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요!

by 이봄

아장아장 꼬맹이가 끙끙 씨름을 했다. 언뜻 보아도 자기 키만 한 장바구니에 매달려 한 판 승부를 겨루고 있었는데, 사뭇 표정이며 몸짓에서 결기마저 느낄만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너와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겠다 다짐을 하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꼬맹이의 결연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바구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엉덩이를 바닥에 찰싹 붙이고는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라' 하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은 지그시 감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무거운 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해가 정수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사위는 어두워서 쥐 죽은 듯 침묵이 흘렀다. 섣부른 움직임은 상대에게 허점을 보이게 마련이어서 둘은 몸짓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바위처럼 무겁고 표범처럼 날카로운 한 번의 공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든 일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승과 패를 가르는 시간은 길 필요도 없었다. 걸음은 무거웠고 호흡은 거칠었지만 결코 상대가 느낄 만큼의 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지켜보는 구경꾼의 침 삼키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순이야? 그건 엄마가 들 테니 넌 이거나 받아. 응?"

엄마의 내민 손에는 커다란 과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것도 평소였다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러니까 펑펑 눈물을 쏟으며 떼를 쓰다가도 뚝 울음을 멈추고야 마는 과자였다.

"순이야? 과자가 얼마나 맛있어?"

물으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씩 웃으면서

"응.... 하늘만큼 땅만큼이요"

대답을 했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저 허허 웃게 되는 개구쟁이가 순이였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어제의 순이는 오간데 없고 매서운 눈초리로 장바구니를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다. 과자봉지에는 시선 한 번 제대로 주지도 않았다.

"그 바구니는 엄마가 든다고 했지? 넌 아직 어려서 들지를 못해요"

"으응?.........."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시선을 장바구니에서 떼지 못하는 순이였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등을 보이며 달아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안 돼요 엄마! 순이가 들 거예요. 순이도 이만큼이나 컸으니까 들 수 있단 말이에요. 엄마, 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오물오물 순이가 말했다. 벌써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도 매달려 있었다.

난감했다. 빼앗아 들자니 금방이라도 엉엉 눈물을 쏟을 게 뻔했고, 두고 보자니 마냥 시장바닥에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엄마는 결국 손을 들었다.

"정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들어보렴"

놀란 토끼눈으로 엄마만 쳐다보고 있던 순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바구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끙끙 낑낑 씨름을 했지만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울그락 푸르락 잔뜩 달아올랐지만 싸움은 이미 승패를 가르고야 말았다. 좀처럼 인정할 수 없는 순이만 애처로웠고, 귀여웠다.

"어어.... 이러면 안 돼. 제발 응? 제발...."

조금 전까지 투사 같았던 순이는 어디로 가고 장바구니에 매달려 빌고 애원하는 순이가 있었다.

"언제 우리 순이가 이렇게 컸담? 몇 밤만 더 지나면 순이가 들 수도 있겠는 걸. 호호호"

지켜보던 엄마가 웃었다. 얼굴 가득 번지는 미소가 환했다. 뿌듯했고 웃음도 나왔다.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사뭇 진지한 얼굴로 순이를 쓰다듬으며 추켜세웠다. 덩달아 엄마의 마음도 훌쩍 자랐다.


"순이야? 이다음에 순이가 크고 엄마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그땐 정말 순이가 들어줘야 해? 알았지?"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순이를 가슴에 안고서 엄마가 말했고, 눈물 맺힌 눈으로 순이가 대답했다.

"응, 엄마! 내가 이만큼 더 크면 무거운 건 다 들어줄 거야"

두 팔을 잔뜩 벌려 몸집을 부풀린 순이가 엄마 품을 파고들며 한껏 으스댔다.

"엄마는 있잖아? 우리 순이가 지금처럼 예쁘고 씩씩하게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순이야, 엄마가 많이 사랑해"

릴 듯 말 듯 이어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시장 골목에 향긋하게 뿌려지고 있었다. 화답이라도 하듯 순이의 손에 들린 과자봉지가 바스락바스락 웃었다. 엄마의 품을 파고든 순이도 마찬가지였다. 정오의 햇살은 환했고 장바구니를 든 엄마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유쾌했다. 씰룩씰룩 엉덩이춤을 추고 있었다.

"순이야? 엄마는 우리 순이를 정말 사랑해!"

햇살 고운 날에 바람은 상쾌했고 싱겁게 끝난 무림 강호의 한 판 승부를 지켜보던 골목도 어쩐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힘내요, 모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