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꼬리를 흔들며 주인과 접시에 놓인 사료 몇 알을 번갈아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어. 마음이야 이미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날름 사료를 먹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지. 입을 벌리고 사료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천둥처럼 떨어질 주인의 불호령이 두려웠던 거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어. 그렇다고 송곳니를 드러낸다던가 하는 어설픈 시위를 할 수도 없어. 그러면 불호령이 문제가 아니고 어떤 체벌이 가해질는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웃음 뒤에 숨겨진 사나움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도 없지. 같이 살려면 꼭 배워야 하는 훈련이라는 데야 뭐라 반박할 것도 없더라고. 이 엄동설한에 밖에 나가봐야 개고생인 걸 뭐. 그렇잖아? 내가 한 덩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납기가 늑대 같은 놈도 아닌 걸. 거리를 배회하는 양아치들 사이에서 어디 밥이라도 한 덩이 구걸할 자신도 없고 말이야.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장 착하고 순종적인 얼굴을 하고서, 꼬리가 닳아 없어지도록 흔드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됐다 그래라! 주인의 명령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서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서서 자리를 피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만, 그것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야.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안 먹겠다는데, 더는 꼬리치고 침 흘리며 그깟 알량한 사료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대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러더라고.
"어라, 이것 봐라! 완전히 날 개무시하네"
완전 독기 오른 얼굴로 눈의 흰자위를 휘번쩍대면서 입에 게거품을 물더라고. 정말 웃기지도 않았고, 어의도 없었어. 그럼 내가 개라서 그러는 걸 어쩌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개가 무시를 했으니 개무시야 당연한 거 아니었나? 거기다 그것도 볼썽사납고 웃기더라고. 자기는 왜 사람이면서 게거품을 무는 건데? 의당 사람이면 사람 거품을 물어야 맞는 거잖아. 뭐랄까? 뭐 대단한 거라도 하사하는 듯 거만하고, 때로는 따사로운 대인배의 거들먹거림으로
"어허, 그러면 안 되지.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던? 말 잘 들어야 착하지. 응?"
뭐가 착하고, 뭐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물어나 보자고? 고깃덩이라도 던져놓고 하는 얘기라면 또 모를까. 기껏 말라비틀어진 사료 몇 알 꼴랑 던져놓고서 기다려라, 마라. 웬 놈의 주문은 그렇게 많은지 몰라. 생각해 봐. 역지사지라는 말도 있듯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고? 아니꼽고 더럽지 않겠어? 그래서 먹지 않고 돌아서겠다는데 뒤통수가 화끈거리게 그러면 되네, 안 되네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나. 거기다가 삐졌네, 어쩌네 놀리기까지 하면 정말 돌아버리지 않겠냐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것도 정말 화나고 모욕적인 거 같아. 무슨 갑질도 아니고 아무리 주인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래. 쥐방울만 한 녀석이 어디 어른의 머리를 쓰다듬고 턱을 간질이냐고? 버르장머리라고는 약으로 쓸려고 해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놈이야. 한마디로 네 가지가 없는 놈이야. 버릇을 가르치려면 제 자식 놈부터 가르치는 게 이치에 맞다고 봐. 그래? 안 그래? 어이고 꼴에 자식 욕한다고 못 들은 척 딴짓하는 거 보라지. 웃기지도 않네. 그러면서 내겐 잘도 떠들고 난리지.
"안 돼. 멈춰! 기다려.... 그래, 그래. 그래야 착하지. 잘했어."
