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한 자루 깎아야겠다 마음을 먹었던 건 좀이 쑤셔서 더는 빈둥거리며 버틸 수 없을 때였다. 아침에 일어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는 뒤란을 한 바퀴 돌고, 마당에 핀 꽃이며 벌 나비들과 한참을 입씨름을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해는 중천으로 가지도 못했다. 마당에서 이어진 신작로를 건너 버들치 몇 마리 한가롭게 오가는 개울가에 앉아 말을 걸어도 보고, 쓸데없이 갈대 대궁도 뽑아봤지만 시간을 죽이기엔 턱없이 무료했고, 점심을 지나 저녁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었다. 자연의 궤적에 따라 해가 뜨면 일어나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잠자리를 봐야 하는 생활이었지만 하릴없는 여름날의 해 그림자는 좀처럼 걸음을 떼지 않았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엔 모든 게 멈추고 말았다. 몇 푼 벌자고 땡볕에 나가 일을 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벌이보다 많은 약값을 보태야만 할 판이라서 휴가 아닌 휴가로 생긴 날들은 좀이 쑤시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도 모르게 떠올리게 되는 생각은 하나였다. 뭘 하면 오늘 하루를 지겹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궁리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당이며 개울까지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벚나무 그늘에 자리한 평상에 앉아 잡생각에 빠졌을 때, 문득 병정놀이에 들고나가 친구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나무칼이 생각이 났다. 친구 녀석들의 칼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반으로 쪼갠 대나무 몸통에 칼받이를 끈으로 얼기설기 묶었는데, 그에 비하면 남자의 칼은 제법 영화에서나 볼법한 칼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있어서 어깨가 우쭐해지곤 했었다.
"래춘아? 그 칼 정말 멋지다. 네 형이 깎아줬니? 부럽다 야. 형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멋진 칼도 만들어주고.... 우리 형은 그런 거 만들 줄도 모르는데...."
친구 녀석이 잔뜩 부러운 눈으로 남자의 칼을 구석구석 뜯어보며 말했을 때 남자가 말했다.
"아니야. 나도 형이 만들어준 칼이 아니야. 이거 내가 낫으로 깎은 건데 어때? 멋지지!"
"정말 네가 깎은 거야? 이야, 넌 정말 손재주도 좋다. 나도 하나 깎아주면 안 될까?"
친구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목이 탔는지 꼴깍 침을 삼켰다.
"그러지 뭐! 친구끼리 칼 하나쯤이야.... 내가 내일 학교 다녀와서 깎아줄게. 하하하"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마당에 앉아 두 녀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그만 놀고 저녁밥 먹어야지!"
"네, 엄마? 금방 가요!"
아까부터 말없이 서산에 걸터앉아 두 녀석을 바라보고 있던 해가 싱겁게 웃고 있었다.
여름 햇살이 뜨거웠지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남자는 망설일 것도 없이 주섬주섬 톱 하나와 낫을 찾아들고는 이내 뒷산 작은 골짜기에 올랐다. 칼을 깎을 나무는 물푸레나무였다. 목질이 부드러워 깎기에 편했지만 그에 비해 줄기가 질겨 쉽게 부러지지도 않는 나무였다. 콩 타작에 많이 쓰이는 도리깨를 만드는 나무가 물푸레나무였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서 그늘진 응달이나 습한 골짜기에서 잘 자랐다. 칼을 깎을 나무여서 너무 굵어도 안 됐고, 곧게 뻗은 나무라면 또 멋이 없었다. 적당한 굵기에다 둥그렇게 칼날처럼 휜 나무라야 제대로 멋을 부려 칼을 깎을 수가 있었다.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삼복더위에도 숲에 들면 바람은 시원했고, 눅눅한 숲 바닥에서 풍기는 가랑잎 썩는 냄새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오르내리던 숲이 주는 냄새와 시원한 품이 좋았다. 익숙한 바람이 불었고, 익숙한 냄새가 온몸을 감쌌다. 고향으로 돌아와 가끔 산을 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산이 꼭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편하다고 생각했다. 익숙하다는 것과 가슴 한편에 자리한 그립다는 말이 어머니와 고향의 산이었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한 능선과 골짜기가 손금처럼 떠오를 때면 남자는 유년의 시간으로 달음박질치고는 했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마음이 그랬다.
