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하늘이 처음부터 작았던 건 아니다. 한 해, 두 해, 해를 거듭할수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더니 어느 날 내다본 하늘은 손바닥 뒤에 숨고 말았다. 여전히 푸르고 때때로 바람이 몰려갔지만 성장이 멈춘 아이처럼 더는 몸집을 키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답답하거나 울화가 치미는 일은 없었기에 불평을 쏟아내거나 화낼 이유는 없었다. 빼꼬미 내민 하늘이라고 해서 해가 뜨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별들이 도망쳐서 빈 하늘만 어둑하지도 않았다.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와 시끄러웠고, 먹구름 몰려들면 후둑후둑 비도 내렸다. 그만하면 됐다 싶었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 한 줌에 화초가 자랐고 아침을 여는데에 부족하지 않았다. 어쩌면 더 크고 무거운 하늘이라면 어깨가 짓눌리고, 무릎은 꺾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월에 주눅 든 몸은 여기저기 벌겋게 녹이 슬어 삐걱거렸다. 하늘이 되었든, 바람이 되었든, 더는 욕심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미 짊어진 것들도 냅다 팽개쳐야만 했다. 소식小食이 건강에 좋다고 과해서 좋을 나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야!' 부추긴다 해도 귀를 닫기로 했다. 백 가지 꽃이 피면 백 가지 향기가 나게 마련이었다. 너는 달큼한 향기로 피고 또 누구는 알싸한 향기가 어울릴 터였다. 그는 그만의 향기가 있었고 어깨가 있었다. 어깨에 올릴 수 있는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곁에 선 누군가의 하늘을 훔쳐보며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었다. 남의 손에 들린 떡은 항상 크기 마련이고 맛있어 보인다. 그러니 곁눈질을 멈추고 질끈 눈을 감아야만 한다면 몇 번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의 하늘이 고요했고, 그의 바다가 잔잔했다. 뇌우가 요란스럽던 날들이 언제였는지 아득했고, 풍랑으로 시끄럽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히 잊혔다. 소금쟁이 한 마리 미끄러지듯 수면을 걸었다. 시퍼렇게 깊은 하늘엔 고추잠자리 한가롭게 날았다. 미풍이 불었고 동심원을 그리며 수면이 졸았다. 어제는 오늘이 됐고 오늘은 또 내일이란 명찰을 만지작거렸다. 문제라면 그게 문제였다. 고요하다는 것, 잠잠하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양 날의 검을 들고 만지작대면 필경 손을 베이고 만다. 산다는 건 그런 거였다.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이 좋으면 그 반대편에는 이빨을 드러낸 늑대가 있었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은 심드렁 재미가 없었다. 의욕이 없으니 심장은 요동치지 않았고, 여전히 아침이면 햇살이 들어와도 생기를 잃은 화초는 더는 꽃봉오리를 만들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니? 우리 같이 밥 먹을래?"
별것도 아닌 말이 줄어들고 더는 묻지 않았을 때 하늘과 바다는 평온했다. 사진 속에 박제된 풍경처럼 미동도 없었고 고요할 뿐이었다.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 찬 바다와 따뜻한 바다가 만나는 곳엔 언제나 난장이 열리고 시끌벅적 요란스럽다. 바다는 뒤집어지고 심해의 고요는 멱살을 잡혀 아우성치고야 만다. 그래서 요란스럽고 시끄럽다. 갈매기가 날아들고 가마우지가 떼로 몰려든다. 물고기는 살겠다고 퍼덕이고 어부들은 죽어라 그물을 친다. 시끄러운 바다는 그래서 꿈틀거렸고 사람들은 거나하게 취했다. 취한 바다는 태풍이 불었고, 천둥번개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바다였고 하늘이었다. 바람 가득 들어찬 풍선이 흔들렸다.
"이런 젠장!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잔뜩 입을 내민 그가 들릴 듯 말 듯 투덜거렸다. 한 평 하늘이 영문도 모르고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