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황소이거나 소대성이거나...
늙은 소 한 마리 종일 드러누워 되새김질로 소일을 하듯 잠을 잤다. 자다 일어나 눈곱을 떼는 둥 마는 둥 세수를 하고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졸음 반에 시장 반, 찬물에 식은 밥 대충 말아서 허기를 달래듯 후다닥 밥을 먹고서 다시 잠을 잤다. 굳이 잠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졸음이 제 먼저 알고 몸뚱이를 쓰러뜨렸다. 텔레비전의 실없는 웃음도 마냥 자장가로 들렸다. 몽롱하게 멀어지는 텔레비전의 소음은 아득하고 희미했다. 언젠가 들었을 법 한 이야기가 전설로 남았듯 곁에서 중얼거리는 소음도 그랬다. 비몽사몽 분간도 없는 시간과 공간을 헤매다가 문득문득, 들리는 소리에 잠시 정신을 차리는가 싶다가도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도 열사의 땅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계시는 산업역군 여러분... 전국 노래자랑! 송해 인사 올립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송해 선생의 전국 노래자랑이 잠을 깨웠다.
“벌써 열두 시가 넘었구나. 언제 이렇게 잠이 들었지?”
밥을 먹자마자 바로 누울라치면 할머니는 늘 그러셨다.
“이 녀석아,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되는 거야. 일어나서 소화도 시키고 그래야지. 바로 누우면 못써. 어서 일어나!”
소가 되었는지도 모를 하루를 보냈다. 자다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더니 휴일은 온 데 간 데가 없다. 짧은 봄볕은 서산 너머로 달아나고 이웃집 닭은 술시를 부르며 홰를 쳤다. 모처럼 맞는 쉼은 잠으로 달아났다. 잠이 보약이란 말도 있으니 보약 한 재 제대로 달여 먹었다 하면 되려는지.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잠만 자는 사람을 빗대 ‘소대성이가 마빡이라도 치더냐?’ 한다더니 오늘은 한 마리 늙은 황소였고, 소대성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 속 소대성의 이야기는 해피엔딩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을 맺었으니 말이다.
중천에 해가 걸리고 꽃들은 저마다 고운 빛깔로 봄을 노래하는 시간, 잠에서 깨어 마당을 서성였다. 진달래가 피었고 바위 나리도 하얀 꽃잎을 피웠다. 피나무 썩어가는 그루터기엔 느타리버섯이 잘 군 빵처럼 예쁘게도 돋았다. 산수유며 명자나무 굵은 꽃망울도 서둘러 분칠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하듯 모두 출발선에 열을 지었다. ‘준비, 땅!’ 총성은 이미 요란하게 울렸다. 앞 다퉈 꽃은 피었고 호박벌 한 마리 발맞춰 꽃을 찾았다. 연분홍 고운 진달래꽃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날개 짓을 했다. 봄은 분명 바쁘고 귀한 시간이었다. 꽃들은 꽃을 피워야 했고, 새들은 짝을 지어 사랑을 해야만 했다. 미룰 수 없는 일들이 봄나물 돋아나듯 햇살에 반짝였다. 때를 노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바쁘고 절박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마당은 온통 바쁜 시간이 바쁜 것들 다독이며 세대를 잇고 계절을 잇는 몸짓으로 분주했다. 그 분주함의 한가운데에 앉아 나는 잠들고 또 잠들었다.
일주일을 꼬박 일했다. 그 정도 일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겠지만 힘들고 고단했다. 노동의 강도는 각자의 체력에 따라 다를 터였다.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 일도 누구에겐 너무나 힘든 중노동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저 가끔 주어지는 쉼의 시간만 있다면야 그럭저럭 견디고 건널 일들이다. 그 와중에 오늘은 보약을 달여 먹었다. 입에 쓴 약이 몸엔 좋다고 했는데 종일 깜박이며 자던 잠은 입에 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심을 먹고 입에 문 박하사탕처럼 달고 시원했다. 달고 시원했으니 몸에는 쓰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피곤은 잠을 불렀다.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 그렇게 집요하게 잠을 청했을 터였다. 몸은 스스로 알아서 재충전을 한다. 필요한 영양분이 있을 때 뭔가를 먹고 싶다는 식욕을 부르는 것도 매 한 가지다. 꼭 필요한 무엇에 오늘은 잠이란 녀석이 낙점되었다 해야겠다.
“오늘은 소대성이 마빡을 친 날이었으니까!”
아사달의 담담淡談2017 0409: 담담은 일상의 이야기 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꽃 피워내는 연꽃처럼, 맑은 이야기 풀어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