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걸어간 자리엔 핏빛 단풍이 뚝뚝 떨어져 있었어. 정오를 갓 지난 햇살이 곱게 내려앉고 화단의 경계에 떨어진 단풍은 햇살 받아 더욱 붉었던 거 같아. 마치 그런 거 있잖아? 맹세의 선혈 뚝뚝 떨어진 것만 같았어. 심장은 뜨겁게 뛰고 말은 비장했다고 할까? 가을이 한창이던 날이었고, 벌써 꼬박 삼 년 하고도 두 달 전의 시간이 거기에 멈춰 있었어.
"세월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기도 하구나!"
세월의 무상함에 탄식을 쏟아내는 말이야. 찰나로 스쳐가는 세월을 보고 있자면 부지불식 간에 그런 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더라고. 가뜩이나 이룬 것 없는 처지이고 보면 더욱 그렇기도 하고. 아까운 세월만 흘려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거라서 미련만 매달리겠지.
사진으로 남은 세월이 아련하다 싶어. 게다가 웃기게도 사진 속 붉은 단풍은 화살나무 단풍이야. 화살처럼 빠르다는 세월이 달아나지 못하고 붉은 단풍으로 붙들리고 말았어. 영영 박제된 기억으로 남을 시간인 거야.
너울너울 물결처럼 흐르다가 찰랑찰랑 추억으로 넘치면 좋을 걸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뜨거운 커피 호호 불어가며 까치밥 몇 알 그림처럼 고운 풍경을 마실 수만 있다면 가는 세월이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을 거 같아. 아쉽다기보다 오히려 엷은 미소 지으며 그럴지도 모르겠어.
"이만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었다 싶어. 참 다행이기도 하고 말이야"
격랑 없이 흐른 물결이 몇이나 될까 마는 동글동글 몽돌 모인 해변에 너울너울 소리도 곱게 물결로 스미면 얼마나 좋아. 왁자지껄 요란함도 싫고 우당퉁탕 번잡함은 더욱 그래. 모나지 않은 물결로 찰랑찰랑 몽돌이나 쓰다듬다 떠나야지. 이왕이면 햇살 투명하게 쏟아지면 더욱 좋겠고.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