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린다는 것

아사달의 봄_06

by 이봄

말 많은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많음을 넘어 수다스러운 남자야 말해 뭣할까 싶었다. 한 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나불대는 남자라면 같은 남자가 생각해도 별로일 게 뻔했다. 남자라면 예로부터 과묵함이 미덕이기도 했고, 듬직한 덩치에다가 할 말만 하고서 입을 닫는다면, 그 무게감은 듬직함을 넘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치 혀를 잘못 놀려서 평지풍파를 자초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기도 했고, 쓸데없는 말을 나불대다 보면 자연히 평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였다. 앞에서야 별말이 없겠지만 눈에서 사라지는 순간 수군거림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동네 아낙네들의 빨래터라면 빨래방망이에 흠씬 두들겨 맞아 치도곤이 된 뒤에도 한참을 잘근잘근 씹혀야만 입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디 여자들만의 입이 문제일까? 바람이 좋은 날 동네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내 몇 명이 캔맥주 몇 개를 앞에 놓고 술을 마셨다. 흔한 땅콩 한 줌이 없었지만 아무도 안주 하나가 없다는 거에 개의치 않았다. 둘러앉은 남자들은 이미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하고, 고소한 안주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눈치였다.

"난 개울 건너 김 씨가 그렇게 잘난 척을 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구먼. 어젠 어찌나 말이 많고, 자리에도 없는 노 씨를 흉잡고 씹어대던지.... 나도 없는 데에 서는 그럴까 싶더라니까!"

빤히 말을 듣고 있던 나머지가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야. 앞에 없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입이 가벼운 거로 따지면 못해도 우리 군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고도 남을 거야. 우리도 입 조심하자고? 괜히 책잡혀 김 씨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고"

눈앞에 없으니 질근질근 잘근잘근 씹는 게 맞았다. 남의 얘기만큼 재밌고 질리지 않는 것도 없어서, 남자나 여자나 가릴 것도 없이, 사람들은 마른오징어를 만들고 땅콩을 만들기 일쑤였다. 그러니 수다쟁이가 사는 마을엔 안주거리가 제대로 팔리지도 않았다. 늘 귀가 간지러운 사람들은 애먼 면봉만 몇 봉지씩 찾고는 했지만 면봉을 박스로 판다고 해서 매출이 오를 일도 없었다.

여자들은 수다스러운 남자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쳤다. 막상 없으면 입에서 군 내가 날지도 몰랐지만 유독 말 많은 남자라면 거부감을 드러냈다. 집안에 세탁기 한 대 없는 집이 없었는데도 굳이 빨래 바구니를 이고, 지고서라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지만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입이 근질거리고, 입안에 가시가 돋는 수다쟁이 남자도 있게 마련이었다. 매력도 없고, 바퀴벌레 보듯 징그럽다고 난리를 쳐도 타고난 천성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얘? 너는 무슨 사내 녀석이 촉새처럼 나불나불 입을 다물지를 못하니? 시끄러워 죽겠네!"

당찬 계집애 한 명쯤은 구박을 했을 터였다. 사내 녀석은 그렁그렁 울먹이면서 타고난 천성을 탓하며 다시는 주절거리지 말고, 男兒一言重千金을 실천해야지 다짐에 다짐도 했었을 거였다. 그렇지만 그런 다짐은 그리 오래갈 다짐이 못된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을 테고. 필경은 까마귀 고기를 열댓 마리도 넘게 먹어서 그럴 거야, 핑계를 삼아 위로를 하며, 돌아앉은 자리에서 이내 주둥이를 나불거리고야 말았다. 팔자려니 해야지 별도리가 없었다. 남의 눈치만 보며 입을 다물다가는 병을 얻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남자도 핑곗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까마귀는 잡지도 못할뿐더러 너무나 뻔하고,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였다. 남자도 늘 이야깃거리를 찾고 헤맸다. 멍하니 누워 천장을 보면서도 머리는 복잡했고 동네를 산책하면서도 생각을 놓지 못했다. 썩은 고기를 찾아 들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코를 땅에 박고 킁킁거리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에 하나씩, 아니면 못해도 이틀에 하나는 이렇게 주절주절 수다를 떨어야만 뭔가를 했구나 하는 보람을 느꼈다. 빨래터가 떠나가라 치도곤을 당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건 맞선을 봐야만 하는 처지가 아니라는 거였다. 떨리는 심장을 주체 못 하고 겨우 입을 떼야만 하는 선이라도 본다면 기껏 감췄던 수다 본능이 언제 튀어나올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지인들의 목을 졸라가며 마련한 자리는 번번이 깨지고, 손에는 커다란 딱지 한 장이 놓였을 거였다.

"애들 엄마는 뭘 보고 날 좋아했던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듬직한 덩치도 없었고, 누군가의 뺨을 때릴 얼굴도 아니었는데.... 하긴 제 눈에 안경이란 말도 있었으니 다행이었던 거야"

갑자기 궁금했다. 남자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던 터라 선이라는 것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소개팅이라고 하는 만남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을 빼고 나면 굳이 이성을 사로잡기 위해 매력을 발산할 일이 없었다. 가뜩이나 개그도 다큐멘터리로 바꿔버리는 능력이 있던 터여서, 말이란 녀석에 관해서는 매력을 찾을 수도 없었다. 수다스러웠지만 유머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말이 많았고 뭐든 심각하게 몰고 가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점수로 따지자면 빵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야만 했다. 타박을 받아도 그렇고 꿀밤을 몇 대 쥐어맞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천성이 어디로 갈까 싶었다.

