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끊겼다

쉰다섯 래춘 씨_05

by 이봄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길은 모두 지워지고 없었다. 빤히 바라다보이는 마을엔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선뜻 길을 나서는 이는 없었다. 몇 날이 흘렀지만 마찬가지여서 지워진 길 위에는 더는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다. 며칠에 며칠이 흘렀을 때도 길은 여전히 지워지고 없었다.


길이 끊기고 오가는 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 마저 입을 다물었을 때 마을은 온통 침묵에 휩싸였다. 어미의 젖을 빨던 갓난아이는 발버둥을 칠 뿐 더는 울지 않았다. 밥짓는 연기는 꿈틀대지 않고 승천하는 용처럼 수직선을 그으며 피어올랐다.

분주했던 새들의 날개짓은 멈춘 지 오래였다. 눈 쌓여 지워진 것은 지상의 길이었음에도 새들은 날지 않았다. 나뭇가지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멀뚱멀뚱 하늘만 바라볼 뿐 접은 날개는 좀처럼 펴지 않았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만 바다처럼 일렁였다.


한숨처럼 담배 연기만 뿜어내던 남자도 지워진 길만 쳐다보았다.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 서넛이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지만 누구도 먼저 길을 뚫으려하지 않았다. 하기야 새들도 날개를 접었다고 했는데 뉘라서 먼저 길을 나설까. 말이 사라진 마을엔 한숨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거들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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