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부러워

쉰다섯 래춘 씨_08

by 이봄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주차장과 이웃한 건물을 구분 짓는 경계석에 앉아있었다. 남자는 방금 전까지 빈 방을 청소하느라 땀방울을 쏟아야만 했다. 얼추 청소를 마치고서 바람도 쐬고, 땀도 식힐 겸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의 기대와는 달리 골목엔 후텁지근한 바람만 불었다. 부지런을 떤다고 떨었지만 벌써 햇살은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훔치고 있을 때 입술을 비집고 '힘들다, 힘들어!' 탄식의 말이 새어 나왔다. 날이 덥기 전에 끝내려고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었다. 여섯 평 남짓되는 작은 방이었지만 창틀이며 몇몇의 가구들을 닦아야만 하고, 화장실에다 보일러실까지 쓸고 닦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아픈 몸이 아니라면 씩씩대며 몸뚱이를 움직이면 그만큼의 시간이 들지는 않겠지만 어정쩡한 자세로 꼼지락거려야 하는 처지여서 남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힘들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쉬엄쉬엄 거북이 경주하듯 청소를 했다.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밥벌이라서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남자가 사는 건물은 월세를 받는 원룸이었다. 도심을 벗어난 끝자락에 위치한 터라 월세가 비싼 건물은 아니었지만 몸에 탈이 난 후로 손에서 일을 놓다 보니 그 마저도 버거웠다. 한 달이란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고, 월세는 그만큼 빨리 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병원비며 약값으로 지출되는 돈도 만만치가 않았는데, 꼬박꼬박 돌아오는 월말은 악몽이었다. 마음 편히 손 벌릴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날마다 어떻게 살까? 시름만 깊었는데 어느 날 건물주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았다. 이사를 가서 생기는 빈 방과 재활용 수거함을 정리해주는 조건으로 월세를 대신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막막하던 차에 들어온 제안이라서 오히려 코가 깨지게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단번에 그렇게 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며칠 생각할 말미를 달라며 시작된 청소였다. 힘이 든다고 해서 어쩌지도 못하는 일이고, 방 한 칸의 안락함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사를 가는 사람이 날마다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한 달에 많아야 두어 건의 이사가 고작이었다. 매주에 한 번은 재활용 수거함을 비워야 했지만 청소에 비하면 재활용 정리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월세의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남자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남자에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솟아날 구멍이었다.

방을 휘휘 훑어보았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쳤던 젊은 처자가 살던 방이다. 이사 간 자리를 둘러보면 살던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 306호 그러니까 맞은편 방에 살던 그 젊은 처자는 얌전하고 부지런한 성격임에 틀림이 없었다. 방은 깨끗했고 화장실 세면대에는 그 흔한 물때도 없었다. 싱크대며 장식장 서랍에도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비워놓고 이사를 갔다.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보통은 젊고 늙음의 문제가 아니라 온갖 쓰레기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뱀 허물 벗듯 남겨놓고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는데 대충 필요한 것들만 챙기면 됐지 뭐 하는 식이라서 방은 남겨놓고 간 쓰레기로 가득했다. 청소를 하려다 말고 끌끌 혀를 찾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엉덩짝만 겨우 비집고 앉으면 된다는 식으로 묵은 때가 들러붙은 방바닥을 보고 있자면 육두문자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난장판을 치고 살 수 있을까?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잠깐 머물다 가는 집이라고 해도 그렇다. 본인의 고단한 몸을 뉘이는 안식처요, 휴식의 공간인 집이었지만, 들러붙은 때만큼이나 지독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독한 세제를 미리 잔뜩 뿌려놓았다가 충분히 불었다 싶을 때 걸레질을 해도 한 번 들러붙은 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켜켜이 쌓인 때라는 얘기였고, 아마도 사는 동안 단 한 번의 걸레질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던 쓰레기 더미를 무슨 보물이라도 된 듯 애지중지하며 사는 사람처럼 살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306호 처자는 양반이었다. 아니, 그저 양반을 넘어 정승 판서쯤 되는 고위급 벼슬아치였다. 빈 방안 가득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살던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개도 아닌데 킁킁 맡아보는 냄새만으로 숱한 정보를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 바르게 자란 예쁜 처자였다.

"그래, 좋은 곳에 이사 가서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사람 만나서 예쁜 사랑도 듬뿍 하렴."

