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피던 날엔

by 이봄

때 이른 꽃가지 몇 개 꺾어 들고서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양지바른 골짜기의 성미 급한 생강나무 노랗게 꽃을 피웠고, 구구 구구 멧비둘기 목이 쉬던 봄날이었다.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 오늘내일 숨 가쁜 꽃봉오리 바라보다가 툭툭 꺾어 든 가지에는 봄날이 주렁주렁 매달렸었다.


굳이 방으로 들이지 않아도 며칠 밤, 며칠 낮이면 피고 질 터였음에도 떼쓰는 철부지가 되고 말았다. 광한루 버들가지 사이로 연분홍 치마가 아른거려도 좋았을 터였다. 새악시 발그레 창공을 가르면 덜컥 심장이 떨어지려는가 몰랐겠지만 너울너울 바라봄이 오히려 더 좋았을까?

유리병에 물을 담고 손에 쥔 꽃가지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로 담가놓고서,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일어나 바라보았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서성이던 시간은 툭하고 벙글어질 봄날이었다. 조바심에 등 떠밀려 자다 깨다 맞는 시간은 얼마나 황홀했던지 모른다. 풀방구리에 생쥐 들락거리듯 문지방이 닳았을 터였다.


언제였을까? 이태 전 봄날이었다. 뭉뚱그려 기억하는 그날은 마침내 하늘이 열리고 우주가 맺혔다. 연분홍 꽃잎 조심조심 열더니만,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봄을 보따리로 쏟아내었다. 비릿한 바닷바람이 불었고, 살 오른 보리 이삭이 나풀거렸다. 노고지리 종일토록 하늘을 맴돌다 저녁이 되어서야 날개를 접었다. 황홀한 봄날이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슬금슬금 봄볕이 방바닥을 쓸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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