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져도 예쁜...

널 잊고 살 자신이 없어_06

by 이봄

연신 현관문 여닫는 소리로 쿵쾅거리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출근을 서두르던 사람들은 모두 출근을 마친 모양이었다. 복도를 가운데 두고 쪼르르 이마를 맞대고 여섯 집이 살고 있었다. 일 층부터 삼 층까지 그러니까 총 열여덟 집이 살고 있어서 아침 시간이면 난데없이 천둥이 쳤다. 아무리 햇살 좋은 아침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다고 남자가 사는 집도 그랬다. 못해도 하루에 두 번은 천둥이 쳐야만 했다. 아침과 저녁을 알리는 신고식 치고는 요란했고 시끄러웠다. 중앙에 있는 계단을 타고 울리는 문 여닫는 소리는 일 층에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층에서 나는 것인지 조차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어떤 녀석인지 좀 얌전하게 닫으면 얼마나 좋아? 꼭 저렇게 천둥 치는 소리로 문을 닫아야만 제대로 닫힌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어"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중얼거리며 남자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열어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던 남자는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으로 점심을 대신해도 그만이었지만 그런 날은 없었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잔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소음이었고 부산함이었다. 마지못해 얼굴도 모르는 동거인들의 일정에 맞춰 아침을 열어야만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덩달아 이른 아침을 연 남자는 뭘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마침 눈에 띈 빨래를 집어 들고 공을 들여 개고 있었다. 습관이 무섭다고 훈련소에서 한 번 들인 습관대로 수건 한 장에도 각을 잡았고, 속옷은 일정한 크기로 접고 돌돌 말아 풀리지 않게 마무리를 지었다.

김치찜이야 묵은지로 만들어야 제맛이겠지만 묵혀둔다고 곰삭은 맛이 나는 것도 아닌데, 이 핑계 저 핑계 갖은 핑계를 만들어 묵혀두었던 빨래 거리를 큰 마음먹고 해치우는 요즘이라서 건조대엔 마른빨래가 수북했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기도 했고, 왠지 마른 가을바람이 좋아서 빨래를 하고 싶어졌다. 시골집 마당에서처럼 빨랫줄을 걸고 따가운 햇살에 널어 말리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집안 건조대에서 마르는 빨래도 나름 보송보송한 게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빨래를 개다 말고 중얼거렸다.

"이제 다들 출근을 한 모양이구나. 좋겠다. 나도 출근이나 했으면 정말 좋겠다"

어제 종일 내리던 비도 그치고, 아침 햇살이 유리알처럼 반짝이고 있으니 출근길의 발걸음도 덩달아 반짝이고, 콧노래도 하나쯤 흥얼거리겠네? 얼마나 좋아? 아침이면 부지런을 떨어 갈 곳이 있다는 건 큰 행복인 거야. 백수로 서너 달쯤 살다 보면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진리였다. 벌이가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떠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였다. 갈 곳이 있고, 없고의 문제였다. 벌이의 변변함은 나중이었다.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마냥 한심스럽고 싫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었다. 길고 지루한 장마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해서 오는 비를 막을 수 없듯, 일상이 된 백수의 나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몸에 탈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서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일이었고, 그래야만 하루라도 바삐 몸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서두르고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젠장! 또 궁상맞은 생각이네!"

머리를 가로저으며 우울한 생각을 잘라냈다. 주섬주섬 갠 빨래를 제자리에 넣으며 부러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쳐다봤다. 종일 비에 씻긴 햇살은 눈부셨고 바람은 또 어찌나 상쾌한지 몰랐다.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만 아직도 눅눅한 장마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 나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야지? 세탁기가 놓여있는 보일러실의 문을 열고 아직도 남은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마자 넣고서 세제를 털어 넣었다. 물의 높이며 헹굼의 횟수를 눌러 확인한 후 시작 버튼을 눌렀다. 빨래야 세탁기가 알아서 할 것이고 나야 늘 하던 짓이나 해야지. 남자가 핸드폰을 찾아들고는 저장된 사진을 뒤적거렸다. 오늘은 어떤 녀석을 불러내어 분칠을 하고 이야기로 지은 옷을 입힐까? 그래 봐야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오는 일도 아니었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긴긴 하루를 멀쩡한 정신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사진 한 장을 꾸미고 그에 걸맞은 글을 쓴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몇 시간의 중노동을 필요로 하는 고된 일이었다. 읽어주는 사람도 몇 안 되고 가타부타 평가도 없는 글이지만 설렁설렁 사탕 한 알 비닐을 벗겨 입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다. 돈벌이를 위한 것도, 남들의 평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제 흥에 겨우면 그만이었고, 조그만 위로가 돼주면 그만이었다. 물론, 그런 마음은 있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얼토당토않은 야무진 바람은 있었지만, 다들 보는 눈이 있는지라 시작할 때보다 오히려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이 더 글을 읽어주는 부류는 쪼그라들고야 말았다. 자업자득, 재주 없음이 안타까울 뿐 크게 실망할 것도 없었다. 시간 죽이기에 차출된 똘망한 병사려니 하면 그만이다. 아, 물론 어느 정도는 똘똘하고 붙임성도 있어야만 했다. 소위 얘기하는 고문관에다 어리바리한 녀석이라면 한두 번 교전에 투입하다 말고 이내 백기투항을 선택할지도 모를 일이어서 그렇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나르키소스처럼 자아도취는 어느 정도 필수이기도 했다. 그래야만 토굴에 들어앉아 세월을 견딜 수가 있었다. 죽은 자리에 수선화 한 송이는 피워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끄적거려 만든 글이며 글씨들은 공들인 만큼 몇몇은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남자는 하루의 대부분을 글을 쓰고 캘리그래피를 쓰는데 할애하며 보냈다. 그런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잡생각은 양념처럼 주방을 차지하고 앉아 감 놔라 배 놔라 어깃장을 부렸지만 굳이 내쫓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다른 것에 집중할 것도 없어서였다.

