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먹었니?"
남자가 숟가락을 막 내려놓았을 때 문자가 날아들었다. 짧은 문자였지만 받아보는 남자에겐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다리던 안부 문자였다. 귀에 익숙한 알림음은 문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굳이 화면을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쩌다 예상을 깨고 엉뚱한 스팸문자가 버티고 있기도 했지만 예상이 빗나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응, 방금 먹었어. 넌 먹었니?"
문자를 확인하고는 말이 땅에 떨어져 먼지라도 묻을까 싶어서 바로 답장을 보냈다. 문자를 작성하고 보내는 그 짧은 시간에 이미 입꼬리가 올라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 걸까? 아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만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맞을 터였다. 단순하고 변화도 없는 날들이 반복되는 생활이다 보니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건 그녀로부터 날아드는 문자가 전부였다. 연고도 없는 곳에 홀로 떨어져 살고 있어서 만날 사람도 없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남자를 쳐다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남자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특별한 외출이 아니라면 사흘이고, 닷새고 방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가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섬주섬 화선지를 찾아들고는, 가을이라는 둥 국화꽃을 기다린다는 둥 하는 짧은 낱말 하나 끄적이는 게 전부였다. 뜬 구름 잡듯 한 말들이었고 생각이었지만 그에겐 하루를 버티는 힘이었다. 그의 가을 풍경은 창밖에 있지 않았다. 들판에 벼이삭이 고개를 떨구고, 논의 사잇길에 하얗게 피는 억새꽃도 머릿속에서 이파리를 키우다 어느 날 불쑥 콩나물 대가리를 내밀듯 피었을 뿐이다. 새가 날고 멀리 타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마저도 그의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열린 창으로 아득하게 들려오는 여객기의 비행음이 들리면, 남자의 눈은 반짝였고 귀는 소리가 멀어지는 곳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거기엔 새털구름이 카펫처럼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비행 중인 비행기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지상으로의 낙하는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두터운 요가 겹겹이 깔려서 파란 멍울 하나 생기지도 않을 터였고, 브이자 대형을 유지하며 남하하는 기러기 떼와 어울려 한 때를 보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의 상상 속에서 구름은 피어났고, 철새의 비행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그의 방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의 하루를 들여다본다면 답답한 마음에 울화가 치밀 정도였다. 움직임도 없었고 외출도 거의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성긴 외출이라고 해봐야 고작 마트에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버티다 마지못해 나가는 외출이었다. 등 떠밀려 어쩔 수 없는 외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한 발 한 발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고 두 어깨엔 세상 귀찮음이 몇 섬은 올려져 있었다. 몇 날을 감지 않은 머리는 제 멋대로 들러붙어 가관이었고 세면대에 놓인 면도기엔 털어내지 못한 수염이 고스란히 말라붙어 있었다.
"이런 젠장! 어디 수염이나 깎이겠나?"
건조하게 말을 뱉고는 세면대며 수납장을 열어 구석구석 두리번거렸지만 멀쩡한 면도기 하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덥수룩한 수염으로 외출을 할 수는 없었다. 방금 산에서 내려온 산도적도 아닌데 남보기에 너무하다 싶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을 받아 면도기를 불렸다. 그의 외출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쌀이 떨어지면 쌀을 샀고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햄이며 소시지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게 뻔했으므로 그의 손에 들린 것들은 대부분 대용량이었다. 꼼꼼하게 쇼핑 목록을 쓰고 장을 보는 것도 아니라서 몇 되지도 않는 장보기에도 빼먹는 게 태반이었다. 고등어 통조림이라도 하나 사야지 했다가도 커피 한 병을 집어 들다 보면 어느새 고등어는 까마득히 잊혔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등어는 살아 바다로 내빼고 말았다.
"어라! 고등어 통조림이 없네? 안 샀나?"
봉투가 뜯어져 빠졌을까? 요리조리 봉투를 살펴도 봤지만, 애초에 그의 장바구니엔 고등어란 놈이 있지도 않았다. 심드렁한 시간이 간도 안 된 미역국처럼 미끄덩거렸다.
밋밋하고 밍숭 밍숭 한 날들이 이어질 때, 가뭄에 단비처럼 내리는 반갑고 시원한 손님이 그녀였고, 그의 문자였다.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느닷없었지만 언제나 버선발로 마중을 했고,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있다가도 놀란 토끼눈을 하는 건 예사였다. 학의 목이 될 만큼 목을 길게 빼고서 마을 어귀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둑어둑 저녁이 다 돼서야 발걸음을 옮기며, 오늘은 오지 않으려나 보네 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불쑥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 왔어? 집에 있니?"
그를 부르기라도 한다면 버선발이 아니라 맨발로 마당에 뛰어내릴 판이었다. 사람이 그리웠고 온기가 그리웠다. 석 달 열흘이 지나도록 그의 집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첩첩산중에 움막을 짓고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 딱히 찾아올 사람도 없었고, 몸이 불편한 그여서 굳이 손님을 청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스스로 파고 들어간 토굴에 갇혀버렸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몇 발의 높이로 담장을 쌓고 그만큼의 토굴을 파고 들어간 것만 같았다. 자초한 거여서 뭐라 탓할 사람도 없었다. 과히 나쁘지도 않았다. 가끔씩 찾아드는 외로움이 문제였지만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잣거리에 앉아 있어도 외로움은 느끼는 거였다. 그런 그에게 세상을 향해 열린 창 하나가 그녀였다. 이것저것 숨기고 가릴 것도 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한 명이기도 했고, 오래전부터 은근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한바탕 마당을 휘젓고 달아나는 돌개바람처럼 빙빙 주변만 서성이다가 정작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지만 달궈진 흙마당을 휘젓는 바람으로 그녀를 맴돌았다.
