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별? 두별!

널 잊고 살 자신이 없어_03

by 이봄


서쪽 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타닥이던 불꽃이 마침내 사그라들면 초승달 빼꼼히 떠오르고, 연이어 개밥바라기도 작은 눈망울 깜빡이며 떠올랐다. 마을을 배회하던 떠돌이 개가 잠자리를 구하고, 종일토록 마당을 서성이던 백구가 배고프다며 하늘을 향해 컹컹 짖어대면 뜬다고 했다던가. 초저녁 하늘엔 점점이 달이 뜨고 개밥바라기가 덩달아 떴다. 고단한 시간이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였다. 뿌옇게 동이 트며 시작된 하루는 해가 정수리에 떴을 때 큰 숨을 몰아쉬듯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을 뿐, 아낙들은 밭고랑에서 허리가 굽었고, 남정네들은 논이며 화전밭 비탈에서 손톱이 닳고서야 허리를 한 번 폈다. 주책맞은 배꼽시계는 어쩌면 그렇게 빠짐도 없이 꼬르륵꼬르륵 때를 알리고, 허리를 바짝 접게 하는지 몰랐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했다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노동이 꼬박 별처럼 하늘에 매달리도록 땅을 파고, 잡초를 뽑아도 멀건 보리죽 한 사발이 소반에 팽개쳐지듯 올라왔을 뿐이었다. 스멀스멀 산비탈에 어둠이 내리고서야 사람들은 괭이를 손에서 놓았고, 손바닥에 들러붙은 호미를 떼어낼 수 있었다. 고단한 시간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젖먹이는 어미의 젖을 물었다. 하늘을 날던 새들도 둥지를 틀어 날개를 접었다. 갓 태어난 고라니는 종일 천방지축 날뛰더니 어미 품을 파고들어 젖을 물었다. 갈대 우거진 강변엔 여기저기 웅덩이처럼 갈대가 쓰러지고 고라니며 노루들 잔뜩 웅크려 잠을 청했다. 그제야 스산한 바람 불었고 서걱서걱 잠들지 못한 갈대들이 귀엣말을 속삭였다. 그렇지만 갈대들도 목청을 낮춰 서걱였다. 강변의 갈대숲에도 시끄럽지 않게 밤이 내렸고, 화전민 마을에도 밤이 내렸다. 어쩌다 속을 채우지 못한 개 한 마리가 낑낑댔지만 그게 전부였다. 밤은 짧았고 뒷산 너머엔 벌건 해가 웅크리고 있었다. 두런두런 풀벌레들만 깨어 별을 헤아렸다.

방죽으로 이어진 둑방에 앉아 별을 보고는 했다. 한 춤 꺾인 열기는 바람에 밀려가고 손이 시리도록 은하수 흐르면 귀청 따갑게 풀벌레가 울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마을엔 창 하나 밤늦도록 불이 환했고 가끔 컹컹 개가 짖었다. 어둠이 좋았다. 기대어 앉은 두 어깨를 살포시 감싸기도 했고, 잔뜩 달아오른 얼굴을 가려주기도 했다. 부끄러움을 덜어내고서 용기를 더해주기도 했다. 게걸음 걷듯 손가락으로 걸어 겨우 잡았던 손목도 해걸음이 지나서였다. 콩닥거리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 요란을 떨 때쯤 귀신새 휘이 휘이 울면 은경이는 소스라쳐 품을 파고들었다지. 밤이면 그렇게 울어대던 호랑지빠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저 우라질 놈의 새는 재수 떼기 없게 밤이면 울고 지랄인지 모르겠구먼...."

욕을 바가지로 퍼붓던 사내놈도 품에 안기는 은경을 보듬으며 씩 웃고 말았다. 밤이 좋았다. 고단함을 다독이는 손길처럼 푸근했고 지는 노을처럼 붉어 더 뜨거웠다.

" 저기 저 별은 은경이 니 별하고 고 밑에 반짝이는 저 별은 내 별 하자. 알았제?"

별 둘이 유난히 반짝였고 눈치 빠른 호랑지빠귀는 귀신새로 울었다.

