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싸리 굵은 줄기 가지런히 엮어 울타리 삼고 품 넓게 앉았던 초가는 고만고만한 애들의 재잘거림으로 늘 시끄러웠다.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에도 까르르 자지러지던 아이들이 꽃처럼 피었었다. 길고 칙칙하던 겨울이 물러나고 하품 가득 머금은 봄날이 찾아오면 마당은 천지사방 뛰놀던 꼬마들의 몸짓으로 가득해서 늘 시끄럽고 번잡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호호 깔깔 흙먼지 풀썩이듯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잔설 녹은 봄날의 아지랑이 같았고, 깊은 산속 개울물 졸졸졸 흐르듯 귀가 즐거웠다. 바람이었고 햇살이었다.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기울도록 강아지 겅중겅중 뛰놀듯 아이들은 웃고 까불거렸다. 농사일로 허리 펼 시간이 없는 어른들은 논이며 밭으로 걸음을 옮기기에 급급했고 집에 남겨진 아이들은 제 알아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어른들이 없는 마당은 그래서 한없이 넓었고 족제비싸리 울타리는 어른들의 세상과 아이들의 세상을 나누는 커다란 경계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가며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래서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것처럼 새로웠고 신비로웠다. 뒤란에 깨진 사금파리 하나에도 이야기 하나 매달려 재잘거렸다. 담장을 따라 돋아난 때 이른 돌나물 몇 닢 뜯어다가 밥을 짓고 나물을 무쳐내던 계집애는 발그레 얼굴을 붉혔고, 그 모습을 멀뚱이 바라보던 사내아이도 덩달아 헛기침을 했다. 한참을 소꿉놀이에 빠져있던 누이가 사금파리 깨진 그릇을 밀쳐내고는 뭐 대단할 거라도 발견한냥 소리를 친다. 누이가 가리킨 쪽에는 겨우내 삭풍을 막아섰던 싸리나무 울타리에 새순이 삐죽삐죽 돋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싸리나무 울타리에 새순이 돋으면 어린 누이는 연하게 자란 새순 하나 질끈 꺾어 들고는 이슬처럼 맺힌 수액 몇 방울 손톱에 바르며 환하게 웃고는 했다. 시루에 콩나물처럼 새순이 돋고 연두색 여린 잎들은 바람에 나풀거렸다. 반짝이는 손톱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누이가 재밌다는 듯 요리조리 햇살에 비춰보던 누이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손톱 좀 봐봐요. 어쩜 이렇게 반짝이나... 몰라요."
말꼬리를 흐리던 누이는 반짝이는 손톱을 보며 입이 귀에 걸렸다. 족제비싸리를 캐다가 줄을 맞춰 심은 싸리나무 울타리는 봄이면 다시 살아나 잎을 틔우고 새순을 키웠다. 울타리 푸른 그늘에 앉아 아이들이 소꿉놀이로 시간을 보냈고 유년의 기억을 쌓았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울타리는 어김없이 다시 살아났다. 싸리나무만 무심히 살아나는 법은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이끼처럼 들러붙은 기억이 있었고, 좀처럼 잊히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다.
울타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푸른 약병에 눈길을 빼앗긴 나는 한동안 그 푸른 약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을 하늘을 닮았다 생각했고, 짙푸른 바다도 닮았다 생각했다. 바람이 불면 짭조름한 파도가 밀려왔고, 어느 때에는 떼 지어 갈매기가 날아오르기도 했다. 짙푸른 약병에 햇살이 내려쬐면 온통 푸른 파도가 일렁였다. 아비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파랗게 번져가는 햇살이 좋아서 때때로 무릎에 얼굴을 묻고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속병을 앓았던 아비는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 나무 울타리에 부서지는 그 푸른 파도는 아비의 오래된 속병이 안겨준 파도였다. 바다를 닮은 위장약의 파란 병은 햇살 좋은 날에 갈매기 몇 마리 하늘에 날렸고, 날것들이 만드는 바다의 비릿함을 풍기곤 했다. 그 바다가 좋았고, 그 하늘이 좋았다. 파란 빈병이 늘어날수록 아비의 병색은 깊어지고, 집안의 쌀가마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어미의 시름이 깊어졌다. 알지 못했다. 다만, 나는 그 파랑이 좋아서 울 밑에 쪼그려 앉아 바다를 동경했고, 끝없는 창공을 자유로이 날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바다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듯했고, 꿈을 꾸듯 더없이 넓은 하늘을 날았다. 푸른 담장 밑에선 언제나 파란 파도가 넘실거렸다.