착하긴 개뿔. 됐네 됐어. 너 잘났다, 잘났어. 욕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괸 침을 삼키듯,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어. 그놈의 밥이 뭔지? 따뜻한 잠자리가 뭔지? 포기할 수가 없는 거야. 말이란 놈도 참 무서웠고. 온갖 회유와 협박의 말들이 뒤섞여 날아드는데, 마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내겐 날아오는 화살로부터 날 지켜낼 게 하나도 없더라니까. 몸을 가려줄 성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조그만 방패도 없었어. 완전 무방비로 노출된 몸뚱이가 하나 있었던 거야. 고분고분 말에 복종을 할 수밖에 없었어.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먹으라면 먹어야만 해. 도저히 입맛이 없어서 먹기 싫을 땐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하고. 사실, 입맛이 없어서 먹는 걸 마다했던 기억은 없었어. 그냥 말이 그렇다는 예일 뿐이지. 어린 녀석이 수염을 뜯어도 마찬가지지 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 이미 사냥 본능은 사라지고 발톱은 무뎌져서 들판을 달리기엔 무리고 말이지. 어찌어찌 토끼라도 한 마리 막다른 골목에 몰아붙였다고 쳐도 그래. 사실 난 목덜미를 물어뜯을 송곳니도 없고, 피를 볼 자신도 없어. 생각만 해도 벌써 무섭고 징그러운 걸. 에이, 난 못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냥 이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아. 대들고 뿌리치려면 진작에 했어야 했어. 여태껏 참으며 산 세월이 어딘데 이제 와서 반항을 하겠어. 그동안 참았던 온갖 고초와 멸시가 아까워서라도 난 이대로 살 거야. 게다가 요즘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까 그럭저럭 견딜만하더라고. 면벽 수도하듯 밥그릇을 보며 닦은 수행의 결과물이 보이는 거 같아. 나름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해야 하나 몰라도 마음이 그래. 개 팔자가 이만하면 됐다 싶은 자부심도 생기고 말이야. 사실, 험담의 말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주인이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야. 품에 안기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인데. 그럼, 그만하면 좋은 사람이지 뭐.
오물오물 알사탕을 녹이듯 말은 입안을 맴돌며 녹고 있었어. 차마 입 밖으로 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꿀꺽 삼킬 수도 없어서 사탕 몇 알을 굴리고 또 굴렸지.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뭔데?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 봐?"
"있잖아? 그게.... 에이, 아니다...."
입안에 맴돌던 말들을 우물거리다 입을 다물었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다가 말게 되더라고. 두려웠어. 말을 뱉는 순간 이것마저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고 해야겠지. 욕심이란 끝도 없는 거라서 중도에 끊어내지 않으면, 결국은 손에 쥔 것 마저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말을 멈출 수밖에는 없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들이 쏟아질 테고, 욕심은 끝도 없이 덩치를 키우겠지. 그것도 두려웠어. 정말 욕심으로 끝날 게 뻔한 것들을 키워봤자 나만 거기에 깔려 발버둥 칠 게 뻔한데 뭐. 차라리 방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편하고 좋았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거칠 것도 없었고, 바람은 자유롭게 아득한 곳까지 나를 밀어 올릴 게 분명한 걸. 웅얼거리다 만 말들도 거기서는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거야. 봄날의 여린 잎으로 너풀거리다 여름이면 예쁜 꽃도 몇 송이쯤 피워내고 말이야. 담장을 높다랗게 쌓고 누구도 기웃거리지 못할 마당에서 꽃들은 만개할 거야. 예쁘네, 어쩌네 눈치 볼 이유도 없고, 꽃향기가 뭐 이래 하는 빈정 상하는 말도 들을 일 없으니 얼마나 좋아. 상상은 그런 거야. 적막강산이 일순간 수다스럽고, 번잡한 장마당으로 변하고야 말지. 한 번 입을 떼 옹알이를 시작한 아기의 입처럼 말릴 수도 없더라고.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혼자만의 시간에 듣는 귀도 없고, 타박할 입도 없는 곳에서만 허락된 호사일 뿐이야. 그러니까 굳이 안 된다고 뜯어말릴 필요도 없어. 말 그대로 혼자만의 상상이고 꿈에 지나지 않는 거라서, 파도가 일고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해도, 방은 고요하고 마음만 수다스러울 뿐이야. 입맛이 없어서 사료를 마다하는 것처럼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오히려 행복할 수도 있어. 입맛이 없던 적이 없었다는 게 함정이겠지만 말이야.
