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질투 같은 거 아닐까? 내 생각엔 그래. 남자들의 질투라.... 그것도 좀 웃긴다? 그렇지 응? 호호호"
순이는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린 채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듣고 있는 남자가 민망할까 싶었던지 웃음을 걷어냈다. 남자가 좀 지난 얘기였지만 중학교 동창밴드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순이는 질투심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순이의 말처럼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질투는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기 때문에 흔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여자의 질투에 못지않았다. 어쩌면 파르르 끓어오르는 여자들의 질투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고 잔인한 감정일지도 몰랐다. 아닌 척 숨기고 숨겼던 속내가 겉으로 드러난다는 건 위험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었다. 터지기 직전에서야 겨우 울그락 푸르락 감정이 들끓었을 게 뻔했다. 바위가 녹아 물처럼 고이고, 흐르다가 마침내 지표의 헐거워진 틈을 발견하고는 일시에 뚫고 터지는 활화산 같은 게 남자의 질투였다. 울창한 숲을 태우고도 모자라 표면을 까맣게 뒤덮는 분노가 바윗덩이로 굳고야 마는 거, 감정의 골은 그래서 더욱 깊고, 쌓인 앙금은 몇 길의 펄로 쌓였다. 한 번 발을 담그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기도 했고, 물 빠진 개펄의 광활함일 터였다. 어쩌면 말싸움이나 시기로 토라지는 게 아니라, 육두문자가 오가고 주먹다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게 남자의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험악한 얘기들이 그런 식의 표출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순이의 말에 바로 수긍을 하지는 않았다.
"에이, 설마 그러려고. 다 늙어가는 놈들끼리 무슨 질투야 질투가? 거기다 내가 무슨 동창밴드에서 연애질이라도 한다든? 난 단지 읽을거리가 있어야 밴드에 들어오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을 뿐이야."
남자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몇몇의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건네는 말 한마디가 따뜻했고, 바라보는 시선은 포근했다. 오랜만에 대하는 온기였고, 경계하는 마음 하나 없는 자유로운 마음이었다.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 마음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었다. 설령, 잠깐의 말실수가 있다 치더라도 허허 웃고 넘어갈 일이었다. 코를 땅에 박고 흔적 하나에 목숨을 걸고 뒤쫓는 맹수의 사냥도 아니었고, 사소한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급소를 물어뜯는 비정함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에나는 강 건너 둑을 서성대며 이쪽을 멀뚱이 건너다볼 뿐, 성큼 물로 뛰어들지도 못했고, 강을 가로지를 능력도 없었다. 다 잡은 먹잇감을 놓쳤다고 생각했던지 야비한 두 눈에 아쉬움이 덕지덕지 붙어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타향살이는 언제나 머리털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순간의 방심은 약점이 되어 언제고 내게 날아들 비수를 주는 꼴이었다. 결국 남자는 경쟁에서 뒤처져 사냥터에서 물러났다. 상처뿐인 귀향이었지만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남자에게 코흘리개 친구는 그런 존재였다.
