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개나리

널 잊고 살 자신이 없어_02

by 이봄


봄이면 노랑나비 한 마리 먼저 반겼으면 좋겠어. 여기저기서 다투듯 꽃은 필 테고, 나무들도 잎을 틔워 여린 초록으로 온산을 덮을 테고 말이야. 그런 봄날은 꼭 짧은 낮잠에 꾸는 꿈같아 좋았어. 볕이 좋은 계단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남자가 떠올린 봄날이었다. 계단 주변으로 활짝 핀 개나리가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무리 지어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다가 문득 칼국수를 생각했다. 딱히 배고플 시간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따끈하고 얼큰한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솥뚜껑 뒤집어 부쳐내던 노란 지지미가 생각이 났고, 냄비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도 떠올랐다. 이유야 알 수 없었다. 그냥 치자 물 곱게 들인 밀가루 반죽이 노란 개나리꽃과 오버랩되어서 그랬을까?

그날도 오늘처럼 오락가락 비가 내렸고, 훅하고 끼쳐오는 흙냄새가 유독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산을 받쳐 들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사람들은 바빴다.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좌우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가볍게 부딪히는 것쯤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처마 밑을 찾았고, 건물의 출입구는 옹기종기 들어찬 사람들로 북적였다. 때로는 바쁘게 뛰듯 걸었다. 약속시간에 늦은 남자는 우산도 없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비에 젖는 것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덜컹대는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서 막 올라온 어머니가 그를 반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맞선 자리에서 첫눈에 반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커피숍 커다란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는 그녀는 한껏 멋을 부렸고,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 어울리는 노란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꽂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자는 결혼 적령기를 막 벗어난 노총각이었다.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시골에서 상경한 촌뜨기였다. 오늘도 지인의 소개로 마련된 선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비를 만났다. 가뜩이나 긴장된 터여서 정신이 아득했는지 생각은 뒤죽박죽 갈피를 잡지 못했다. 느닷없이 어머니가 올라올 일도 없었고, 퇴짜를 놓았던 지난번 맞선녀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뭔 미친 생각인지 몰랐다. 정신줄을 놓은 게 아니라면 몰라도 어디 가당키나 한 생각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순진했고 착했지만 좀 어리숙했다. 세상 물정도 어두웠고 특히나 여자라면 더욱 숙맥이었다. 비에 젖은 그가 마침내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맞은편 자리에서 일어서며 남자를 반겼다.

“아, 순이 씨. 제가 너무 늦었죠? 서둘러 온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길이 너무 막히더라고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도 조금 전에 왔는걸요. 근데 어째요. 비를 다 맞으셨네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까짓 비쯤이야...."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잇몸까지 드러내며 웃는 모습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게다가 오면서 횡설수설 떠올렸던 노랑나비가 눈앞에 있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우리 뭐라도 마셔요? 비도 오니까 따뜻한 차가 좋겠어요. 호호호"

약삭빠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서두를 것 없이 터벅터벅 걸었지만 그래서 더 듬직한 황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엉거주춤 자리를 잡는 둘의 얼굴에 안도의 눈빛이 스쳤다. 서로의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기다리다 가버리지나 않았는지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기다려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에요. 고마워요. 순이 씨”

“가다니요? 약속시간에 좀 늦을 수도 있죠.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내리잖아요.”

둘의 대화가 이어질 때 나풀나풀 노랑나비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았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누렁이가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였다.


있잖아, 나 칼국수가 먹고 싶어...

오래전 그날도 그랬다. 허기를 느꼈다. 굳이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식욕을 느꼈다. 한상 차려진 밥상은 좀 거하게 느껴졌다. 간단하게 라면이라도 끓일까? 비는 추적이고 있었고, 허기지지도 않은 배는 꼬르륵 유난을 떨었다. 마치 장난감 하나 얻으려고 발버둥 치는 아이의 투정 같았다. 가게 바닥에 벌렁 눕고는 발버둥 치면서

"엄마, 저 비행기 사줘요. 엄마, 엄마..."

떼쓰는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면 비행기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꼬르륵 유난을 떠는 위장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방을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그녀가 물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님, 뭐 먹을 거라도 줄까?”

“응, 배고파! 이상하게 벌써 배가 고프네.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는지 허기가 져”

“그래?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해줄게!”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번거로울까 싶어서 망설였지만, 정말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말을 꺼내면서도 그녀가 귀찮다며 거절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면 나 얼큰하게 칼국수나 좀 끓여줄래? 번거롭겠지만...”

남자가 얘기했을 때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애호박 숭덩숭덩 썰어놓고, 청양고추도 두엇 송송 썰더니만 이남박 너른 품에 밀가루를 붓고 반죽을 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반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멍하니 바라만 봤다. 무슨 말이라도 나눴으면 더 좋았을까? 빗소리를 들으며 치대지는 반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비 내리면 왜 밀가루 음식이 당길까?"

