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는 동안에도 그러합니다
가을이 피었습니다.
햇살에 이슬은 반짝이는 수 만의 보석으로
맺혔고, 맺힌 이슬따라 꽃들은 꽃단장
어여쁘게 피었습니다.
여러 날 집을 비우고 여행을 했는데
돌아와 마주하는 꽃마당은 여전합니다.
설악초 하얀꽃은 눈으로 만발하고,
때로는 개구지게 때로는 함초롬 피어난
천사의 나팔은 오늘도 향기 짙어 아름답지요.
이웃집 누나처럼 수더분 피는 과꽃은
몽글몽글 순두부 맺히듯
그리움 한 숟가락 야물딱지게 뜨게 합니다.
호호 불어가며 뜬 흰 쌀밥에 깎뚜기 하나.
꼭 뭔가 특별하고 화려해야만
기억에 남지도, 가슴을 아리게 하지도 않아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훅 하고 파고드는
알싸하고 달달한 찔레꽃 향기처럼
가슴이 되었든, 머리가 되었든, 몸뚱이 어딘가에
딱지처럼 달라붙은 기억 하나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깨어나는 멍함.
그리움이라고 얘기해도 좋겠고,
추억이라고 얘기해도 그만인 기억들.
달리화 커다란 꽃도 그렇게 피었습니다.
쑥부쟁이는 '가을입니다' 얘기를 하고
더덕밭 우거진 덩굴엔 더불어 피어난 나팔꽃
'행복한 아침이에요!'
싱글벙글 제 흥에 겨워 신명나지요.
가을은 꽃으로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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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이르는 말 중에 '봄'은 '보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계절을 달리하고 해를 넘겼다가 다시금
돌아와 마주하게 되는 계절 봄.
보다,라는 동사와 정말 어울리는
시간이다 싶어요.
오늘, 마당 가득 피어난 꽃들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가을은 '피다'라는 동사를 곁들였으면 좋겠다는
뜬금도 없고, 근거도 없는 우격다짐의 생각.
꽃도 피어나고, 그리움도 피어나고,
외로움도 알알이 가슴에 피어나는 시간,
그래서 가을은 내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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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을 詩花로 곱게 단장하는
멋진 작가가 있습니다.
낯설고 생소한 그래서 쉽게 지나치며
잊고야 마는 꽃들이 있습니다.
어엿한 이름이 있다지만 우리는 그냥
들꽃이란 한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게 되는 꽃.
그 어여쁜 녀석들 하나씩 둘씩
불러내어 이름을 부르고 단장해서
인사를 시킵니다.
얘는 이름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건 또 이거예요.
게다가 이녀석은 성품이 이래서 여기에 좋고,
성깔은 이래서 꽃마저도 이렇게 피워내지요.
요목조목 말들이 입을 맞추고, 어깨동무 흥겨워서
때로는 덩실덩실 춤판도 벌어지죠.
"아! 이렇게 보고, 만지고, 풀어내는
시선도 있구나!" 무릎을 치기도 합니다.
그의 아름다운 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조선시대 기적에 오른, 그러니까 기생학교에서
제대로 수학한 기생을 '해어화'라 했다지요.
말을 알아 듣는 꽃.
한천군 작가님의 꽃으로 풀어낸 '글선물'을
저는 들꽃을 말로 단장해 더욱 곱게 피워낸
말로써 핀 꽃 '語花'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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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 만드레 나는 취해버렸어!"
곤드레꽃이 한창입니다.
어여쁜 말이 꽃으로 피고, 어여쁜 꽃들이 앞다퉈 말로 핍니다.
그래서 제게 가을은 꽃으로 피었습니다.
아사달의 봄이 사는 포천은 그래서
덩달아 봄도 만개합니다.
곤드레 만드레 취했다 한들
뉘라서 가자미눈 매섭게 뜨고 눈흘길까요?
좋은 계절 가을이
흐드러지게 꽃으로 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