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까? 고민에 고민을 불러 앉혀놓고서도 끝끝내 입을 떼지 못하는, 그래서 짧은 점심시간이 멀찌감치 달아나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는 결정 장애자를 위한 메뉴가 '짬짜면'이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어서 좀처럼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미련이 그림자로 매달렸을 때 누군가는 무릎을 쳐 짬짜면을 만들고 메뉴판에 듣도 보도 못한 메뉴를 추가했다. '뭘 먹을까?' 더는 고민하지 마세요. 의기양양 잔뜩 거드름을 떨며 한 자리를 차지한 녀석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었고, 그에 반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와, 대단한 걸!'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은 어찌나 빠르던지 혀를 내둘렀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지만 입소문을 탄 짬짜면은 땅끝 마라도부터 중국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었다. 그만큼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건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민이란 얘기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먹장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질 터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서 커다란 그릇에 담장이 쳐지고 까만 면이 반쪽에 자리를 잡고 누우면 이웃한 나머지 반쪽에는 시뻘건 국물이 용암처럼 끓었다. 보기만 해도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매움이 있었고, 혀끝에 스미는 달달함이 있었다. 공존할 수 없는 맛이 이마를 맞댄 꼴이었지만 나무랄 이유는 없었다. 오롯이 취향의 문제였고 선택의 몫이었다.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겠다는데 굳이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떼어놓을 것까지는 없었다. 슬며시 뒤돌아서서 구시렁거릴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다만, 나는 모호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느낌이 달갑지 않아서 굳이 짬짜면을 선택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렇다고 장금이의 입맛을 가진 것도 아니다. 적당한 화학조미료의 감칠맛에 엄지를 치켜들기도 하고, 고래 한 마리 물을 뿜는 짭조름한 맛에 미소를 짓는다. 며느리도 모르고 딸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손맛은 결국 미원 한 숟가락에 있었고, 대를 잇는 비법으로 길이길이 남을 터였다. 대단한 맛을 논하고 대대로 이어져온 가문의 비법을 따질 처지는 아니었지만 두 개의 맛이 한데 뒤섞이는 것은 어쩐지 꺼려졌을 뿐이다. 오늘은 짜장면을 먹고 내일은 짬뽕을 먹으면 된다 싶었다. 쇠털처럼 많은 날들이 있는데 굳이 오늘에 뒤섞어 잡탕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기다림이면 충분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처럼 마지막 하나 남은 손가락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그만 설렘이다. 내일이면 짜장면을 먹을 수 있어!' 하는 설렘. 누군가를, 뭔가를 기다린다는 건 늘 심장 뛰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까짓 거 하루쯤이야 콩닥콩닥 심장을 뛰어놀게 하면 된다. 발그레 얼굴도 한 번 붉히고 말이다. 가끔은 열 손가락 꼽아가며 긴 기다림에 조바심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입술 삐죽 내밀고서 토라져버린 계집애 달래듯 꽃송이 하나 꺾어 들고 담장을 기웃거려도 그만이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성격을 이야기하던 그가 예로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짬짜면이었다. 문화적 배경과 민족적 특성에 이르기까지 그럴싸한 말과 철학적인 의미를 더해가며 장황설을 떨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구절도 있었고, 머리를 가로저으며 동의하지 못하겠다 몸이 먼저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의 말은 길었다. 청중들을 향해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는 집요한 설득작업이 뒤를 따랐다. 명색이 교수라는 직함을 가슴에 떡하니 달고 있으니 자신의 주장을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었을 터였다. 개똥밭에 자라는 개똥철학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했고, 그만큼 청중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배움과 사색에 대한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달아난 입맛을 겨우겨우 불러들이고서 먹는 밥은 모래를 씹는 것만 같았다. 연신 침을 튀기며 말을 쏟아내는 그를 바라보았다. 강연이 길어질수록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늘어나 있었고, 그런 청중을 바라보며 그는 더욱 목에 힘을 주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긴 그래!"
