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부러워

by 이봄


제였는지도 모를 까마득한 날에 들었었다. 만원 버스, 콩나물시루, 지옥철 등등의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있었다. 오들오들 추위에 떨던 출근길에도 등 떠밀려 오르던 버스며 지하철에선 땀을 흘려야만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썰물이 되었다가 우르르 몰려가는 밀물도 되었다. 잘 살펴보면 가로등 꼭대기나 도로 중앙을 점거하고 선 이정표의 푸른 어깨에는 갈매기도 몇 마리 날았을는지 모르겠다. 분수처럼 내뿜던 흰 수염고래의 긴 숨은 개찰구를 빠져나가서야 겨우 휴~~ 하고 따라 쉴 수가 있었다. 파도 한 점 없는 아스팔트를 몰려다니며 저마다의 몸짓으로 헤엄을 치고 사냥을 했다. 산다는 것은 늘 그랬다. 밀림을 뛰어다녀야만 했고 초원에 물길을 내야만 했다. 거친 파도에 맞서 알량한 가슴을 내밀다가 푸른 멍울도 몇 개쯤은 얻어야만 콩나물시루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유기농 콩나물이란 훈장 하나 가슴에 달고서야 나는 그 잘난 콩나물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이다음에 꼭 아삭아삭 씹는 맛이 일품인 콩나물이 되고야 말 테야!"

머리 싸매고 다짐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꿈이라고 꾹꾹 눌러쓴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그렇지만 결국 콩나물이 돼야만 했고, 구시렁구시렁 노래를 부르다가도 시원한 콩나물 해장국 한 사발에 헤벌쭉 웃었다.

그러니 휴식은 부족했고 쉼은 아쉽게 마련이다. 일하는 즐거움이 어떻고 하는 말은 말로는 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그렇다고 쉼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원하지는 않는다. 일도 일이지만 일이 엮어주는 관계의 피곤함은 오히려 일의 고단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래저래 휴식이 끝나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는 없다. 오죽하면 없던 두통이 생기고 돌도 소화시키던 위장은 무기력하게 업무를 거부할까. 급기야는 '월요병'이란 신규 질병의 탄생을 목도해야만 하기도 한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여기저기서 하나씩 둘씩 질병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급기야 자정을 향해 치닫는 시계를 멀뚱이 바라보던 사람들이 심장을 부여잡고는 꾀병 아닌 꾀병에 시달리게도 된다. 아, 야속한 시간이다 할 밖에.


좀 과장되게 말을 하자면 거꾸로 월요일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은 주말과 휴일의 이틀은 가히 재앙에 가까운 긴 시간이기도 하다. 남들 다 논다는 것에 배앓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홀로 뒹굴뒹굴 구들장과 친구를 먹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주말이면 오히려 문을 걸어 잠그고 꼼짝도 않아 답답하다고 해야겠다. 누가 '방콕'의 명을 내린 것이 아니니 자발적 감금이겠다만 혼자 한적한 곳들을 다니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주말이면 막히는 도로와 북적이는 장소들이 번거로워서 거꾸로 나는 주말병'을 앓고야 만다. 하릴없는 백수의 나날은 고운 손과 희멀건 얼굴을 주었지만 주말의 북적임과 노동의 즐거움을 거두고야 말았다. 한때는 커다란 명찰을 가슴팍에 달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100% 국내산 유기농 콩나물"

희번덕희 번득 가슴에서 반짝이던 명찰은 나름의 뿌듯함이었는데, 지옥철에서의 해방과 동시에 또 다른 멍에를 짊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백수라서 행복해요!"

아픈 발가락이 쏙쏙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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