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新又日新

단비가 내렸다

by 이봄


길게 이어진 가뭄으로 산천초목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골짜기를 막아 물을 가두던 몇몇의 저수지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고 했고, 멀리 아랫녘 어디에는 산불이 며칠째 계속된다고도 했다. 소방차가 동원되고 소방헬리콥터가 분주히 오갔지만 기세 등등한 화마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고 혼비백산 화마를 피해 마을을 벗어나야만 했다. 웃자란 모를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내던 농부는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구름 힌 점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절망을 했다. 무엇이든 다 때가 있었다. 콩을 심어야 할 날짜와 모내기를 해야 하는 날짜는 애초에 타고나는 거여서 사람이 미루고 말고를 따질 일이 아니었다. 하루를 미루고 이틀을 미루는 게 농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며칠 사이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한 해 농사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작파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농사일은 하늘이 도와야 할 수 있다는 말들을 했다.

투닥투닥 비가 내렸다. 속을 끓이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이불을 걷어찼을 게 분명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이 오셨는데 천지 분간도 못하고 잠자리를 헤맬 사람은 없었을 새벽이다. 소리가 좋아서 덩달아 잠을 깨고는 희뿌옇게 밝아오는 창가에 한참을 서 있었다. 투닥투닥 소리를 들었고 어쩌다 창틀에 부서져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보았다. 애써 귀를 쫑긋 세우거나 눈을 부라릴 필요도 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우두커니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서 먼산바라기처럼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니 속 끓이고 애태우던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원망의 말을 퍼붓던 저 하늘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할까? 몇몇의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글썽였을지도 모르겠다. 잠들기 전까지 육두문자를 곱씹으며 몸을 뒤척였을지 알 수는 없지만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엔 감사의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왔을 터였다. 거북이 껍질처럼 갈라졌던 저수지에도 오랜만에 맑은 물이 흘러들 터였고, 푸석했던 밭고랑마다 촉촉이 빗물이 스밀 터였다. 그래,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콩 한 알 심을 밭뙈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좁다란 창틀에서 허위허위 하늘을 기어오르는 녀석 봐도 그랬다. 장미꽃 아득한 향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녀석이 한껏 목을 빼고는 창문 열린 틈으로 코를 박는다. 훅 끼쳐 들어오는 흙냄새와 비릿한 비 냄새가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몸에 안기는 젖먹이와 같았다. 이파리 몇 개 바르르 떨어 내리는 비에 인사를 한다. 목마름에 초목은 그렇게 반응했고 해갈에 또한 그렇게 몸서리쳤다. 날마다 고쳐 새롭게 단장하는 게 산천초목이었다. 다비에 멱 감고 오늘은 또 얼마나 예쁘게 단장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옆에 선 나야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투닥투닥 비 내리는 새벽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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