사바나를 벗어난 남자는 오랜만에 시원한 그늘에 누워 발장난을 치며 취기 오른 얼굴로 잠들었고, 이내 깨어 콧노래를 부르다 말고는 어깨춤을 덩실거리듯 길게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한가로웠고 졸음이 쏟아졌다. 담장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가 가릉가릉 햇살로 노래했고, 바람은 점잖게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꽃잎이 발걸음에 흔들렸다. 빨갛게 익어가던 앵두는 소녀의 입술처럼 붉고 예뻤다. 신작로를 따라 길게 도열한 가로수는 키 자랑이라도 하는지 아스팔트 위에 기다란 그림자를 하나씩 그려놓고는 까치발로 어깨를 맞추고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 못해도 이틀에 하나씩 남자는 글을 올렸고, 재밌다는 반응에 남자도 고맙다고 말을 받았다. 확실히 남자들은 꽃이 어떻고, 내리는 비가 어떻고 하는 남자의 글에 시큰둥했다. 남자의 글에 한 줄 답글을 달며 반응하는 쪽은 여자 동창들이었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들과 댓글놀이를 하는 경우가 잦았었는데, 그게 바라보는 사내 녀석들의 눈에는 곱지가 않았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자들의 말에 가시가 돋았다. 너무 글이 길지 않느냐는 답글로 포문을 열었고, 뭔 놈의 수다들이 이렇게 시끄럽냐며 대놓고 딴지를 거는 녀석도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남자는 하루하루 날이 더해지던 날 그만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렸을 때라면 멱살잡이로 싸울 수도 있었겠지만, 주먹다짐을 할 나이는 벌써 지나고 또 지나버렸으니, 얌전히 퇴로를 열어 상처뿐인 전장에서 발을 빼는 게 그나마 모양새가 낫겠다 싶었다. 절집이 싫으면 까까머리 땡중이 절을 떠나는 게 옳았다.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구설수를 자초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부터 동창밴드에 더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과제물로 독후감을 써야만 하는 독서도 아니었고, 꼭 읽어야만 하는 강요가 있는 글도 아니었다. 마음이 동하면 읽으면 그만이었고, 반대로 길고 지루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거나, 금과 같은 소중한 시간을 쪼개야 할 하등의 의미가 없다면, 거리에 깔린 전단지를 밟고 지나치듯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되는 거였는데 굳이 기네, 짧네, 말을 만들고 사설을 늘어놓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남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들의 이죽거림은 질투가 분명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남자는 적잖이 실망을 했다. 오랜만에 맛본 평온은 순간에 깨져버렸고 친구라는 말이 주던 따뜻함도 함께 식었다. 차라리 일적으로 만난 사람의 비난이야 어차피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었지만,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란 이름의 존재들이 할퀸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쓰라렸다.
"지르밟고 가시옵소서...."
하던 여인네의 말에 약산의 진달래꽃은 짓뭉개 졌다는 데, 그깟 남자의 글이야 어디 명함이나 내밀 처지도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는 단지 쓰고 싶었고, 깜냥에 관계없이 날마다 글을 썼다. 쓰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말도 상처를 치유하기엔 부족했다. 다만, 임시방편으로 상처를 가릴 밴드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절집에 정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중은 싸움에서 물러나는 패잔병이 맞았다. 남자는 부상을 입고 밴드에서 물러났다.
"어라! 이거 뭐지? 내가 석 달 열흘을 노는 놈이라고 해도 글 하나 쓰는 건 쉬운 줄 아나? 길고 재미없다면 그만 쓰는 수밖에...."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푸대접을 받을 줄은 남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남자의 시간과 노력도 타박의 말을 쏟아내는 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좋아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세 치 혀가 만드는 입방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 죄송한데요 요번 추석에는 못 뵐 거 같아서 미리 전화드렸어요. 제가 일도 그렇고 시간도 좀 그래서요. 죄송해요!"
"할 수 없지 뭐. 괜찮아. 나중에 보면 되지.... 누나랑 다투지 말고 잘 지내. 알았지? 누나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몇 번이고 남자는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추석에 올라오지 못한다며 연신 죄송하다는 아들 녀석 한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것 밖에는 없었다. 괜찮으니까 너나 마음 편히 잘 지내라고 하는 것 외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운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그러니 한 걸음에 올라오라고 애를 다그칠 일도 아니었고, 눈이 짓무르겠다며 애원을 할 수도 없었다. 사는 곳이 물리적인 거리도 만만치 않았고, 교통편도 그다지 좋은 게 아니어서 오가는 걸음이 여간 힘든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며칠이고 쥐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던 전화가 요란스레 울었고 발신자 표시에는 아들이라고 크게 쓰여있었다. 추석을 사나흘 남겨둔 날에 남자는 아들과 그렇게 통화를 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전화였고, 목소리였는데 막상 통화는 허무했고, 우울했다. 종일 기다린 보람은 헛수고가 됐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더는 명절을 기다리지 않게 되는 일이었지만, 남자가 그나마 달력을 넘겨가며 손꼽는 이유는 애들을 만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자도 며칠 전부터 날짜를 확인하고, 요일을 재차 들여다본 건 순전히 애들을 기다리는 마음 하나였다. 긴 기다림의 한 장이 접혔다. 접힌 기다림은 쓸쓸한 바람 한 줄기 남기고 스르르 무너졌다. 찬바람이었다. 구멍 숭숭 뚫린 남자의 가슴에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다. 옷깃을 여민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바람도 아니었다.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봄이 한창이던 날에 아들 녀석과 통화를 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라가 시끄러워도 편의점이며 길가 좌판엔 어김없이 카네이션 꽃다발이 등장했고, 몇몇의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꽃다발을 고르고 있었다. 어버이날이었다. 워낙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얼굴을 본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연신 핸드폰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오월의 하루가 다 저물도록 손에 들린 전화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서운했다. 단순히 서운했다는 말로 넘길 수 없는 아련한 마음이 들었고, 서러워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노여움도 많아지고 서운함도 늘었다. 멀쩡한 사람도 그러한데 몸이 아픈 남자야 오죽했을까. 그저 보고 싶었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 없는 아비였지만 때 되면 보고 싶었다. 남겨줄 것도 하나 없었고 오히려 짐이 되지 않으면 다행인 남자였지만,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괜찮으니까 너 편한 대로 해!"
