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밭을 뒹굴듯 손에 닿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쓰고, 짰다. 풀어헤친 옷섶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등짝에는 하얗게 소금꽃이 피었다. 나뭇가지에 매미들은 또 어찌나 악다구니로 우는지 모를 일이었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말로 입씨름을 했다. 때로는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이어져 멱살잡이 끝에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저, 단옷날 펼쳐지던 씨름판처럼 큰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싸움판을 구경하며 뜯어말릴 생각보다는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구경거리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만큼 여름이란 놈은 신경을 긁기에 충분해서 하루에도 몇 번을 얼굴을 대하며 살던 이웃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사나운 바람이 불었고, 쌀쌀맞은 말들로 흐르는 땀방울을 식혔다. 여름이란 그런 거였다. 중상모략이 판을 쳤고, 이간질이 난무했다. 내면에 잠들었던 맹수가 하나 둘 발톱을 세웠고, 이죽거리는 입에선 비아냥대는 말들이 머뭇거릴 틈도 없이 튀어나왔다.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덥다냐?"
복날 소불알 늘어지듯 늘어졌던 김 씨가 연신 부채질로 몸을 일으키며 말을 뱉었을 때, 옆에 비스듬히 몸을 뉘었던 박 씨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여. 아궁이에 장작 한 짐은 떼는 거 같구먼. 환장하겠어야...."
집채만 한 느티나무 그늘에 모여 더위를 피하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뙤약볕을 성토했지만 입만 아팠다. 삿대질로 온 동네가 들썩거린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할 여름이 아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날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었다. 한낮의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지만 누구 하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여름이야 여름답게 덥기도 하고 그래야 곡식들이 쑥쑥 키를 키우고 그러지 않겠어 하는 식이었다. 불과 한 달여 전엔 그랬다.
"그나저나 말복이 지나면 봄이 성큼 오겄제? 난 말여 복사꽃 피는 봄날이 젤로 기다려지는구먼"
이 씨가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을 때, 그늘에 누웠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이 씨를 빤히 쳐다봤다. 자기를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이 씨는 의아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동네 사람들을 돌아보며
"왜들 그려?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는가? 다들 왜 그런 눈으로 시방 날 쳐다본다요?"
"아, 그게 말여? 시방 봄이라고 했는가?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것제?"
"응, 맞어. 봄! 난 말여 야시시한 봄밤에 분 냄새 같은 꽃향이 불어오면 사죽을 못 쓰겠더라니께"
볕에 시꺼멓게 탄 얼굴을 붉히며 이 씨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말여, 그놈의 접동새라도 울라치면 애간장이 다 녹는 것이 정말 미치겠어야"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좋았던지 이 씨는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동구 밖 먼 산을 바라봤다. 놀란 눈으로 이 씨의 말을 듣고 있던 박 씨가 조만간 동네에서 큰 일 치르겠다며 혀를 끌끌 찼다.
"시방 자네 더위라도 자셨는가? 정신 챙기소 마! 뭔 오뉴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도 아니고? 복더위가 지나면 가을이제 뭔 놈의 봄이여, 봄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을 하는 박 씨나 듣고 있던 이 씨나 어처구니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정작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다. 수염이 허옇게 샐 나이가 됐는데 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믿을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싶었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더위를 먹었든, 아니면 살짝 정신줄을 놓았든 간에 이 씨는 봄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거시 뭔 소리라요? 가을이라니, 난 여즉 봄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디.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은 코빼기도 본 적이 없어라?"
금방이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을 듯이 이 씨가 잔뜩 실망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그저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씨는 손꼽아 봄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면 고갯마루에 떼 지어 피던 연분홍 진달래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삼단 같은 머리 곱게 빘고서 나풀나풀 연분홍 치마를 차려입은 새색시 같은 그 꽃을 잊을 수가 없어서 꿈마다 꾸고는 했다. 우렁각시처럼 어느 날엔가는 자기에게도 그런 어여쁜 각시가 나타날 거라는 꿈을 꾸면서 봄을 기다린 이 씨였다. 봄날은 그래서 더욱 기다려졌고 기다리는 날들은 가슴 설레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복더위에 한두 번쯤은 너나 할 것 없이 보양식 달여먹듯 더위도 먹어야만 했다.
제정신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 씨는 정말 봄이란 놈을 코빼기 한 번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나고 어미의 품을 파고들어야만 잠들 수 있었던 유년의 몇 해를 빼고는 봄이란 계절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계절은 늘 여름이었다. 동무들과 천방지축으로 동네를 뛰어다니고, 수박 한 덩이 남몰래 따서 들고는 지치도록 물장구를 치던 날에도, 아침부터 매미가 울었고 정수리 꼭대기엔 시뻘건 해가 이글대고 있었다. 모기는 앵앵 달려들어 피를 빨았고, 외양간에선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등에가 달려들었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소들은 등에에 시달려 엉덩이뼈가 다 드러나고야 말았다. 사나운 계절에 태어나 늘 시끄러운 마을에서 억척같은 세월을 보며 자란 이 씨였다. 봄이란 주워들은 풍문이 전부였다. 유년의 봄은 기억 저편에서 가물거릴 뿐 온전한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부채를 부쳐주며 모기를 쫓던 어미는 먼산을 바라보며 옛날이야기 한 토막 들려주듯 복사꽃 흐드러진 봄날을 들려주었다.