한참을 남자가 사진첩을 뒤적여서 집어 든 사진은 며칠 전에 찍었던 해바라기 사진이었다. 다양한 사진이 구비돼 있는 게 아니라서 선택의 폭은 좁았다.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물론 어려웠겠지만 없는 것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단순하게 보기 좋은 사진이라면 그나마 어렵지 않겠지만, 사진에 어울릴 이야기 한토막을 지어내야 했으므로 사진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도 기울이고 다문 입을 열기 위해 말도 붙여만 했다. 돌잡이 어린애를 앞에 두고 갖은 아양을 떨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다 분칠 한 피에로를 자처해야만 까르르 아이는 웃음을 터뜨렸고, 진땀을 쏟아가며 순간을 기다리던 사진가는 찰나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듯, 남자도 고른 사진을 앞에 두고 애교를 부려야만 하는 시간이 허다했다.

"얘? 그날 있잖아? 며칠 전에 날은 잔뜩 흐리고 강바람은 사납던 날 말이야? 그때 얼굴이 잔뜩 굳어있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니?"

남자가 말을 걸었지만 해바라기는 뾰로통 내민 입술을 꾹 다물고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은 고사하고 아예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나도 가끔 그런 걸 뭐. 그런 거 있잖아? 기껏 전화해서 뭐해? 물었더니, 나 지금 바빠! 쌀쌀맞게 전화를 끊으면.... 에이, 갑자기 기분이 그렇다. 너도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괜찮아"

다 이해된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해바라기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건만 날은 꾸물대고, 바람은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먹장구름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고, 오늘은 해님을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실망만 가득했을 터였다. 긴 기다림의 시간과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은 원망으로 변했다. 화가 치밀고 짜증은 있는 대로 치솟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 않고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와서 웃고 떠들었다. 가만가만 보고만 간다면 오죽 좋았을까 마는 어디 사람들이란 족속이 그랬을까? 여기를 보라는 둥 이파리를 잡아끌기도 하고, 활짝 웃어보라고 주문을 쏟아내기도 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별로라며 타박도 했을 테고, 반대로 은근슬쩍 꽃가지를 꺾기도 했겠지. 가뜩이나 기다림이 수포로 돌아가 울고 싶었던 해바라기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아버렸을 게 뻔했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들은 자꾸만 밀려와 뭐가 그리 좋은지 호호 깔깔 한바탕 소란을 떨고서야 겨우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남자가 그날의 광경을 떠올리다가 말을 건넸다.

"아, 맞다. 분명 그랬던 거 같아. 나도 거기에 일조를 했었구나. 미안해!"

남자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었다. 활짝 핀 해바라기가 반가워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우르르 달려들었던 거 같았다. 그리고는 요목조목 뜯어보며 타박의 말도 한 됫박 쏟았던 거 같았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되려는지는 모르겠어. 아저씨가 네 얘기를 글로 쓰고 사진도 예쁘게 꾸며서 오래 두고 볼 수 있게 할게. 어때? 마음에 드니?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해바라기가 배시시 웃었다. 웃기는 아저씨를 다 보겠네 하는 마음이었을까. 이유야 어떻든 웃는 녀석이 예뻤고 고마웠다.

"참 다행이야. 그렇게 웃으니까 정말 예쁘구나. 미처 몰라봤네. 하하하"

작은 방에 남자의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노랗게 웃고 있는 해바라기가 좋았다. 등 돌리고 앉았다고 해서 돌아앉은 사람이 정말 밉겠어? 토라진 순간의 미움이야 잠시 머물겠지만 이내 눈 녹듯 사라질 미움이고 원망인 것을. 땅바닥만 보고 있는 꽃이라고 해도 어차피 꽃이 아닌 게 아니었다. 토라졌어도 예뻤고, 오히려 귀엽기도 했다.

"넌 참 좋겠다? 요렇게 뾰로통한 얼굴도 예쁘고, 게다가 다들 널 보면 어머머, 참 예쁘기도 해라! 환하게 웃어도 주고...."

남자는 해바라기가 부러웠다.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오늘은 뭘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사소한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자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왜요? 아저씨도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지난번에 같이 오셨던 아주머니도 참 예쁘시고.... 보면서 두 분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호호호"

해바라기와 남자가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았다. 침묵만 가득하던 방에 오랜만에 대화하는 소리가 정겨웠다. 혼자 살게 된지도 벌써 십여 년을 넘기고 있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게 종일 입을 다물고 사는 거였다. 가끔은 내 목소리가 어땠는지 가물가물 할 때도 있었다. 사람이 그리운 남자였다.

"그랬니? 근데 사실 그녀는 날 별로 안 좋아해.... 너라도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

남자는 갑자기 순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물론 또 '나 지금 바빠!'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