"저녁은 뭐해서 먹었어? 찌개라도 하나 끓여서 먹지?"
"나야 뭐 그렇지. 김치에다 햄 하나 굽고.... 아, 맞다. 전에 네가 담가 준 양파장아찌에다 그렇게 먹었어. 양파가 정말 맛있어서 아껴먹고 있었거든."
"그랬구나! 양파가 혈관질환에 좋다잖아. 아껴먹지 말고 많이 먹어. 그렇게라도 거르지 않고 챙겨 먹으니까 보기 좋아"
양파에다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익은 양파장아찌가 정말 맛있었다. 입술이 얼얼하고 목구멍이 따갑게 매운맛이 아니라 적당히 땀도 나고 입맛을 돋우는 맛이어서 끼니마다 상에 올리고 있었다. 한 끼를 먹을 때마다 그만큼 줄어드는 게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거의 다 먹었어. 또 담가줄래? 이왕이면 많이 담가줘라. 네 말대로 많이 먹게 ㅎㅎ"
남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문자를 보냈다. 홀아비 살림이란 게 뻔해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니라면 굳이 부지런을 떨어가며 먹는 건 쉽지가 않았다.
벌써 해를 넘긴 얘기지만 남자는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동맥경화 시술을 받았었다. 발바닥으로 내려가는 혈관이 발목에서 막혔다고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막힌 혈관이야 가벼운 시술로 뚫을 수 있었지만, 한 번 망가진 말초신경은 회복되는데 쉽지가 않았다. 담당의에게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물었을 때 너무 조급해 마시고 우선은 당뇨관리에 신경 쓰라는 말이 돌아왔다. '조급해 마라'는 말에 숨이 멎을 뻔했다. 쉽지 않다는 말이었고,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예전으로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등 뒤에 숨어서 남자를 쳐다봤다. 의사의 말처럼 벌써 일 년을 넘기고 두어 달이 더 지났다.
그때부터 양파가 혈관질환에 좋다는 얘기는 주변으로부터 종종 듣고 있었고, 많이 먹으라는 얘기는 귀에 딱쟁이가 앉도록 들었지만, 옆에서 누가 챙겨주는 게 아니라서 막상 챙겨 먹는다는 건 쉽지가 않았다. 생으로 썰어 쌈장에 찍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날마다 먹는 건 고역이었다. 이마에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독함이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기만 했다.
"아니, 내가 왜? 싫어, 네가 만들어서 많이 먹어라. ㅎㅎ"
어라, 뭐지? 굳이 말꼬리를 잡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누라도 아니었고, 피붙이도 아니었으니 해라, 마라를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 자르듯 단박에 싫다고 거절할 것 까지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우린 연인이 아니라 특별한 친구라고 누차에 걸쳐 강조를 했었다. 그녀의 말 대로 특별한 친구에게 그까짓 장아찌 하나 담가준다고 무슨 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말도 참 예쁘게 한다. 그래 알았어. 다음에 해 줄게 하면 누가 달력에 적어놓고서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기라도 한다든?"
여상 밖의 말이 돌아왔을 때 남자는 놀라고, 서운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면 그것도 거짓말이었지만, 평소에도 늘 쏘아붙이듯 말을 했기에 개의치 않았다. 말은 가끔 찬바람이 쌩쌩 불듯했지만 이것저것 챙기는 마음 씀씀이는 그렇지 않았다. 정이 과분한 그녀였다.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숟가락 하나부터 밥그릇까지 모두가 그녀가 준비한 거였다. 혼자 산다고 해서 달랑 숟가락 하나에 밥그릇 하나면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먹는 입이 하나일 뿐이지 남들 있는 건 다 갖춰야만 했다. 찌개를 끓일 냄비도 두엇 있어야 했고, 달걀 프라이라도 부치려면 프라이팬도 있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남자가 챙길 수 없는 것들 하나하나를 세심히 챙겼다. 이불이며 매트리스 커버까지 온갖 것들이 다 그녀의 챙김이었다. 거기다 더해 집안엔 그래도 화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며 들여놓은 화분도 몇 개나 되었다. 남자도 꽃을 키우는 걸 좋아했던 터여서 애지중지 돌보는 녀석들이다.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녀석들과의 동거가 벌써 햇수로 사 년이 넘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투를 이해 못할 게 없었다. 아직 한창이어야 할 나이에 덜컥 몸에 병을 얻었다는 게 짜증스러웠을 터였고, 점점 위축되고 쪼그라드는 남자의 모습에 화도 치밀 터였다.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는 모습은 또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도 그랬다. 활기를 잃어가는 자신이 싫고 미웠다. 그럴수록 밖으로 나돌고 생기를 얻어야만 했지만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의지가 모자란 것에 화도 났고, 짜증도 났지만 좀처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쏘아붙이는 말투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난 어땠을까? 웃는 날이나 있었을까? 그녀는 남자에게 웃음이었고 세월을 견디게 하는 이유였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있잖아, 예전 드라마에 나오던 쿠웨이트 박이라고 생각나니?"
"응, 생각나지. 꼬불꼬불 라면머리에다 그.... 뭐였더라? 암튼, 대사도 참 재밌고 웃겼었는데.... 근데 왜?"
"아, 그게.... 오늘부터 넌 꽈배기 박 해라 ㅎㅎ 베베 말을 꼬는 게 라면 머리의 쿠웨이트 박이 너랑 딱이야ㅎㅎ"
뭐라고? 가자미눈을 뜨고서 눈을 흘길 그녀가 눈에 선했다.
"그래, 알았어. 꽈배기 박 하자. 호호호"
여자가 환하게 웃었고 남자도 따라 웃었다.
"꽈백아? 우리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을래?"
"아니 왜? 내가 너랑 밥을 먹니? 싫다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