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얼마나 다행多幸인지

백림栢林의 그림자가 짙다

by 이봄

앞산 잣나무숲의 그림자가 짙다. 검푸른 숲에 칠흑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얘기는 불볕이 내리쬔다는 얘기와 같다. 볕이 강하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어서 수퍼컴퓨터의 도움이 아니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이다. 흙마당은 찌는듯한 열기로 널부러졌다. 그나마 은행나무 촘촘한 그림자에 기대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도 없어 푸른 하늘인데 쨍한 파랑이 없다. 눈에 뭐라도 낀 것처럼 뿌옇게 파랗다. 옅은 박무. 덥다는 말이다. 더워도 엄청, 우라지게 덥다는 말이다.

나무 그늘에 숨어 하늘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선풍기는 살랑살랑 미풍으로 돈다. 헉헉 숨 헐떡이며 강풍으로 돌 필요는 없어 다행이다. 선풍기도 그렇고 인공의 따가운 바람을 기대지 않아도 되니 나도 다행이다. 어제로 보름여의 복 중 잡부일을 끝냈다. 오늘처럼 엄청난 볕과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구름보다는 볕이 많은 날이어서 땀과 사투를 벌이며 일을 했었는데, 마당을 서성이며 드는 생각이 '참 다행이다'였다.

한가롭게 선풍기는 저 홀로 돌아가고 트렁크 팬티 달랑 한 장으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TV 예능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언제부터인가 '나만 아니면 돼'를 입에 달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굳이 예능프로그램을 탓할 것도 아니다. 사람의 본성에 남의 불행에 희열을 느끼는 본능이 숨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다 내 자식의 기는 절대 죽일 수 없다는 이기심으로 중무장한 부모의 무모한 교육이 이타심을 박멸하고 이기심만을 창궐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他을 버리고 자기己만을 생각하면 이미 사람人이 아니다. 기대어 살기에 사람이라 했다. 개 돼지는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1%의 거만과 오만이 이미 우리를 개와 돼지로 대놓고 부르는 세상에 있다. 이타가 없으니 99%의 사육은 식은 죽 먹기와 다름이 없다. 흩어진 모래알에 떡고물 살살 뿌려주면 서로를 물어뜯기에 혈안이 된다. 꼬리 살랑거리는 충복이 된다. 기대어 돌보는 힘은 생각보다 세고 커서 1%의 권력자를 긴장하게 한다. 그런 사람이, 그런 세상이어야 나는 사람人으로 불리우고, 사람人으로 대접받는다.

IMG_20160804_161746.jpg

개 돼지의 개도 존중받는 개를 견犬이라 부르고, 사육과 포식의 대상인 개는 구狗라고 부른다. 꼬리만 살랑이는 개는 兎死狗烹의 개狗일 뿐이다.

여튼, 오늘 나의 다행은 행재낙화幸災樂禍의 다행多幸은 아니다. 나만 시원하면 그만인 그런 시원함은 절대 아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뙤약볕에서 너댓 발 혀를 내밀고 헐떡이던 사람이 나인데 어찌 단 하루에 낯짝을 바꾸랴.

폭염경보가 내렸다고 방송에서 침을 튀기고 문자도 날아든 오늘, 시원한 그늘에서 다행을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 여름 다들 무사히 건넜으면 해!" 기원의 말을 덧붙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