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헐떡대며 길을 가던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는 귀찮다는 듯 힐끔 쳐다보더니만 대답을 한다.
"집에 가는 중이에요. 정신없이 놀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거든요"
서산에 해가 기울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시간이었지만, 녀석의 걸음걸이를 생각하면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렇구나. 바쁜 발걸음을 붙들어서 미안해. 서둘러 가렴!"
미안한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길을 재촉하라고 일렀다. 소낙비가 몰려간 인도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껏 달궈졌던 거리는 제법 시원했고 무엇보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웅웅웅 사납게 우는 날에, 철 지난 사진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본다라는 말이 겸연쩍어할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보기는 보되 눈에 담지 못하는 것도 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멈춘 시계처럼 생각도 옴짝달싹을 거부하고 허울 좋은 겉모습만 시계로 째깍였다. 요란을 떠는 게 안쓰럽게 시침이며 분침은 요지부동인 것처럼 그렇게 사진에 붙들려 한동안 망부석이 되었다.
시간을 까맣게 잊을 만큼 동무와 놀던 때가 언제였는지? 집집마다 하얀 연기 피어날 때까지 산으로, 들로, 천방지축 뛰어놀던 때는 또 얼마나 아득한 기억인지? 실컷 놀았으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흐릿한 기억 속의 길들은 다 지워지고 없다. 가시덤불이 우거지고 빗물에 씻겨나간 길은 종적을 감췄다. 키가 큰 소나무 몇 그루 이정표처럼 서서 여기가 길이었다 반추하고 있었다. 되새김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에 갇혀 멍하니 또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