가래나무와 굴참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붉나무는 키를 키우다 끝내 싸움에서 졌다. 껍데기가 벗겨져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말라죽은 옆으로 물푸레나무 한 그루 포기를 벌려 자라고 있었다. 굵은 원 기둥은 제법 품이 좋았고, 옆에서 돋은 곁가지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염치도 좋게 가지 하나를 휘감은 다래덩굴은 물푸레나무를 의지해 하늘에 닿았다. 고요했지만 숲은 나무들끼리 늘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였다. 손바닥만 한 볕을 가운데 두고 코피 터지게 주먹질을 했다. 물러서면 다음은 없었다. 한 발 물러서는 순간 한 뼘의 하늘은 닫혔고, 그나마 차지할 수 있었던 한 줌의 햇살도 남의 차지가 되고야 말았다. 껍데기가 다 벗겨진 채로 고사한 붉나무의 잔해가 온몸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자란 곁가지 하나를 자르는 거였다. 몇 해를 두고 이어진 나무의 역사가 쓱쓱 싹싹 톱질 몇 번으로 옛이야기로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남자에게 선택된 나무는 간밤에 악몽을 꾸었으리라.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억세게도 운수 나쁜 날이었다. 치열했던 삶은 이제 끝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칼이란 낯선 얼굴로 새로이 태어나야 한다며 다짜고짜 톱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지금의 꼴이 그랬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세상은 또 그렇게 굴러가게 마련이었다. 남자는 나무를 한 번 쓰다듬고는 이내 톱질을 했다. 허옇게 톱밥이 바람에 날렸다.
"꿈꾸는 者의 靑春은 내일이요"
언제부터였을까? 남자는 꿈꾸는 사람이고 싶었다. 세월에 빛바랜 청동처럼 덧씌워진 껍데기를 벗으면 훨훨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나비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푸른 녹으로 스스로를 감싸고서 더는 속으로 녹슬지 않는 청춘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몸뚱이야 깊은 주름도 패일 것이고, 관절마다 삐그덕거리며 아우성을 치겠지만, 가슴에는 뭉근한 화톳불이 타올랐으면 했다. 그리운 여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며 새벽을 밝혔으면 좋겠고, 때로는 시련의 아픔에 눈물도 뚝뚝 흘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동의 푸른 녹을 걷어내면 속살 벌겋게 드러나듯 가슴을 열면 뭉게뭉게 봄꽃이 피고, 가을 억새가 은빛으로 일렁이기를 바랐다. 그게 남자의 바람이었고, 꿈이었다.
산에서 베어온 나무를 붙들고 앉아 얼마쯤 씨름을 했는지 몰랐다. 정오가 되기 전부터 낫을 들고 껍데기를 벗기고, 속살을 깎아냈다. 손목만 한 두께의 나무가 휘어진 방향을 타고 얇은 칼날이 되어야 했다. 좌와 우의 균형이 맞아야 했고, 칼등과 칼날이 경쾌한 날갯짓으로 만나야 비로소 칼은 제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끌이며, 송곳이며, 눈에 띄는 연장은 없었다. 오로지 손에 쥔 낫이 전부였지만 머릿속에 그린 대로 깎아야만 했다. 온통 칼에만 정신이 팔린 터여서 남자는 언제 점심때가 지났는지도 몰랐다. 하는 일도 없이 빈둥대는 날들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귀신처럼 때를 알고 아우성치던 배꼽시계도 어쩐 일인지 감감무소식이었고, 허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힐끗 올려다본 하늘이 아니었다면 늦은 오후가 됐는지도 몰랐다. 손이 부르트게 쥐었던 낫을 내려놓고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 남자는 생각했다. 몇 시간 이어진 수고로움이 마침내 보람이 되는 순간에 가슴에 품었던 말 하나를 쓸 참이었다. 이왕이면 그럴듯한 말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평소에 생각했던 말들이야 차고 넘친다지만 두 자를 겨우 넘기는 칼날에 다 쓸 수는 없었다. 간결하지만 평생을 두고 되새길 만한 말이라야 했다. 철 모르던 시절에야 병정놀이에 쓰던 장난감 나무칼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 만들어질 칼은 남자에겐 세상 그 어떤 보검보다도 소중한 칼이 될 터였다. 마음을 새기고 꿈을 각인할 칼이었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더니 이윽고 또르르 눈가로 흘러내렸다. 남자는 끼니를 거르면서 바삐 낫을 놀렸다. 팔뚝에 힘줄이 솟고 땀방울에 눈을 찡그릴수록 칼은 두꺼운 껍데기를 벗고, 원래부터 그 안에 숨었던 모습인 양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상 바닥에는 깎여져 나간 나무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였다. 세월이었다. 겨울을 이겨낸 잎눈이 싹을 틔우고 계절이 바뀌려는 오뉴월엔 꽃눈이 꽃을 피웠다. 가을이면 노랗게 단풍으로 한 해를 갈무리하길 몇 해였을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이테는 몇 개의 동심원을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 굳이 헤아리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대여섯 해쯤은 족히 넘기고도 남을 세월이 낙엽처럼 떨어져 쌓였다. 푸른 잎으로 찰랑거리던 잔가지는 서슬 퍼런 낫에 잘렸고, 노랗게 단풍 들던 이파리는 바람에 말랐다. 너의 청춘은 여기서 끝이다만 너의 흰 속살에 나의 청춘을 심을 터였다. 남자는 칼을 다듬으며 온갖 생각을 떠올리다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다 늙어서 나무칼을 깎는 제 모습이 싱겁기도 했고, 결기 같은 마음은 짭조름한 바닷물처럼 파도로 철썩 이기도 했다. 영원히 철들지 않은 사람으로 고운 단풍도 한 겹 껴입고서 가을 햇살에 졸고 싶었다.