굳이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했다. 가끔 궁금하기는 했다. 비 오는 날과 밀가루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러더라 호호호”

그녀가 웃었다. 빗소리는 점점 굵어졌고 그에 따라 둘의 웃음소리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 이런 개나리 같으니라고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말들이 있었다. 억지스럽게 떠올려야만 하는 말들이 아니었다. 조건 없는 반응이었고,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된 반응이었다. 연분홍 우산이 있었고, 우산 없이 뛰어가던 그가 있었다. 향이 좋은 커피와 이층에 자리한 커피숍의 품 넓은 통창이 있었다, 파라솔에 기댄 한 평 남짓한 꽃집과 향기 담뿍 피워내던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이며, 잇몸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그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 정말 잘 어울리던 그녀의 노란 머리핀이 있었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노랑나비 나풀나풀 꽃처럼 날던 시간의 끝에는, 이유도 알 수 없는 허기진 그가 있었다. 조각조각 떠올라 시간과 공간을 부유하다가 우수수 꽃잎으로 떨어지는 말들이었다. 만개한 벚꽃이 부럽고 미웠었던지 잔뜩 심통이 난 바람이 소나기구름을 몰고 와 돌풍으로 불던 날, 꽃잎은 맥없이 바람에 날렸다. 낙화였다. 허무하게 무너진 꿈이었고 봄날이었다. 난데없이 함박눈이 내리듯 거리는 온통 비바람에 찢긴 꽃잎이 하얗게 뒹굴었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끼니를 챙기고 돌아섰는데도 이내 밀려오는 배고픔은, 비에 새겨진 말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여전히 그는 얼큰한 칼국수가 먹고 싶었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가 몰려와 주방을 서성이고야 말았다. 냉장고 앞에서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아마 대여섯 번은 열어본 냉장고에는 그의 허기를 달랠 무엇도 없었다. 알면서도 서성이다가 또 손을 뻗어 열어봤다. 마치 처음 열어본 것처럼 구석구석 찬찬이 살피다가 아무것도 없음을 재차 확인하고는

“아, 이런 개나리 같으니라고...”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고야 말았다. 봄이면 어김없이 개나리꽃이 피었고, 예고되지 않았던 봄비가 내렸다.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들어선 커피숍에는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오래전 그날에도 봄비가 그렇게 내렸었고, 작별의 말을 남기고 그녀가 떠나던 날에도 꽃잎이 다 젖도록 비가 내렸다. 정작 비는 꽃들이 맞고 있었지만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뚝뚝 물을 떨구며 서 있었던 건 남자였다. 거실 바닥이 흥건히 다 젖도록 비를 맞았고, 눈치도 없는 배는 여전히 얼큰한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비 내리는 날 마주하는 개나리꽃은 나비로 날았고, 허기진 배고픔으로 꼬르륵 요란을 떨었다.

"왜? 또 칼국수가 먹고 싶은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금방 얼큰하게 끓여줄게! 그나저나 애호박 쓰고 남겨놓은 게 있었는데...."

귀에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바글바글 물 끓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송송 썰어 넣은 청양고추가 맵게 끓었다. 보글보글 달그락달그락 냄비 뚜껑을 들썩이게 하면서 칼국수가 끓었다. 주방을 떠나지 못한 남자가 멍하니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비와 더불어 얼큰하게 끓여내던 그녀의 칼국수를 지우지 못했는데, 그녀는 정작 떠나고 없었다.


말은 그대로 남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언제나처럼 꽃은 피고 나비는 날았다. 통유리 넓은 창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문득, 멀리 떠난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익숙한 샴푸 냄새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만으로도, 칼국수며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생각났다. 그리운 것은 향기로 남았고, 소리로 기억되었다. 비 내리는 거리는 화들짝 놀라 떨어진 꽃잎들의 무덤이었고, 추억을 뿌리치지 못하고 칼국수집을 찾아드는 남자의 어제이기도 했다. 만개한 개나리꽃을 들여다보다가 남자는 생각했다. ‘개나리꽃에도 여느 꽃들처럼 꿀이 나오는지? 달고 아린 화분이 맺히는지?’ 궁금했다. 꽃잎 속 말랑한 꽃 반죽에 날벌레 두 마리 꿀이라도 찾는 것인지 정신없이 부산을 떨고 있었다.

“너희도 허기진 몸뚱이로 몸살을 앓았니? 무에 그리 급하다고 날개도 접지 못하고 부산을 떠는 거니?”

꿀을 찾아 들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만 하는 수 백 수천의 날개 짓이, 허허로운 몸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마르지 않는 꿀샘을 핥아 배가 터지도록 꿀을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나리꽃 노란 뜰에도 꿀샘이 있는지, 알싸한 꽃가루가 넉넉하게 맺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봄비가 내리면 저도 모르게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자신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허기진 배는 서글펐고 눈물 한 됫박이었다. 봄이면 피고 지는 개나리꽃은 애증이었다. 그녀가 떠올라 엷은 미소를 짓다가도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봄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아, 젠장 맞을 개나리 같으니라고...."

푸념의 말을 뱉고야 말았다. 남자는 아직 그녀를 잊지 못했다. 무릎이라도 꿇어 그녀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 깨진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고 해도 함박웃음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요즘도 느닷없이 허기가 찾아들면 문득문득 그녀의 칼국수가 생각났다. 손 빠르게 반죽을 치대다가 넓게 편 반죽을 홍두깨 대신 빈 술병으로 몇 번이고 밀어 넓고, 얇게 만들었다. 서로 들러붙지 않게 밀가루를 솔솔 뿌리더니, 이불 개듯 몇 겹으로 접더니만 이내 칼로 썰어냈다. 일정한 간격에다 일정한 속도로 칼질은 이어졌고, 도톰한 면발이 착착 쏟아지듯 나오는데 참 신기하다 싶었다. 몸에 익은 동작은 기계보다도 더 빠르고 일정하게 면발을 뽑아냈다. 그렇게 보글보글 끓여내던 그녀의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올해도 그때처럼 개나리는 피고 비도 내렸다. 상에는 보글보글 봄날이 끓고, 날벌레 배때기엔 달달한 꿀이 가득 차올랐다. 허기진 배를 안고 주방을 서성이는 그가 꼬르륵 소리를 내는 봄날에 어김없이 봄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