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다 산티아고에서 끝났다
리스보아에서 산티아고까지...
야트막한 산길을 걸었다. 길은 미끄러웠다. 지난밤에 내린 겨울비가 숲 속으로 난 길을 온통 질척거리게 했다. 미끄럽고 질척거리는 숲길은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사람과 마주치지는 않았다. 겨울이었다. 초록이 싱그러운 들판과 내 나라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꽃들이 지천에 피고 졌지만 겨울이었다. 인적은 드물고 미끄러운 산길을 걸어 이웃한 마을을 찾는 발걸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포르투갈의 겨울이다. 포도 농장이나 올리브 농장 사이로 평평하게 이어진 숲엔 온통 유칼립투스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장이 빠르고 병충해에 강한 특성으로 많이 키우는 나무란다. 펄프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목재로도 이용한다는데 그 위용이 제법 대단한 나무였다. 소나무며 편백나무 숲을 거닐면 피톤치드가 많아 삼림욕의 효과가 좋다고 하는데 유칼립투스도 은근 그 향이 독특하고 강하다.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좋은 성분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숲길을 거닐며 맡은 향이 독특했었다. 나무의 껍질은 털갈이라도 하는 것처럼 묵은 껍질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다 만 것처럼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붉거나 누렇거나 아니면 희뿌옇거나 늙음의 정도에 따라 나무껍질도 각양각색으로 벗겨지고 달라붙었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걷는 도중에 간단하게 점심도 먹었다. 마을은 멀었고 숲은 깊었다. 옆 마을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는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무심히 걷는 걸음은 가볍고 즐거웠다.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몸을 옥죄기에 충분했지만 며칠 만에 등짝을 제 몸 삼아 찰싹 달라붙어서 그런대로 짊어 질만 했다. 배낭엔 침낭이며 간단한 조리도구, 갈아입을 여벌의 옷이 들어 있었다. 마을을 만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간단한 인스턴트식품이 있었고, 간단한 필기도구도 있었다.
길의 끝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가 기다리고 있다. 예수의 제자 중 야고보가 걸었던 길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길은 스페인을 횡으로 가로질러 대륙의 땅덩이 바다를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났다. 혹은 스페인의 남부에서, 포르투갈의 남쪽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서쪽 끝 야고보의 도시 산티아고에 이르러 끝이 났다. 길은 길로 이어지고 마을과 마을을 이었으므로 사람이 사는 곳에서 시작된 길은 그만큼 많고 다양했다.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을 길이기에 곧게 한 방향을 향해 시작되거나 만들어지지 않아서 구불구불 굽이로 돌아쳤다. 마치 강물이 바위를 만나거나 웅덩이를 만나면 돌아 흐르고 채우고 난 후에야 다시 흐르는 것과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걸으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 길 위에서 고단한 몸을 놀려 걷고 있을까? 종교를 믿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성인이 태어나 주어진 휴일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념무상 고행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번민도 없었다. 간절히 떨쳐내야만 하는 가슴앓이도 없었다. 이국의 낯섦이 주는 신선한 충격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하고 싶은 호기심이 원인이었을 터였다. 제집 드나들 듯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일로도 그만큼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는 시대였다. 비행기는 마을버스보다도 많이 공항을 뜨고 내렸다. 황금연휴가 며칠 이내 호들갑을 떨 때면 빠지지 않는 뉴스가 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었다. 특별함이 사라진 여행이 해외여행이었는데 내겐 태어나 처음 나가보는 해외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날짜를 손꼽고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기분 좋은 두려움이 가슴을 뛰게 했다. 46일간의 여행이었다. 그것도 두 발로 걷는 여행이다. 마을과 마을을 온전히 두발로 걸어야 하는 그래서 구석구석 족적을 남기며 걷는 여행이었다. 전할 이야기도 없는데 순례자가 되어야 하는 길은 그래서 낯설고 두려웠다.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숲길을 벗어났을 때 붉은 지붕 여럿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황토색 기와가 멋을 더하는 마을이다.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이 황톳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작지만 사납게 흘러가는 물은 장맛비에 넘실거렸다. 겨울 포르투갈이 우기 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장대비가 내렸다. 물은 높은 산악에서 시작돼 중 산간을 지나 마침내 야트막한 평야에 이르러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강에는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다. 언제 놓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월이 묻어 있었다. 낡은 다리 위엔 조그맣게 만들어진 집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집은 사람이 기거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용도로 다리 위에 조그만 집을 지었을까 궁금해하면서 다가서니 그가 거기에 있었다.
사실, 집이라 표현하기는 좀 그렇다. 사람이 기거하는 집이 아니므로, 하지만 어찌 불러야 할지 이름을 모르겠다. 우리나라 같으면 칠성각이나 성황당 정도쯤 될 기도처일 텐데... 예수님을 모신 집을 성황당이라고 표현하면 아마도 믿는 사람들한테 귀싸대기라도 한 대 얻어맞을 게 분명하다. 오해는 마시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몰라 그럴 뿐이다. 종교가 없다고 해서 폄훼하거나 하는 따위의 마음은 없다. 성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들어갈 수도 없는 기도처였다. 등짐을 지고 강을 건너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서 가정의 평화나 안녕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고만고만한 걱정이 있을 때면 정갈한 마음으로 촛불 하나 밝혔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뭐라 부르는지 이름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투박하고 엉성한 그곳에서 만난 예수님의 형상은 종교와 무관하게 어쩐지 친근하고 따듯했다. 거룩하여 오히려 다가설 수 없는 이질감은 거기에 없었다. 오히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쯤 마주칠 것만 같은 친근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아랑곳 않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는 길 무탈하게 돌봐주시기를.... 임의 제자가 걷던 길을 걷습니다. 믿음 없는 놈이라 꾸짖지 마시고 건강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짧은 기원의 말도 남겼다. 친근하다 못해 엉성하기 마저 한 그림은 분명 제대로 된 미술을 전공한 화공은 아니었을 터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온기를 느끼게 됐다. 외딴곳을 오가며 마음으로 무사안녕과 영혼의 평화를 갈구했을 촌부들의 고단함이 떠오르고, 분명 그들의 기도를 진정으로 가슴에 담아 안아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꼭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화려한 성물을 제단에 바쳐야 기도의 뜻이 깊다면 가난한 영혼은 갈 곳이 없을 터였다. 예수님의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참뜻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배고픈 이들을 위한 마음이어서 줄어들지 않는 떡과 물고기가 거기에 있었겠지. 배는 기름지고 얼굴은 번들거리는 부자를 위해 남아있을 떡이나 고기는 없을 터였다. 동병상련이랄까? 가난한 나는 가난한 자의 거친 족적이 눈에 들어오고 가슴에 쌓였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으니 걸음이 멈추었나 싶었다.
리스보아에서 시작된 길은 포르투갈을 남에서 북으로 거슬러 올라 접경한 스페인을 한동안 또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가는 도시마다 크고 웅장한 대 성당이 여행객을 불러 모았다. 천 년이 되었느니 못해도 오백여 년이 되었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래된 성당의 한 편을 내어주어서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재워주는 편의도 베풀었는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고 추억은 덤덤하다. 오히려 지금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은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서 마주한 소박한 예수님이었다. 크고 웅장한 것은 그저 그림책에서 마주해도 나쁘지 않았다. 이웃집 아저씨의 얼굴로 반겨주던 그 조그만 다리 위 기도처의 따뜻함이 문득 그립다. 다시 그 길 위에 서는 날이 있다면 어쩌면 이렇게 인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덕분에 잘 지냈답니다. 그리고 가끔 뵙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