어제도 그랬다. 그녀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는 익숙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시키고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말은 두어 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끝나지 않았다. 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머, 얘? 우리 너무 오래 수다를 떨었나 봐? 귀가 다 뜨겁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해야겠다. 호호호"

여자들의 수다만큼이나 경지에 오른 건 아니었지만 남자도 말이 좋았다. 하긴, 오매불망 보고 싶은 사람을 앞에 두었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지만 남자는 말이 좋았다. 며칠 묵은 말들이었다. 종일 가봐야 말 한마디 나눌 입이 없으니 말들이 트럭으로 쌓였다. 그러다 그녀를 만나는 날에야 겨우 다문 입을 여는 거라서 더욱 수다스러웠다. 봇물 터지듯 말들이 도랑을 타고 흘렀고, 덩달아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떼로 쏟아져 나와 난장을 벌였다. 한 놈도 입을 다문 놈 없이 개굴개굴 떠들어댔다. 듣고 있는 상대는 귓구멍에서 피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뚫린 입은 도저히 다물 수가 없었다. 조용하던 카페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떠나가라 침을 튀기며 떠들어대는 남자가 개구리들과 뒤섞여 있었다. 그나마 참 다행이다 싶었던 건 그녀와 남자 둘 뿐, 다른 손님이 없었다는 것과 귀에 딱쟁이가 앉았는지 그녀의 귀는 멀쩡했다는 거였다.

도심을 잠깐 벗어나면 한강을 끼고, 곧게 뻗은 좁다란 길은 강화도 방면으로 이어지다가 야트막한 산이 나타나면 갈래길이 나타났다. 갈래길에서 좌회전을 하면 작은 동네로 들어섰다. 동네는 아주 평범한 시골마을이었고, 군데군데 물류창고가 들어서 있었다. 멀리 한강 신도시의 아파트가 성채처럼 솟아 있었지만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초록의 들녘이 좋았다. 늘 들러 수다를 떠는 커피집을 살짝 지나치면 습지공원으로 조성된 연못이 하나 있었다. 자주 찾는 곳이었지만 싫증이 나지 않는 연못이었다. 연못 주변에는 연근 농사를 짓는 연밭과 논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고, 그늘 좋은 버드나무가 정취를 더하는 산책로가 있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아니었다. 김포의 넓은 뜰을 흐르던 실개천이 모여드는 자연습지였다. 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못과 한강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어서 바람은 늘 시원하게 불었다. 구불구불 길게 들어선 연못을 걸을 수 있게 놓인 다리와 산책로가 습지에 더해진 인공의 손길이었다.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억지스럽다거나 눈에 거슬리는 건 없었다. 오히려 쉼터로 만들어진 정자가 서넛 있어서 좋았다.

어제는 갈대숲에서 개개비들이 어찌나 목청을 돋우던지 시끄럽기까지 했고, 가끔은 꿩이 날아오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 예쁜 연못을 가진 마을에 '커피 하우스'란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마을을 닮은 조그만 카페에 마을을 꼭 빼다 박은 주인장이 아기자기하게 다육이며 온갖 화분을 키웠다.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때에는 블루베리를 한 줌씩 따먹기도 했고, 보리수 붉은 열매를 맛볼 수도 있었다. 마치 고향에 내려가 앵두를 따고 살구를 맛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드는 카페였다. 소박하지만 예쁜 카페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며 마시는 커피가 좋았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에 끼어든 빗소리가 운치를 더했고, 커피의 향을 곱절은 향긋하게 만들었다. 그게 좋아서 발걸음은 잦아지고, 이야기가 쌓였다.

"그런 거 있잖아? 난 추녀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정말 좋더라. 여기서 듣는 빗소리가 꼭 그래!"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던 날 찾은 카페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가 시골 태생이라서 더 끌리는 거겠지만 마을도, 카페도 남자를 사로잡는 끌림이 있었다. 일전에 '바람맞아 좋은 날!'처럼 시원스레 바람을 맞고는 혼자 찾은 카페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었다.

"안녕하세요?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했더니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주인장이 내 뒤를 살피더니 그러더라고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그러게요. 오늘은 혼자네요..."

얼버무리듯 말꼬리를 흐리며 자리로 돌아와 정원을 보는데, 마음이 좀 언짢고 서글펐지만 추억을 곱씹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추억을 셀 수도 없었다. 카페와 연못으로 이어지는 곳곳이 다 추억이고,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사람과 함께해야 뭐든 더 좋은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와 다시 찾은 카페가 얼마나 좋고 반가웠는지 몰랐다. 더군다나 온통 마음을 다 빼앗은 예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봐도 봐도 점점 더 예뻐지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남자는 가뜩이나 없는 매력마저 지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절레절레 머리부터 젓는다는 말 많은 남자가 되어 스스로를 깎아먹었다. 겨우 다시 만난 그녀를 앞에 두고서 봇물 터지듯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시간이란 놈들을 한 놈, 두 놈, 차례로 쓰러트리고 있었다. 탄창은 총알로 가득 찼고, 사수의 시선은 빛났다. 한껏 들뜬 남자의 수다는 빗나가는 것 하나 없이 시간을 맞췄다. 그러다가 보리수 빨갛게 익은 열매 서넛 따다 놓고는 찰칵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말 하나 만들고 싶었다. 붓을 들어 그림을 만들고 이야기 한 토막을 입히고 싶었다.

"똑바로 못하나? 남는 건 사진뿐이다. 자세 똑바로 잡고. 그래, 좋았어! 짝다리도 한 번 짚고?"

끌리다 못해 예쁜 사람과 '시간 죽이기'로 남긴 사진을 바라보며 결국 오늘도 남자는 수다를 떨고야 말았다. 말 많은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