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허물

by 이봄

오락가락 비 내리다 해 뜨고, 달 떴다가 후둑후둑 비 내리시니 갈피 없이 마음이 널을 뛰었다. 먼 남쪽 바다에서 시작된 바람은 비를 몰고 바다를 건넜는데, 낮술에 취한 듯 갈지자로 휘청이다 섬나라 무른 땅에 폭우를 쏟아냈다. 큰 바람이 그렇게 불더니만 구름을 비집고 볕이 내리쬐던 날 포도청 나으리께 대접이 소홀할까 싶어 장을 봤다. 텅텅 빈 깡통 소리만 요란한 냉장고는 허연 속을 보인 지 오래됐고, 김치냉장고란 이름을 달고 자리를 차지한 녀석도 이미 허울만 좋았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달그락달그락 두 냉장고를 오갔지만 쥐어짠 들 무엇 하나 나올 일이 없었다. 주춤주춤 물러났던 장마전선이 때를 맞춰 북상한다는 달갑지도 않은 소식까지 날아드니 도리가 없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서 양말도 그렇게 신었다. 구름이 볕을 가렸다고는 해도 복날을 지척에 두었으니 바람은 뜨끈했고, 이미 달궈진 도로는 찜질방의 구들이라. 가뜩이나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어깃장을 놓는다. 아, 이런 젠장.... 덥고 추울 때는 꼼짝도 않고 들어앉아 없던 道라도 구해봄이 제격이다. 오죽하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주색잡기에 여념 없던 땡중들도 하안거니, 동안거니 요란을 떨어 구도자의 본분을 흉내 낼까. 그저 덥고 추울 때는 사립문을 걸어 잠그는 게 현명할 터다.

서슬 퍼런 위정자의 꼴사나운 행보에다 아첨꾼들 날을 밝혀 상경하니 복마전이 따로 없고, '나 죽었네' 한다던 여편네는 저 먼저 바다 건너 먼 나라에 나발 불며 돌아치니 물가는 하늘 높은 줄도 모른다 하고, 달도 없는 허방한 길 앞에 두고 오금이 풀릴 밖에. 기껏해야 복더위 두어 달도 이렇듯 두려운데 까마득한 저 세월은 또 어찌어찌 건널는지 가늠도 어렵구나.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에혀, 우라질 놈의 세월 끌끌 혀만 차다 돌아왔더니 소태라도 씹었는지 어찌 이다지도 쓰고 떫다던가.

걸쳤던 옷 훌훌 벗다 말고 양말 한 짝 붙들고서 한참을 망설이니, 허물 한 번 시원하게 벗던 뱀이 민망하여 줄행랑을 놓았다던가. 느닷없이 짝을 잃은 양말 하나 꼿꼿이 몸을 세워 '뭐 그러려니 하시어요' 위로의 말도 건네주고, '그래, 미안하다' 위로도 삼으면서 띄엄띄엄 소나기 내리거든 징검다리 삼아 건너자고 너스레도 떤다. 그나저나 한여름 더운 날에 아픈 발이 옷을 입듯, 그리움 겹겹이 가슴에 쌓았으니 그럼 나는 가슴이 아프던가. 답답하고 실없는 생각들이 장마철 후덥지근한 바람으로 분다. 발도 아프고 지끈지끈 머리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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