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입맛은 언제 돌아오려나?
"기세등등 폭염이 쏟아져도 오늘은 입추"
오늘부터 입동까지의 기간을 우리는 가을이라 부른다. 오곡이 결실을 맺어 엄동설한의 겨울을 건너게 하는 대비의 시간이기도 하고,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기온은 폭염이 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지친 마음과 몸을 다독이는 계절이 가을이기도 하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 하지만 여름의 끝자락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폭염이 기세등등 하다. 위용을 자랑하는 햇살에 입맛은 달아나고 몸은 균형을 잃어가는 기분이다. 차갑고 또 차가운 음식만 곁에서 맴돈다. 밥은 멀어지고 면은 다가서는 시간들이다. 기력은 떨어지는데 입맛도, 밥맛도 멀찌기 달아나니 탈이 날 밖에. 선조들은 그래서 복날을 정하고 보양식을 먹으며 여름을 건너려 했는가 싶다.
"집 나간 며느리야 전어면 그만인데..."
집 나간 며느리야 아들놈이 알아서 꾀어 들이던지, 찬바람 불면 떼로 몰려드는 전어라도 몇 마리 구해다가 굽고, 회를 썰고, 탕이라도 끓이면 돌아온다 하는데, 달아난 내 입맛은 어느 골목, 어느 거리를 떠도는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약이다,는 말과 별 반 다르지 않을 계절이 약이다, 는 처방전을 손에 들었는가. 여름이 지나고 이 지독한 더위와 습기가 달아나면 뽀얗게 먼지 일으키며 입맛이 돌아오려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독한 더위에도 옥수수가 여물고 들깨는 한 발 키를 키웠다. 초록으로 물결치는 논에서는 벼 이삭이 패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는 듯도 하다. 짜증스런 날씨에 어쩌니 저쩌니 입을 내밀어 툴툴거려도 계절은 낯빛을 바꾸기에 여념이 없고, 그 순환의 고리는 보기보다 단단하고 정밀하기도 하다.
"가까워지는 것과 멀어지는 것'
멀리 있는 벗이 집을 찾았다. 가을의 문턱에 찾아든 친구를 위해 마당을 뛰놀던 닭을 잡았다. 백년손님에게나 준다는 씨암탉을 잡고, 가시가 날카로운 엄나무도 잘랐다.오가피 굵은 가지도 자르고 천궁의 잎도 몇 따다가 냄새를 잡고 마른 대추에다 대파와 감자도 넣고서 두어 시간, 가마솥에서 끓여내어 친구를 맞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대접의 전부다. 내어 줄 것 없는데 술병 챙겨들고 찾아든 벗이야 어찌나 반가운가. 평생을 두고 셋을 남기면 성공한 삶이다,고 얘기하는 친구. 가까워지고 멀어짐의 부침에 혹여 몇이나 남을지 장담할 수도 없는 이름이다. 사소한 무엇으로 멀어져서 영영 남으로 남기도 할 것이고, 어쩌면 생각지도 않았던 누군가가 내 마지막에 향 하나 피워 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그래서 함부로 '너는 오래된 벗, 친구'다 얘기하기 힘든 존재.
염천의 폭염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바람으로 다녀간 친구와 그랬던 바람이 이제는 멀어져 돌아오지 않음을 생각한다. 무엇이 쌓였는가? 얼마나 두껍게 쌓였길래 불어가 소멸한 바람이 되었는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삶의 당연한 조각 중 하나겠지. 회자정리 거자필반...
"전어와 부추가 필요한 날"
며느리의 가출은 달아난 입맛으로 부실해진 아들놈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실을 한다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결코 한 솥에 담을 수 없는 간극, 멀어짐은 그렇다. 전어로 꾀어 들어온 며느리를 위해 담장을 따라 나풀거리는 부추가 꽃을 피웠다. 깨가 서 말이면 뭣하랴. 며칠의 고소함만으로 주저앉히기엔 젊음이 창창하다. 가을은 가을로 다워야 하고, 서방은 서방으로 다워야만 헤어짐이 없다. 이별은 뭐든 답지 못함의 결과다. 입맛도 그렇겠지. 재료들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내가 있어야 밥맛도 입맛도 답게 살아날 터다.
"계절은 입추를 지나 가을로 간다는데 다움이 여물기엔 성급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