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부랴 면도를 했고 샤워도 했다. 물은 따뜻했고 작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눈부셨다. 설레는 아침이었고 환한 미소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길의 끝에는 봄꽃 한 송이 어여쁘게 피어 아침 햇살에 웃고 있었다. 싱숭생숭 바람이 불었다. 굳이 킁킁 코를 벌름거리지 않아도 꽃향기에 정신은 혼미했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봄날이었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익숙한 음식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가 그랬다.
"너무 구석진 자린가 모르겠네. 다른 자리로 옮길까?"
"아냐, 괜찮아. 있잖아 우리 여기 거의 모든 자리에 앉아 봤다. 하하하"
정말 그랬다. 중앙의 자리며 입구에 바짝 붙은 자리까지 앉아 보지 않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집이었다. 익숙하다는 건 때때로 온몸을 감싸는 거품처럼 포근하기도 했다.
낯익은 얼굴과 인사를 나눴고 쓴 커피를 홀짝이며 마셨다. 창가에 늘어선 화분엔 봄이 한창이었고 못 본 며칠 사이에 키를 키운 잔디밭은 푸르러 예뻤다. 앞다퉈 꽃이 피었고 꽃송이 사이로 자지러지게 바람은 불었다.
첨벙 소리를 내며 개구리가 뛰어들었다. 수면 위엔 벌써 한 뼘은 됐음직한 연잎이 햇살에 멱을 감고 있었다. 쇠뜨기는 둔덕에 터를 잡고 초록을 뽐냈다. 한가롭게 길은 이어졌다. 멀리 트랙터 한 대가 봄 마중에 부산스러웠지만 어느새 그마저도 풍경이 되었다.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길은 언제나 짧았고 그 끝은 가까이에 있었다. 또 걸을 수 있을까. 속으로 삼키고야 마는 말이 쓰기만 했다. 자문자답, 어렵게 물을 필요도 없었다. 보물 찾기처럼 군데군데 말들은 이미 숨겨져 있었다. 찾아 읽으면 그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쌀 한 포를 샀다. 몇몇의 쌀이 나 잘났다 으스대며 진열대에 앉아 있었지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가장 저렴한 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밥맛이 어떻느니 하는 말은 예전에 지워버렸다. 멱살을 잡힌 녀석이 발버둥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