청소 거리가 별로 없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물론 청소가 그만큼 수고스럽지 않아도 되는 고마움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예쁜 모습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앞날에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어쩌면 딸뻘쯤 되는 나이여서 그런 마음이 더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따뜻했다. 남자는 축원의 말을 중얼거리며 방을 나섰다.


"어이고, 지랄들을 해라. 지랄들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활용 수거함에는 음식물이 고스란히 담긴 플라스틱 접시며 그릇들이 뒤섞여 난장판을 펼치고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이에 비하면 6.25 때 난리는 난리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런 개자식들! 욕이란 욕은 죄다 튀어나왔다. 시골에서 돼지 한 마리쯤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돼지도 잠자리와 화장실은 구별 짓고 산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돼지도 구분하는 걸 사람이란 멀쩡한 탈을 쓰고 사는 것들이 어쩌면 이렇게 난장판을 칠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하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더러움의 대명사로 쓰는 돼지우리도 이보다는 깨끗하고 정돈돼 있었다. 어떤 놈들일까? 뭐하는 놈들일까? 도대체 초등학교 문턱에는 가봤을까? 궁금했다. 오히려 누구나 알아주는 번듯한 대학을 나왔을 수도 있고, 반듯한 집안에서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는 꼴은 어째 백정의 꼬락서니였다. 한글도 떼지 못한 무학이라도 이럴 수는 없었다. 재활용이란 말이 무엇인지, 그 속에 담긴 뜻풀이는 가능한지 모든 걸 깡그리 무시한 채, 단순히 내 집에서 쓰레기만 치우면 되는 거야'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굿판을 벌인 자리도 이만큼 더럽고 어지럽지는 않겠다 생각했다. 게다가 주차장 바닥에는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바닷가 조가비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주차장이 아니라 쓰레기장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인생 살아갈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고 했던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도 있듯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사는 곳이 싸구려 월세방이라고 해서 굳이 사는 나까지 싸구려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비록 살다 보니 이렇게 산다만 사람이 싸구려는 아님을 강변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만고만 한 수준의 사람들이 악다구니를 부리며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그들이 쏟아낸 온갖 오물을 치워야 하는 처지가 서러웠다. 스스로를 나락으로 떠밀고 있었다. 그래? 그래라! 이렇게 멋지고 자유롭게 원 없이 살아라. 혹여 귀가 간지럽거든 너의 장수를 기원하며, 누군가 쌍욕을 바가지로 퍼붓고 있다고 생각하렴. 그게 온당하고 적절한 거라 받아들이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담배를 물고 남자는 한 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이고 자괴감이었다.

모난 말을 입에 담으면 그 말이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먼저 내 입에 상처를 낸다더니 정말 그랬다. 아침부터 열을 올리고 육두문자를 마구 뱉었더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빈 속으로 두 시간여 바쁜 척을 떨었더니만 손이 떨려왔다. 당이 떨어졌다는 신호였다. 반갑지도 않은 손님이 낯짝도 두껍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오지 마라 손사래를 치고 등도 떠밀었지만, 귓구멍이 막혔는지 들은 체도 않고 막무가내다. 그렇게 나를 구박해봐야 소용도 없어. 난 너의 가장 친한 친구고 동행인 거야. 그걸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겠어? 옆에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그게 맞는 말이었지만 쉽사리 수긍을 하면 더 초라한 내가 있을 것만 같아서, 남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가뜩이나 쪼그라든 자신을 보고 있는데, 더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자 남자는 끓는 물을 붓고, 믹스 커피 하나를 뜯어 휘휘 저었다. 하얀 설탕과 커피가루가 소용돌이로 맴돌며 녹는다. 이내 형체는 사라지고 연갈색 커피로 변해 뽀얀 김을 뿜었다. 기댈 수 없는 꿈들을 억지스럽게 얼기설기 엮어놓은 꿈들이 봄눈 녹듯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이 파도에 쓸려가듯 할 수 없는 것들을 붙잡고 사는 건 봄눈이었고, 모래성이었다.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커피는 달았다. 급하게 당을 보충하는 응급약이다. 한 숟가락의 설탕이 손을 떨게도 하고, 떨던 손을 멈춰 진정시키기도 한다. 단 한 숟가락의 설탕이.... 웃기는 일이야. 실소를 지었다. 웃기지도 않은 것들이 가끔은 엉덩이를 흔들며 웃게 했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유혈이 낭자하고 비명이 터져 나오다가 '뭐지?' 하게 되는 장면에 쓴웃음을 짓고야 마는 순간이었다. 몸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믹스 커피가 때로는 응급처방의 귀한 약이 되기도 했다.


