡으려는 미련만 두 손 가득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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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버리다

출근길이나 외근을 나가야 할 때 늘 챙겨야만 했던 명함을 버렸다. 살아온 이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명함이었다. 이름은 뭐고, 직함은 무엇이고, 하는 일은 이런 거다 하는 사명이 적힌 명함. 언제든 불러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머리를 조아리듯 휴대전화 번호며 사무실 위치와 전화번호도 빼놓지 않고 빼곡히 적어둔 명함을 버렸다. 나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명함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많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낙엽 썩는 냄새 진동하는 하나의 숲이라 해도 좋았다. ‘이런 일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얘기를 하는 숨결엔 잘 마른 종이 냄새가 났고, ‘남산으로 이어진 충무로 어디쯤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이야기할 때는 휘발유 냄새 진한 잉크 냄새가 났다. 어디 향기로 벌 나비 유혹하는 꽃만 냄새가 날까. 퇴화된 코만 아니었다면 분명 내게서 나는 냄새만으로도 나를 알아볼 수도 있었다. 밤새 찌익찍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컬러 프린터기도 짙은 잉크 냄새를 베이게 했을 터여서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나이테처럼 스몄을 나였다. 냄새로 기억될 내가 명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저는 이래춘입니다. 불러만 주시면 성심성의껏 좋은 디자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연신 주절거렸을 명함이었다. 명함을 버리기로 생각한 날, 향이 좋은 거품을 턱에 가득 바르고서 날 선 면도기 하나 꺼내어 들고 면도를 했다. 고드름처럼 매달린 미련을 잘라내듯 턱수염을 깎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래 괜찮아. 사는 거 뭐 별거 있겠어...’ 말도 한마디 보탰다.


어이, 거기 아저씨

일은 단순했다. 정원을 꾸미고 거리를 꾸미는 조경수를 캤다. 새벽별이 총총한 시간에 일어나 별을 보며 일터로 향했다. 도회지에서의 새벽은 늘 흔들리는 시간이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갈지자 흔들리는 걸음의 취객이었다. 행선지를 부르고 연신 손을 흔들어 택시를 불렀다. 충혈된 눈에 비친 거리는 사람이나 거리나 매한가지로 흔들렸다. 둘 사이에 우뚝 선 가로수마저 균형을 잃고서 춤추는 바람인형이었다. 새벽은 그렇게 흔들린다고만 생각하다가 별이 총총한 시간이었음을 오랜만에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전설처럼 아득하고 낯설던 새벽에 차에 올라 별을 보았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었다. 잃었던 새벽을 얻었고 버렸던 이름을 얻었다.

“어이, 거기 아저씨! 이리로 와 봐요”

“저 말입니까?”

“맞아요. 아저씨 이리로 와서 얘 좀 옮겨 봐요”

“아, 네. 알겠습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를 캐던 날 그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통성명을 하고 명함을 주고받을 일이 없으니 당연한 호칭이었을 터였다. 내가 그를 모르듯 그도 나를 모른다. 불러야 하니까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자연스레 아저씨였다. 아저씨를 아저씨라 불렀으니 틀린 호칭도 아니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어서 잠시의 얼떨떨함은 새벽이 주는 선물이었다. 천 년을 한 이름으로 살아도 좋을 녀석이야 주목나무 하나여도 괜찮다 생각했다. 버려서 얻는 것 중 ‘아저씨’란 것도 과히 나쁘지 않았다.

친절한 금자 씨가 알려준 삼 년 전 오늘의 나는 주목나무 손이 부르트며 캐던 아저씨였다. 흔들리지 않는 새벽과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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