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하게 대답을 해놓고는 불쑥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길 것까지야 없다고 해도 그렇게 대답할 건 없다 싶었거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씩씩 골을 내고 있었어.
"에구, 미안해. 정말이야.... 잘 먹을게. 오늘따라 된장찌개가 죽여주는 걸"
도란도란, 두런두런 이딴 말은 밥상머리에서 진작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야. 대신 그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들이 눈치도 없이 거들먹거렸지. 구시렁구시렁 심드렁 심드렁....
'어라, 요것들 보게. 밥상머리에서 그러는 거 아냐. 자꾸 그러면 혼내준다!"
들었던 숟가락을 흔들며 야단을 쳤어. 어지간한 말에는 들은 척도 않는 놈들이라서 귓등으로 흘렸겠지만 그렇다고 잔소리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 밥이 보약이라는데 어째 보약을 먹는 꼴이 영 아니올시다지?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허둥대다가 밥상을 물리고야 말아.
그랬던 추억과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뒤엉켜 뒤죽박죽 난리를 치면, 국 따로 밥 따로 순서를 지켜 먹어야 하는 것 마저 잡탕찌개로 변하고야 말아. 이름도 그래서 따로국밥인데 소용이 없어. 멀쩡한 이름을 팔팔 끓고 있는 뚝배기에 털어 넣고는 휘휘 휘젓는 거야. 그러면 시금치 데치듯 따로국밥은 한 풀 숨이 죽어서 뭐라 대꾸도 할 수가 없어. 이런 기선제압이 어디 있겠어. 어렸을 때 뒷집 철이 녀석과 주먹다짐을 할라치면 냅다 코를 먼저 치는 거, 그런 선빵의 묘수와 같은 이치야.
"허허허, 고놈 참 하는 짓이 잠망스럽네"
껄껄 웃고 있는데 불쑥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고. 어처구니도 없었어. 무슨 뚱딴지처럼 불쑥 불거진 생각이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떼어내서 문풍지를 새로 발랐거든. 말하자면 김장을 담그고, 장작을 산더미처럼 준비하는 것처럼 문풍지를 바르는 것도 월동준비의 하나였어. 문살에 풀을 바르고 곱고 하얀 종이를 붙이고는 미리 눌러두었던 꽃잎으로 문을 예쁘게 꾸몄지. 들일이며 집안일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에서 마른 꽃들이 피었어. 코스모스며 들꽃들이 그랬지. 옆에서 빤히 지켜보는 내 눈엔 너무 신기하고 예뻤어. 삭풍이 불면 문풍지가 울었지만 예쁜 꽃들도 그만큼 향기롭게 피었던 거 같아.
두서없이 그런 생각을 했어. 웃기지? 수취인도 없는 편지를 밤새 쓰는 것처럼 정말 뚱딴지지 뭐. 그거 알아? 돌각담에 자라는 노란 키다리 꽃이 뚱딴지라는 거. 못생긴 뚱딴지는 발로 땅을 툭툭 차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와. 입이 궁금하면 캐 먹던 주전부리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