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 담담

모름지기 산다는 게 그랬으면 했다

by 이봄

담담하게 살 수 있을까?

말 하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 날이 있다. 마치 아침부터 중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입에서 맴도는 것처럼. 하나의 말로 시작된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때로는 이어지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다거나 아니면 그 생각 따위의 포로로 전락해서 종일 심기가 불편하고야 만다. 깨어있으니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면을 취하고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쯤 되었으면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본능이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없다. 그저 아침에 해가 떠오르고, 밤이면 달이 떠오르는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도 결국은 자연의 큰 흐름에 따라 정해진 궤도에서 움직일 수밖에는 없다. 때가 되면 허기를 느껴 밥을 찾게 되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하나쯤이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일일 게다.

당당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자리이거나 움츠러들지 않는 당당함을 갖고 싶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 뱉어내는 것에도 주눅 들지 않는 나였으면 했다. 그게 살아가는 모습을 좌우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위축되지 않는 삶은 위축되지 않는 생각과 행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기고만장 잘난 놈의 짓거리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니다. 나 잘났다고 하는 것과 왠지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몸짓으로 비굴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날들은 적어도 이름 앞에 비굴하고 싶지는 않았다. 살아가는 동안의 바람이기도 하고 소망이기도 했다. 굳이 남과 비교해서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일도 아니어서 심중에 줏대 하나 단단하게 세우면 가능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하게 됐다. 의지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게 인생이어서 더는 당당 이란 말을 함부로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알았다. 많은 것들이 떠났고 많은 것들을 놓아야만 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거시냐의 문제에 불과했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대끼지 않아도 될 여유와 다투지 않아도 될 안정적인 힘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뭐 큰 거 바라는 건 없어요. 그저 둥글둥글 물 흐르듯 사는 거지요...”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행운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인지 그때서야 알았다. 평범한 일상은 고단한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고단한 노력도 없이 거저 주어지는 평범함은 없다. 오히려 부단한 수고와 행운이란 양념이 덤으로 얹어져야만 누릴 수 있는 일상이었다.

너무 심하게 망가지지 않을 말이 필요했을 때 담담이란 말을 생각했다. 쏟아진 물은 이미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바닥에 쏟아진 물이었다. 걸레를 들어 닦아내거나 그도 귀찮다 싶으면 그저 밟고 다녀야 할 물이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닥에 쏟아진 물을 혀로 핥아 갈증을 달랠 수는 없었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구명정 속 조난자가 아닌 이상 바닥을 핥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담담하고 싶었다. 담담,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써 가능한 모습이었다. 부인하거나 거부를 전제한 담담함은 없다. 거울에 비친 내가 나임을 알아야 비굴하지 않아도 될 최소한 내가 거기에 있는 거였다. 더는 흔들리지 않을 중심이 필요했다. 바다는 늘 풍랑이 일고 파도로 일렁거렸다. 물 위에 뜬 배야 파도에 따라 흔들리게 마련이지만 방향도 없이 떠밀리지는 말아야 했다. 돛을 거두고 닻을 내려 부유하지 않아야 했다. 부유하지 않을 닻이 ‘담담’이었다. 당당은 아니어도 담담은 해야 했다.

당당하게 핀 꽃 한 송이 보았다

꽃을 보았다. 연탄재 잔뜩 쌓인 잿더미 속에서 꽃은 피었다. 초록 이파리와 노란 꽃송이가 보기에 좋았다. 무릇, 생명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항변이라도 하듯 버려진 연탄재 틈바구니 속에서 꽃은 피었다. 쓰레기 더미에 핀 꽃이어도 꽃은 꽃이었다. 모진 환경 이겨내고 핀 꽃을 바라보면서 ‘너는 어찌 그 더러운 곳에서 피었니? 차마 널 꽃이라 부를 수가 없구나!’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안쓰러운 눈으로 한참을 그렇게 바라볼 터였다. 꽃을 바라보는 눈길엔 사랑의 감정이 담뿍 담기면 담길까. 누가 과연 ‘더러운 쓰레기구나!’ 입방아를 찧을까. 잿더미 속에서 핀 꽃이라지만 그 모습은 분명 당당하고 예뻤다. 당당한 모습이어서 오히려 더 아름답다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민들레였다.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꽃이다. 아니, 오히려 이어가는 정도를 넘어 그 영역을 넓혀가는 풀이다. 그래서 모진 희망을 이야기할 때 민들레를 들먹거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밟히고 꺾여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질긴 생명력이 거기에 있었다. 가장 황량한 터에서 스스로 생명을 잇는 당당함이 민들레꽃에 있었다.

연탄재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함 잃지 않은 꽃 한 송이 피었다.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나는 감히 입에 담기를 주저하는 말이 아롱졌다. 민들레 노란 꽃송이 바라보다가 ‘당당’이거나, ‘담담’이거나 하는 말 떠올려 그나마, 그래도, 그쯤 어느 사이에서 머물러 거닐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탠다. 풀이 죽었음이 현실이어서 그렇다. 더는 날개 죽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또한 그렇기도 하다. 모래밭에 날아든 민들레 홀씨 하나 뿌리를 내리고 움을 틔우듯 말 하나 머릿속에 떠올리고 곱씹는 건 떠돌지 않을 닻 하나 심연으로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더해 말의 의미를 더듬는 것은 더는 깨지고 부서져 뾰족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둥글둥글 평범함을 가장한 비범함은 원치 않는다. 손아귀에 틀어쥘 욕심도 더는 없다. 민들레 노란 꽃 바라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스치기는 하지만 ‘당당하다’란 말은 꽃으로 핀 그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저 땅바닥에 쏟아져 흩어진 물 혀로 핥아가며 달래야 하는 목마름이 없기를 소원할 뿐이다. 그게 지금 생각하는 담담쯤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만, 난 담담할 수만 있다면 그만이야! 정말이야, 거울에 비친 내가 나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싶어. 부는 바람에 더는 부유하지 않게 이미 돛은 거두었고, 묵직한 닻 하나 내리면 돼. 정말이야. 그저 담담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사달의 담담淡談 2017 0425: 담담은 일상의 이야기 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꽃 피워내는 연꽃처럼, 맑은 이야기 풀어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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