"봄은 말이지 바람마저 향긋했단다. 달큼한 꽃냄새가 바람에 묻어나고, 밭두렁엔 새큼한 싱아가 무더기로 자라기도 했지. 연한 놈으로 하나 잘라 질근질근 씹으면 한 입 가득 침이 고였지. 찔레꽃은 또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단다. 꼭 흰나비가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것 같았지"
아련한 추억에 빠졌던 어미가 어느 날엔가 반다지 깊숙이에 넣어두었던 보따리 하나를 꺼내 풀어헤치며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미의 손에는 낡아 헤진 치마가 들려있었다. 세월에 색이 바래기는 했지만 연분홍 꽃을 닮은 치마는 곱고 예뻤다.
"이 치마는 말이여 애미가 네 아비와 혼인을 할 때 친정 어미가 손수 지어주신 치마구먼. 꽃처럼 예쁘게 살라고 진달래꽃 닮은 놈으로다가 지어주셨지...."
어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느새 촉촉이 젖은 눈가를 옷고름으로 훔치고 있었다. 그런 어미의 모습에 덩달아 침울해진 이 씨는 어미를 꼭 안아주었다. 허연 머리를 풀어헤치고 모깃불만 타닥이고 있었다.
어미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봄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잠드는 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씨에게 봄은 어미였고,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상향 같은 거였다. 지치고 고단한 밤이면 어미를 떠올리며 봄을 기다리고는 했다. 기다리다 조바심이 나면 마당을 서성이다가 까치발로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며 기다리던 날들도 있었다. 귀한 약은 입에 쓰듯 귀한 날들도 쉽사리 오는 게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밤마다 꿈도 꾸었다. 무릎베개를 해주며 부채를 부치시던 어미와 연분홍 치마로 피어난 진달래꽃이 아롱거렸다.
잔잔한 바다 위에 점처럼 찍힌 섬 하나가 있을 터였다. 섬은 작았지만 소나무가 울창한 솔숲이 있고, 숲 주변으로는 온갖 꽃나무가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며 무리 지어 섰을 거였다. 꽃나무 가지마다 알록달록 꽃으로 피어 노래를 불렀고, 이내 날개 죽지 마다 봄바람 한 줌씩을 싣고 바다를 건너와 마을마다 봄바람을 흩어놓을 터였다. 해마다 봄바람은 남쪽에서 시작돼 북으로 불어갔다. 가끔 꿈결에서 맡았던 아득한 그 바람은 분명 남쪽에서 불어온 봄바람일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쪽 작은 섬에서 시작된 봄바람은 새들의 날개 죽지에 매달려 고을마다 시차를 두고 배달되는 게 분명했다. 장마당 구석을 차지하고 앉았던 노파의 보따리에는 향긋한 달래며 쑥이 올망졸망 담겨 있었다.
"할매요? 이 쑥이며 달래는 어디서 난 거요?"
물었을 때 늘 노파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저기 산 아래 남촌에서 캐 온 거라우. 향이 참 좋제? 어디 한 바구니 들여가시려오?"
코끝을 파고드는 향기가 어지러울 정도로 짙고 좋았다. 아, 그랬었구나. 봄은 남촌을 거쳐 우리 마을까지 올라오는 거였구나. 남촌에는 벌써 봄이 지천이었구나. 봄이면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드는 게 냉이며 달래라고 어미는 늘 얘기했었다. 바구니 가득 냉이를 캐면 며칠은 된장찌개도 끓이고, 조물조물 무쳐내기도 하면 밥상이 온통 봄 냄새로 가득했다고 했다. 그래,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마중을 하면 되는 거였어.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주섬주섬 괴나리봇짐을 꾸렸다. 더는 집에서 엉덩짝을 붙이고 앉아 봄을 기다리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꼭 한 번은 봄을 제 눈으로 보고 싶었고, 가슴 울렁이게 한다는 봄 향기도 맡아보고 싶었다. 아랫마을 남촌을 지나 몇 날이 되었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북상하고 있는 새들을 만날 수도 있을 터였고, 사공에게 부탁해 바다를 건널 수만 있다면 분명 봄이 시작되는 그 예쁜 섬도 만날 것만 같았다. 어쩌면 정말 운이 좋다면 우렁각시처럼 어여쁜 색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엉덩이는 들썩여서 더는 구들장을 끼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보따리 보따리 짐을 챙길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다가 멀면 얼마나 멀 것이며, 바다가 넓으면 또 얼마나 넓을까 싶었다. 길어봐야 보름 줄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서 옷가지 서너 벌을 둘둘 보따리에 싸서 밤을 도와 마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어깨춤이 절로 났다. 덩실덩실 흥얼흥얼 이 씨의 가슴엔 벌써 예쁜 꽃송이가 피고 있었다. 청사초롱 불을 밝히고 연지곤지 곱게 찍은 각시와 맞절을 하는 상상에 이르렀을 때, 이 씨의 얼굴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진작에 이러면 되는 걸 가지고 괜한 목만 길게 빼고 미련을 떨었구먼!"
연신 너털웃음을 웃으며 이 씨는 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랐다. 멀리서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고, 횃대에 앉아있던 수탉은 덩달아 홰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