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개꿈이었어...
지난밤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내리는 소리도 그렇거니와 내일은 쉰다는 생각에 더욱 좋았다. 쉬는 날 없이 날마다 일을 했기에 손꼽아 기다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둥거리며 노는 날이 더 많은 사람인지라 일의 고단함에 빗대 휴일 타령을 할 처지는 아니라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라서 더욱 쉼의 시간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열심히 몸을 놀리는 사람들이야 어쩌면 몸에 인이 박혀서 노동의 고단함이 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고 안개비 물러가는 마당을 서성이다가 삐죽 얼굴 내미는 꽃들을 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만개한 벚꽃이며 진달래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아니 어쩌면 남쪽의 매화꽃은 분분히 허공을 날아 낙화했을 터다. 계절은 분명 같은 봄이었지만 늘 봄은 남에서 북으로 달음박질치는 놈이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봄은 유채꽃 노란 얼굴로 인사를 했다. 구례며 하동 언저리엔 산수유에 매화꽃 지천으로 피워놓고 북쪽으로 걸음을 재촉했을 터였다. 그렇게 도착한 봄이 막 꽃들을 피우기 시작했다. 떡은 남의 떡이 커 보인다 하더니만 꽃은 예외인 모양이다. 몇 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선암사 늙은 매화며 진해의 벚꽃도 내 마당에 핀 바위 나리 한 송이만 못하다.
봄비에 이슬처럼 피어나는 꽃들과 노닐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 한 통화에 꿈길을 거닐던 걸음은 허방 낭떠러지를 만난 듯 위태롭고, 콧노래 흥얼거리던 입가엔 심술이 맺혔다. 꿈이었다. 잠시의 행복은 순간으로 날아가고 달콤했던 바람은 쌩하니 칼바람으로 변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새롭게 캠핑장을 준비하는 마음이야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질 터여서 서둘러 끝내려는 마음 모르지는 않았다. 밤새 내리던 비 하루를 가지 못했다. 멈췄던 시간은 그친 비와 더불어 다시 째깍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바쁘고 해는 노루꼬리처럼 짧았다. 부지깽이 힘이라도 빌려야 하는 시간이 봄날의 농촌이라 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야 하는 일은 다 그렇다. 부지깽이를 부르는 전화였다.
“형님, 오후엔 비 안 온다고 하는데요. 바쁜 일 없으시죠?”
“그래? 그렇구나. 바쁘긴 뭐가 바쁘겠어. 무슨 일인데?”
“서둘러 어제 하던 일 마쳐야 할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면 오후에 일 좀 하죠"
바쁠 일 없다는 건 이미 그도 알고 있었다. 하루 일과 라야 뻔히 들여야 보이는 난데 모를 일이 없다. 인사치레 말이 오고 가고 나는 봄날의 꿈을 접었다. 개꿈이었다. 오뉴월 늘어진 개의 꿈이 아니라 복날의 개꿈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리 뛰고 저리 쫓기는 개꿈 말이다.
수도관이며 전기, 하수관을 매설하기 위해 파놓은 고랑은 질척였다. 제법 쏟아진 간밤의 비는 흙을 펄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발이 빠지고 흙은 신발 바닥에 껌딱지로 달라붙었다. 질긴 사랑이었다. 그만 우리 헤어져! 고개를 가로젓고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뭐가 그리 좋다고 이렇게 매달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인네의 질긴 집착이었고, 마치 낙지 한 마리쯤 어슬렁거릴 개펄이었다. 오후 내내 질척거리는 고랑에서 땅강아지가 되어 뒹굴었다. 향긋한 꽃향기는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비가 멈춰버린 날에 흐드러진 꽃송이가 무슨 대수이랴. 좋다가 말았다. 반나절의 봄꽃은 오히려 남은 반나절의 악몽이었다 하랴. 잔뜩 물을 먹은 흙은 얼마나 무거운지, 달라붙는 흙은 또 얼마나 질척거리는 인연인지 모를 날이다.
“아, 봄날의 개꿈이여. 그래도 봄은 봄이런가?”
아사달의 담담淡談2017 0406: 담담은 일상의 이야기 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꽃 피워내는 연꽃처럼, 맑은 이야기 풀어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