달도 뜨지 않는 밤에 개도 더는 짖지 않았다. 방죽으로 이어진 둑방엔 찰랑찰랑 별들이 쏟아졌고 목이 쉰 풀벌레들은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지만 어쩐지 호랑지빠귀는 울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터였다. 미안하다며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가 떠나던 날부터 달도 뜨지 않았고, 별도 뜨지 않았다. 눈치 빠른 개들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까만 밤이 싹둑 베어진 하늘엔 두 별이 빛나던 자리만 텅 비었다. 잔뜩 웅크린 그림자 하나가 애먼 풀들만 쥐어뜯는 밤에 바람만 둑방을 오갔다.


말들이 좋았고 살갗에 닿는 바람이 좋았다. 밤하늘 가득 반짝이던 별들이 한순간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았던 순간이 좋았고, 품에서 쌔근쌔근 졸던 너의 숨소리는 숨이 멎게 벅찬 행복이었다. 다시는 느끼지 못할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은경아? 너 그거 아니? 난 말이야 정말 네가 좋다. 아니, 난 널 사랑해!"

들릴 듯 말 듯 사내 녀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백을 했을 때, 계집애는 쌔근거리고 있었지만 뛰는 심장만은 숨길 수 없었다. 계집애는 계속 잠을 자고 있었고, 사내놈은 밤이 깊도록 혼잣말로 토닥였다. 거친 호흡과 그 호흡보다 더 거친 몸짓은 어울리지 않는 밤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바랄 것도 없었다. 바라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건 어쩌면 근육에 쌓이는 젖산과도 같아서 근육에 피로를 쌓이게 하고, 마침내 하루쯤의 목숨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고 생각했다. 네 별과 내 별이 오래도록 반짝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래도록 반짝였으면 하는 바람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별이야 늘 그 자리에서 반짝일 터였다. 수십억 년 전부터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고, 못해도 앞으로도 그쯤은 더 반짝이겠지만, 바라보는 나와 그가 얼마를 더 같이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각자 따로따로 바라보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저 많은 별들 중 어느 틈바구니에서 빛나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별이었다. 같이 보지 못한다면 별이란 놈도 결국은 그저 스치며 불어 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바람도 그랬고 별도 그랬다. 마음에 담았을 때 비로소 특별해지고 의미가 있는 것에 불과했다. 앉은뱅이책상에 쪼그려 앉아 사내 녀석이 붓을 잡은 시간에도 별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차마 이별이라 쓸 수가 없었다. 이별이라고 쓰는 순간 정말 이별일 것만 같아서, 이별을 인정하는 순간 영원히 헤어질 것만 같아서, 기껏 에둘러 쓴다는 말이 '두별'이었다. 남들이야 '두 별'도 아닌 '두별'이 뭔 말인가 싶겠지만, 정말이지 그러거나 말 거나였다. 오히려 알아듣지 못할 말이 편하고 좋았다. 혼자만의 주절거림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우리 그만 봤으면 좋겠어. 카톡이며 문자도 더는 보내지 않을 거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소식이야 가끔 건너 건너 듣는 거로 하자. 미안해! 우리, 그렇게 하자. 응?"

그녀가 그러자는데 더 없어 보이게 싫다고는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다 사내 녀석도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은경이 너의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 그러자. 잘 지내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동의할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지만, 오히려 속내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치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러자고 얘기할 수밖에는 없었다.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 이별을 하겠거니 하는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는 없어서, 잠시의 머뭇거림 말고는 더는 거부의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러자 라는 동의의 말도 남자에겐 거부의 말이었다. 그게 고작이었고 전부였을 뿐이다. 무심한 시간과 무심한 바람이 불었고, 이별이니 하는 아픈 마음은 단지 남자의 몫이었고 마음이었다. 여전히 하늘엔 두 별이 빛났고, 두별이 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마 쓸 수 없었던 이별은 가슴속 깊히 숨겼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픔이 옅어지면 꺼내 볼 날도 있겠지.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장농 깊히 넣어둔 일기장처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옅어지고 희미해질 망각의 강을 사이에 두고서 남자는 강 건너에 앉아 있었다. 새벽은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고 정갈했다. 방금 비질을 끝낸 마당처럼 가랑잎 하나 뒹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