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아시나요?

그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by 이봄

바쁠 것 없이 햇살이 퍼졌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투명했다. 말갛게 갠 하늘이 좋았다. 미세먼지 사라진 하늘은 온전히 민낯을 드러냈다. 보통 민낯을 드러냈다고 하는 말은 치부를 드러냈다는 말쯤으로 여기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의 일에 불과했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필요 없는 자연은 민낯을 드러내야 본연의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해맑은 얼굴이었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허공을 배회하는 먼지조차 없던 날, 하늘은 타고난 때깔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눈부신 하늘을 머리에 이고서 참나무와 소나무 울창한 산길을 걸었다. 숲은 깨어나 시끄러웠고,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은 덩달아 햇살 아래 반짝거렸다. 까투리 한 마리 종종거려 숲을 뛰었다. 까투리 달아난 거기 어디쯤에는 분명 하늘빛을 빼다 박은 알들이 부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친 새처럼 위장한 몸짓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모성이었다. 한쪽 날개 죽지 땅바닥으로 늘어뜨리고서 열댓 걸음 앞서서 달아났다. 날개를 접은 뒤뚱거림은 하늘을 닮았다. 파란 몸짓이었다. 화장 끼 없는 어미의 민낯이었다. 가리지 않아서 오히려 아름다웠다. 낙화였다. 말문을 닫아야만 하는 순간에 세상은 고요했다.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 저들처럼 말갛게 갠 나를 만나게 될까?


마당 가득 아침햇살이 퍼졌다. 뒷산 산마루에 해가 떠오르면 뒤란으로부터 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장아장 아이의 걸음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위태롭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뒤뚱거리는 걸음이었다. 바쁠 것 없는 걸음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정해놓고 걸어야 하는 걸음이 아니어서 갈지자 적어가며 걸으면 또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뒤뚱뒤뚜 아장아장 걸어서 햇살이 마당 가득 퍼질 시간에 배낭을 들쳐 메고 산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산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산이었지만 대게의 산은 바라봄의 대상이었다. 굵은 땀방울 움치며 오르는 산도 좋지만 유유자적 앞마당을 거닐며 바라보는 산도 그에 못지않았다. 산 그림자 넘어가는 시간엔 평상에 앉아 발장단 맞춰가며 흥얼거리면 족했고, 산등성이 서성이는 햇살 한 조각에 밥 짓는 연기는 구름인양 아름다웠다.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의 마당은 늘 산이 서성이고 있었다. 올라도 좋았고 바라만 보아도 그만인 산이었다.


네 이름을 알아서 좋았어

오늘, 산나물이 지천인 봄이어서 산은 오르는 산이 되었다. 땀방울을 훔쳐야 하는 시간이었다. 두릅이며, 취나물이며, 고비, 고사리가 돋는 계절이었다. 다래 순도 제법 맛이 좋다 했고, 엄나무 여린 순은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라고 했다. 홑잎 나물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도 했다. 마을은 나물들의 이름이며 맛이 어떻고 하는 말들로 넘쳐나는 시간이었다. 초록이 짙어지면 끝날 파시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적당한 골짜기를 정하고서 산에 올랐다. 바람은 더없이 맑고 시원했다. 하늘은 모처럼만에 제 낯빛으로 빛났다. 눈부신 하늘이 반가웠다. 말갛게 쏟아지는 햇살이 반가웠고 연두색 고운 빛깔로 돋아나는 것들이 반가웠다. 잡초라고 홀대받을 것들은 없었다. 적어도 가녀린 새순 틔워내는 봄날엔 그런 것은 없었다. 모두가 귀하고 반가웠다.


“반가워, 그동안 잘 지냈니? 어쩜 넌 곱기도 하구나!” 눈인사로 바쁜 걸음을 멈췄다. 졸졸졸 소리도 고운 개울가에 한 움큼 초록이 빛나고 있었다. 투명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일 것만 같은 초록이었다. 가는 잎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내리쬐는 햇살은 또 얼마나 맑고 밝았는지 모른다. ‘찬란한 봄이구나!’ 연신 감탄사를 쏟아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다.

“그 친구 참 예쁘죠? 우리도 한참을 바라보곤 해요. 근데 그 친구 이름은 아세요?”

흐르는 개울물이 그렇게 말을 거는 것도 같았고, 곁에서 새순을 틔우는 국수나무도 거드는 듯싶었다.

“그래 정말 예쁘구나. 정말 예뻐... 물론, 당연 이름이야 알지. 요 녀석 이름이 뭐냐면 말이다 가는 잎 그늘사초라고 해. 맞지?”

그의 이름은 ‘가는 잎 그늘사초’였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예쁘구나 하는 말 끝에 결국 묻게 되는 말, ‘근데, 네 이름은 뭐니?’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누군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느끼는 행복을 뭐라 말할까. 부르고 대답하는 말끝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마치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이라도 들 것만 같은 마음.

“얘, 너 정말 예쁘구나. 난 아사달이라고 해. 넌 가는 잎 그늘사초가 맞지? 반가워, 정말이야...”

하하하. 웃음 가득 고인 그 골짜기에 내일도 고운 햇살 가득 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사달의 담담淡談 2017 0426: 담담은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로운 꽃 피워내는 연꽃처럼, 맑은 이야기 풀어내고 싶은 소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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