괜찮지 않았다. 그립고 서운했다. 그렇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그것뿐이었다. 남자의 봄날이 서럽게 피고 졌다.
"어라? 얘는 또 뭐지? 난 그렇게 못하겠다. 싫음 네가 읽지를 마! 나보고 이래라 하지 말고. 그리고 그게 뭐 길어? 에라이...."
서넛 친구가 모였고 술잔이 돌았다. 온갖 얘기들이 코빼기를 비추고 꽁무니를 뺐다. 오랜만에 고향에 앉아 익숙한 콧바람을 쐬며 나누는 말들은 정겨웠다. 가끔 생각나던 고향 까마귀도 길 건너 숲에서 잠들었을 터였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내내 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은 우울했다. 형제들이 있고 찾아야 할 선영이 있으니 어쩌지도 못하는 걸음이었다. 오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찜찜하고, 제대로 떫은 탱자 하나를 씹으며 내려온 길이었는데, 몇 순배 술잔이 돌았을 때 서릿발 솟고, 살얼음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래, 고향이 좋고, 역시나 친구가 좋구나. 혼자 흡족한 얼굴로 취기가 오르던 남자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날아들었다.
"래춘아?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 있다며 말머리를 꺼낸 친구 녀석이 말을 이었다.
"있잖아, 밴드에 올리는 네 글 말이야. 너무 길어서 읽기가 힘들어. 좀 줄여서 짧게.... 그러니까 시처럼 쓰면 안 될까?"
뒤통수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멍하니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일격을 당한 꼴이었다. 듣고 있던 남자가 저도 모르게 치미는 부아를 삭이지 못하고 말을 퍼부었다.
"길어? 길어서 읽기가 힘들어? 읽는데 몇 분이 걸린다고 그게 힘들어서 짧게 쓰라고? 에라이! 힘들면 읽지를 말아 인마. 쓰는 사람은 얼마나 걸릴 거 같니? 못해도 네 시간은 공을 들여야 그림에다 글을 완성하는 거야. 알기나 해?"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참고 싶지가 않았다. 남자가 하나 붙들고 사는 소통의 창구였고, 놓지 않는 삶의 동아줄 같은 게 그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떠들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남자에게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꿰뚫어 인정해야 할 놈이 꺼낼 말은 아니라서, 더더욱 순순히 물러설 수가 없었다.
"젠장.... 그냥 네가 읽지를 마! 그게 안되면 밴드를 탈퇴해도.... 괜찮아."
괜찮아, 난 괜찮아.... 남자가 늘 말끝에 달고 사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응,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난.... 괜찮아. 네가 바쁘다는 데 어쩌겠어...."
말로는 늘 괜찮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였지만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가슴에선 천불이 나고 속은 까맣게 숯덩이가 되는 날에도 남자는 괜찮다며 돌아섰다. 그것도 버릇이 되는지 이젠 물러섬이 제 몫이라고 푸념의 말을 남길 뿐이었다. '나도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야. 늘 시간이야 쌓여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지 않아' 속에서 맴도는 말들이 돌개바람으로 목구멍을 헤집고 있었지만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놈의 길다는 말이 바람처럼 웅웅 울었다.
"있잖아? 난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아!"
자초한 것들이 전부였지만 기다리고, 접어야만 하는 것들도 늘 남자의 몫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그래서 남자의 초라한 오늘을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