몸이 쇠약해진 아비는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볕이 좋은 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해바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줄지어 늘어서서 푸른 그늘을 내어주던 싸리나무 울타리가 뿌리째 뽑혀 사라지고, 네모난 시멘트 블록이 자리를 대신했을 때 이미 아비의 세상은 안마당만큼 쪼그라들었는지 모른다. 여전히 파란 약병은 담장 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차도는 없었고 오히려 병세는 더 깊어졌다. 그렇게 담장 그늘에 기대어 있던 아비가 어느 날 자전거를 끌고 장마당으로 나들이를 했다. 오가는 길은 삼십여 리,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길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선뜻 집을 나서 외출을 했다. 반가운 얼굴과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만졌을 터다. 가을이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겨울이 삐죽 고개를 내미는 계절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매웠을 테지만 오랜만의 외출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서산에 해가 기울 무렵 아비는 새끼줄에 꿴 생선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난생처음 보는 생선은 어찌나 크던지 눈이 휘둥그레지기에 충분했다. 커다란 머리에다 거기에 걸맞은 커다란 입을 앙다물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등줄기엔 고등어의 그것처럼 선명한 얼룩무늬를 하고 있었는데 대구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크고 굵은 생선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배는 불뚝하고, 등에는 고등어의 그것처럼 짙고 멋들어진 무늬가 보기 좋았다. 상상에서 뛰놀던 날것이 아닌 당당하게 대양을 유영했을 대구란 놈을 그래서 한참이나 바라봤었다.
"얘야. 바다는 이렇단다. 바다는 너무도 크고 광활해서 쉬이 그 속내를 짐작하기도 어렵거니와 상상하기도 힘들단다"
얘기라도 하듯 불룩했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할 때 대구는 바다를 토해냈다.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오징어 한 마리와 꽁치 두 마리가 비릿한 바닷물과 함께 쏟아졌다. 짐작할 수도 없는 바다가 거기에 있었다. 파란 약병 안에서 출렁이던 바다는 어린 마음을 빼앗는데 충분했고, 대구에 묻어온 바다는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몇 해가 흐르고 더는 울타리를 따라 빈병이 늘지 않던 날 바다는 더 이상 파도가 일지 않았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처럼 요지부동 움직임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간혹 유빙 하나쯤 소리 없이 떠돌았을까?
"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대문에서의 짧은 인사가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묻혔을지 모를 일이다. 멀어지는 나를 오래도록 바라보던 아비는 그날 하늘을 날아올라 바람이 되었다. 하교 길, 고갯마루에 올라 바라보던 집 마당엔 낯선 포장이 하얗게 드리워져 있었고, 점점이 박힌 사람들은 눈물처럼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비는 바람이 되었고, 어쩌면 마당을 덮어버린 흰 포장을 날개삼아 너울너울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툇마루에 기대어 바라보던 세상이 답답했을 터였다. 높다란 담장 속 세상엔 바다도 없었고 푸른 하늘을 활공하는 갈매기 한 마리 없었음은 물론이다. 휘적휘적 들길을 걷고, 높다란 산마루를 허위허위 넘을 수 없을 때 아비는 바람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아비의 파란 약병에서 파도치던 그 바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고, 망망대해 거침없이 유영하던 단단한 대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속병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야윈 몸뚱이 시원하게 벗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 되었다 해도 좋았다. 코끝 쨍하게 바람이 불면 대구 한 마리가 가슴을 헤집고 만다.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 앞에 두면 그 겨울의 바다가 일렁인다. 싸리나무 울타리 봄이면 새싹을 틔우던 그 노란 햇살이 문득 그립다.
아비 가버린 지금. 그 겨울의 바다를 품은 대구탕과 어느 봄날의 파란 약병에서 일렁이던 바다가 가슴에서 시리다. 바다에서도 나는 어쩌면 눈앞의 바다가 아닌 가슴에서 일렁이는 바다와 마주하고 자맥질하는지도 모르겠다. 잊히지 않는 푸른 약병과 바다를 품은 대구 한 마리 땅거미 지는 산마루를 넘나들었다. 조각조각 남겨진 기억의 편린들 하나씩 둘씩 꿰어 맞춰도 온전할 수 없는 시간, 가슴에선 오늘도 아비의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