"꿈꾸는 者의 靑春은 늙지 않는다"
사포로 다듬어진 칼날은 희고 매끄러웠다. 채 마르지 않은 나무의 속살은 아이의 피부를 닮았다. 군데군데 옹이가 앉은자리를 제외하면 보드랍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맑은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접시에 먹물을 따르고 쇠를 파고 검명을 아로새기듯 붓을 들었다. 세월에 치이지 않고 꿈꾸는 사람이고 싶은 바람을 썼다. 누구의 눈치 따위에 휘둘리지도 않고 가슴에 떠오르는 말들과 동무 삼아 골목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은경아, 그거 아니? 내 소원은 늘 글을 끄적이며 살고 싶어. 멋진 글씨도 쓸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가끔은 너랑 나의 이야기도 글로 남기고 말이야. 어때?"
"응, 당연히 알지. 거기다 네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잖아. 열심히 해봐. 응원할게!"
남자는 은경이에게 고백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내용이야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말 하나는 이랬다.
"있잖아, 난 가슴에 말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 하나 들여놓았으면 소원이 없겠어. 꽃 한 송이를 봐도 어제의 꽃과 오늘의 꽃이 다르듯 내 말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꽃을 노래했으면 해"
품은 꿈에 비해 남자의 능력이 일천한 것이 늘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일기처럼 쓰는 말들이야 늘 하는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큰 꿈이 있었다. 세월처럼 쌓이는 말들을 묶어 책 한 권을 만들고 싶었다. 선뜻 보여주기가 부끄러운 글들이었지만 그저 가슴에만 쌓였다 사라지는 것이 못내 남자는 아쉬웠다. 각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 남자만의 말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바라본 세상은 이랬다고 하는 몇 문장의 글이라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꿈에 비해 남자의 글은 그저 일기에 지나지 않았다. 모르는 것도 아닌데 끝내 놓지 못하는 꿈이라서 속상했지만 그것도 남자가 끌어안아야 할 몫이었다.
계집애들이 화장대에 앉아 울긋불긋 엄마놀이에 푹 빠져 화장을 하고, 남자애들은 장롱에서 꺼내 든 아버지의 외투를 입고는 '엄마? 나한테 딱 맞는 거 같아요!' 허수아비 같은 모습으로 배꼽 잡는 쇼를 벌이듯, 재능에 맞지 않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설령 허수아비로 웃음을 자아낸다 하더라도 남자는 쉽게 꿈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남들의 시선이나 입방아에 신경 쓸 이유도 없었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한정적이라서 더욱 그랬다. 그나마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놓지 못하는 꿈이라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가진 것도 없었고 쌓아 올린 것도 없었다. 다 늦은 나이에 부를 거머쥘 수도 없었고, 언제 시작해서 명예를 쌓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빼꼬미 얼굴만 내밀고는 '얘들아, 안녕?' 인사를 하듯 어쩌면 남자에게 꿈은 그나마 치부를 가릴 수 있는 하나 남은 수건일지도 몰랐다.
남자의 칼에는 남자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그걸 꿈이라고 부르던 아니면, 희망이라고 부르던지 말이다. 칼날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서 붓을 들어 글씨를 쓰던 그때의 마음을 다시 읽어보았다. 물푸레나무의 하늘을 향한 치열했던 날들도 남자의 꿈과 함께 버무려져 있었다.
"꿈꾸는 자의 청춘은 봄이요, 꿈꾸는 자의 청춘은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