때를 넘긴 시간에 밥솥을 열었지만 빈 솥이 겸연쩍은 얼굴로 남자를 보며 웃었다. 아, 맞다. 어제 먹은 저녁밥이 마지막이었다. 아침에 밥을 안쳐야지 했었는데, 그놈의 방청소에 정신이 팔려 그만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까마귀 고기를 장복이라도 하듯 잊고 사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건망증이란 간단한 말 한마디로 포장을 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달리 설명하고 수긍할 수도 없었다. 늙어가는 과정일 뿐이야 하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거기를 넘어서면 더 무서운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서 단순히 건망증이려니 하는 자가진단서를 끊었다. 부랴부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앉아 청승을 떨고야 만다. 청승이라기보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방에선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콩나물이며 시금치를 데쳐 쪼물쪼물 무쳐내며 말을 한다.

"밥 먹어요! 반찬이 별로 없네. 그래도 맛있게 들어요. 호호호"

밉지 않은 말투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생선 한 토막 상에 올리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얘기했지만 그거면 됐다. 김치 하나에 식은 밥 한 덩이면 탓할 것도 없었다.

"아니야,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이렇게 맛있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걸. 어서 당신도 앉아요. 같이 먹자"

누군가 나를 위해 찌개를 끓이고, 반찬 몇 개를 꺼내며 '우리 밥 먹자' 얘기를 하면 그만이었다. 더 바랄 것도 없었다. 말이 주는 온기면 두꺼운 얼음도 녹일 터였고, 문풍지 울게 하는 겨울 삭풍도 따뜻할 터였다. 뭉근히 전해지는 마음은 구들을 덥히고 겨울을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남자가 웃었다. 짧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했고, 마음은 벅찼다. 나도 그런 저녁상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까지였다. 거기까지만 생각해야 했다. 더 진도를 나가면 생각은 허무를 부르고 우울을 초대할 게 뻔했다. 이미 깨진 일상이었다.

배우도 아닌데 남자는 늘 불 꺼진 무대에 올라 독백을 했고, 방백을 했다. 듣는 청중이 없으니 굳이 독백과 방백을 구분 지을 필요도 없었다. 구시렁구시렁 말들은 입술을 빠져나오자마자 흐지부지 흩어져 버렸다. 말 줄임표를 입에 달고 살았다. 끝을 맺어야 하는 말도 없었다. 돌잡이 옹알이하듯 우물우물 씹다 만 말들이라고 해도 탓할 사람도 없었다. 부러웠다. 걸어가는 사람도 부러웠고, 버스를 기다리는 청년도 부러웠다.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리는 주부가 부러웠고, 붕어빵 몇 마리 팔딱대는 봉투를 든 퇴근길의 남자가 부러웠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서두르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 부러웠다. 기다리는 사람도, 기다릴 사람도 없는 남자는 그래서 모든 게 부러웠다. 기껏해야 칙칙 소리 내며 밥이 다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남자는 두 눈을 감았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을 줄을 세우면 그럴 터였다. 할 수 없는 것들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설 거였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몇몇이 모여 웅성거릴 게 분명했다. 너무도 확연한 차이에 잠시 당황도 하겠지만 이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겠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발이 닿지 않게 기울어진 시소에 앉아 있었다. 발버둥을 친다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두 발은 이미 딛고 섰던 땅바닥에서 떨어져 허공에 매달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포구가 아득히 멀어지고, 등대의 불빛이 희미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배는 너무 먼바다로 나왔고 저을 노는 부러졌다. 돛은 찢어져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조류는 썰물로 바뀌어 자꾸만 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부러운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차라리 눈을 감는 편이 좋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지면 또 어때? 그래, 내가 졌다. 난 모든 게 부럽다. 부러워....

그때 칙칙칙 김을 뿜으며 밥솥이 요란을 떨었다.

"밥이 다 됐어요! 어서 드세요!"

"아, 그래야지. 고맙네. 하하하"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