"잘 들어갔지? 밥도 맛있게 먹고 오랜만에 콧바람도 쐐서 정말 좋았어. 고마운 하루야"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고, 집에 오자마자 문자도 썼는데 보낼 수가 없었어. 우리 또 언제 볼까? 따라붙는 말을 쓰고 , 지우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폰을 내려놓았어. 그렇게 되더라고. 뭐 그다지 심각한 얘기도 아니고, 어려울 것도 하나 없는 일상적인 말인데도, 우물우물 삼키고야 말았어.
앞발을 세우고 엉덩이는 땅바닥에 주저앉히고는, 연신 꼬리를 흔들고야 마는 강아지처럼, 주인의 얼굴과 사료를 번갈아 보게 되는 거야.
"있잖아? 난 자주 보는 거 좀 부담스러워 싫어. 그러니까 가끔 궁금하면 한 번씩 보는 걸로 하자. 알았지?"
그녀가 말했을 때 싫다고 말을 못 했어. 마음이야 매일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 싫다는 말에다가 꼬리를 달 수가 없었어.
"네가 정 그렇다면 그래야지 뭐. 그래, 알았어"
"그리고 이런 말 한다고 고깝게 듣지는 말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찾아가서 만나고 그래. 세상을 넓게 봐야 좋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이어지는 그녀의 말엔 입을 굳게 다물고야 말았어. 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더라고. 담장 안에 틀어박혀 은둔의 세월을 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깨달음을 위해 수행의 길을 걷는 구도자도 아닌데 말이야.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사는 거야. 선택의 여지도 없었어.
"우리 언제 또 볼까?"
하는 말은 그래서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야. 눈치를 봐야만 하는 말들이 몇 개씩 늘어나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은 걸 어쩌겠어. 턱을 괴고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게 되는 이유야.
"안돼! 기다려. 옳지? 잘했다. 먹어!"
손끝 하나, 말 한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앉았다가 주인의 '먹어!' 하는 말이 떨어지면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로,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거지. 행복해서 침도 흘리고 말이야. 딸랑딸랑 종이 울리면 앞뒤 가리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야 마는 파블로프의 개는 실험실에만 있는 건 아니야. 골목마다 눈이 빠져라 종소리를 기다리는 개가 넘치고, 새벽을 깨워 하다 못해 두부장수의 종소리라도 울려라 귀를 쫑긋 세운 놈도 있는 거고.
말이란 게 두렵고 무서워지면 실컷 떠들어라 고사를 지낸다고 해도 입을 다물게 돼. 떠들다 보면 의도치 않은 작별의 말이 화살처럼 날아들 수도 있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은 피하고 싶어. 그러니까 망설이지 말고 얘기해봐. 아무리 꼬드겨도 냅다 꼬리를 흔들어야만 하는 거야. 이별이라거나 작별이란 말이 부르는 헤어짐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자신이 없어. 별이란 건 하늘에서 반짝일 때 아름답고 신비한 거야. 노랫말에 등장하는 그런 별이라야 진정 아름다운 별이라고 생각해.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꿈꿀 수 있는 말은 행복을 주고, 에너지를 선사하지만, 꿈을 빼앗고 무너뜨리는 말은 반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어. 어떤 말로 포장을 하고 향기를 덧씌운다고 해도 결국은 그 안에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을 뿐인 거야. 말이란 게 그래서 함부로 뱉을 게 못된다는 말이지. 못 들은 척 귀 닫고, 그보다 더 단단하게 입을 다물어야만 해. 살다 보면 한 줌의 사료를 포기할 수 없는 중독도 있게 마련이고. 아쉽고 간절함이 큰 놈이 결국은 꼬리를 치는 거지 뭐. 저는 준비됐어요. 애절한 눈빛으로 무장하고서 빈 접시 앞에 앉아 종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거야. 하염없이. 새벽이 밝았으니 뭐라도 울리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