서걱거리는 밥을 씹어 삼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김치 하나 꼴랑 내어놓고 물에 만 밥을 먹던 남자는 그의 주장에 마침내 수긍의 뜻을 표했다. 그가 하는 말에 동의를 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평소 중국집의 메뉴판을 바라보며 들던 남자의 생각이기도 했다. 화면을 가득 메운 그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남자가 마침내 합의에 이른 순간이기도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굳이 이질적인 두 음식을 한 그릇에 담아 맛을 뒤섞을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짜장면을 그리고 내일은 짬뽕의 얼큰함을 즐기는 게 맞다 싶었다. 하긴, 그것도 어디까지나 남자의 취향이고 선택일 뿐이겠지만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쇠털이 되었든, 새털이 되었든 간에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남았을 터였고, 선택의 순간은 그만큼 많을 게 분명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집에 틀어박혀 바깥구경을 언제 했는지 가물가물한 날들이었다. 냉장고가 빈 속을 들어내고서 꼬르륵꼬르륵 요란을 떨던 날,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했다. 생존의 문제였다. 아무리 귀찮다고 해도 아가리를 벌려 텅 빈 속을 속속들이 까발리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모른 척 지나쳐도 그만인 일이라면 남자는 옷을 주섬주섬 걸치지 않았을 터였지만 생쌀 몇 줌으로 허기를 달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달걀 한 꾸러미에 커피도 한 봉 사들고서 털래털래 마트와 집을 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됐는지 가물가물했다. 어차피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날들이라서 구태여 날짜를 꼽을 이유는 없었다. 집채만 한 돌덩이를 머리에 인 것처럼 무겁기만 한 월요일도 없었고, 나도 모르게 노래 한 소절 흥얼거리게 되는 주말도 없었다. 남의 얘기였고 세상이었다. 호사스러운 말들이 자취를 감추고 부러 외면했을 때 많은 것들이 시들해졌다. 일상의 소소함이 달아난 순간부터 아침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되었으니 해는 뜨고 심드렁 달이 떴다.
겨우 졸음을 몰아내고서 싸구려 커피 한 잔 손에 들면 비로소 아침이 열렸다. 앉은뱅이책상에 반쯤 몸을 기대고 앉아 홀짝대는 커피는 썼다. 향이 깊을 것도 없었고 원두 특유의 알싸한 맛도 없었다. 으레 치르는 의식처럼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어둠은 커피의 쓴 향으로 몰아냈다. 습관이기도 했고 목마름을 달래는 자리끼였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이라지만 훌훌 떨쳐내지 못한 이불처럼,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고 앉았다가 거울 속에 비춘 무성한 수염을 쓸어내릴 때, 그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차라리 온전히 하얗게 샌 수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햇살에 하얗게 반짝이는 수염이라면 멋들어지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못해도 며칠에 한 번씩은 면도를 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겠고, 나름의 멋을 발산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싶은데, 문제는 제대로 여물지 못해 어정쩡한 모양이 영락없는 짬짜면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짬짜면에다 반반 치킨이 따로 없다. 한 번 길러볼까 했던 마음이 줄행랑을 치면 거울을 들여다보며 싱겁게 웃는다. 싱겁고 웃기는 아침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말하는 것만 같았다. 검은 수염 사이로 희끗희끗 세월이 내려앉고 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겨우 찬서리 내리고 숲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도 그랬다. 여름이 막 물러나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듬성듬성 서리가 내렸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 뭐랄까? 그것은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의 발버둥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이내 멈추고야 말 어리광에 불과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남자는 쓸어내렸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먹으면 되지 뭐. 굳이 떼를 써가며 잡탕을 만들어?"
하는 단호함으로 숨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는
"여기 짜장면 하나요!"
일말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주문을 하고 싶었다. 다만, 거기에는 열 손가락 꼽아가며 날짜를 확인해야만 한다. 내일로 미뤄도 될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아니면 잠깐 정차한 역에서 후룩후룩 마시듯 먹는 우동 같은 날인지가 중요했다. '짬짜면이냐? 짜장면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는 분명 내일이 있다는 전제조건을 깔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이 최후의 만찬이라면 잡탕밥이면 어떻고 칼국수면 또 어떠랴 싶었다. 어느 날 문득 반백의 사내가 거울 속에서 웃고 있으니 괜스레 퉁퉁 불은 짬짜면이 아양을 떨었다. 잠깐의 정차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차는 떠날 게 분명했다. 망설이지 않을 터였고 이유를 들어가며 봐주는 일도 없는 게 기차였다. 간이역의 벤치에 앉아 메뉴를 타박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을까? 주저주저하다가는 정말 불어 터진 국수 한 가락도 먹지 못 할 수도 있었다. 벌써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짬짜면의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만 고민하고 저를 어서 드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