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이 골짜기를 빠져나와 마을을 서성거리면 가을이었다. 한낮의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고 빨랫줄의 빨래쯤이야 두어 시간이면 마른 갈잎처럼 바스락 말렸지만, 그 위세도 고작해야 낮 시간에 주어진 이빨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해걸음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살갗에 닿는 기온이 달라졌다. 낮이면 산에 숨어있다가 밤이면 출몰했다던 공비들처럼, 골짜기에서 들로 내려서는 바람은 논이며 밭의 고랑을 따라 납작 기어서 마을로 들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의 눈을 피한 잠행은 기껏해야 갈대가 흔들리고, 높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구름이 흘러가는 정도였다. 누구 하나 갈대나 구름이 흘러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마을로 잠입하는 산바람을 눈치채지 못했다. 계절의 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요란스럽지 않게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얼굴을 바꿨다. 겨울이 물러나고 봄이 될 때에도 눈보라가 요란을 떨었고, 동장군이 마을에 눌러앉아 온갖 협박을 일삼던 날에도, 봄은 양지바른 언덕에 숨어들어 꽃을 피웠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꽃은 그래서 볼품이 없었고, 향기도 풍기지 못했다. 누렇게 마른 잎을 위장막처럼 뒤집어쓰고 조용조용 꽃잎을 피웠다. 오랑캐꽃 무더기로 피어도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꽃은 홀로 피었다 홀로 지었다. 눈에 띄어 좋을 게 하나 없었다. 눈에 띄어봤자 구설수에나 오르고, 입방에 찧어 만신창이가 될 게 뻔했다. 가을도 마찬가지였다. 낮엔 산마루며 어둑한 골짜기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어둠이 내리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마을로 숨어들었다.
바람을 등에 업은 가을만 그런 게 아니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풀벌레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좀처럼 눈에 띄지도 않았다. 매미가 울었고, 잠자리가 눈에 띄었다. 메뚜기 몇 마리 풀밭에서 날았고, 먹성 좋은 사마귀가 세모난 머리를 돌려가며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숲은 고요했다. 가끔 바구미란 녀석이 잘라 떨어뜨리는 참나무 가지가 내는 툭툭 소리가 고요를 깰 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산바람이 마을을 점령하기 시작하면 풀벌레가 울기 시작했다. 어디에 몸을 숨겼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날 한 시에 나타나 울어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습공격이었고, 약속된 상륙작전이었다. 연기만 없을 뿐 여기저기서 포탄이 날아다녔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쟁터였다. 밤이면 귀뚜라미가 선봉에 섰다. 까만 전투복으로 한껏 위장을 하고, 달걀 몇 알로 목청을 미리미리 가다듬었다. 가을볕이 서산을 넘어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어둠이 내리면 귀가 따갑도록 울었다. 달걀로 미리 풀어놓은 목청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귀뚜루 귀뚜루 동이 훤하게 트고, 부지런한 개들이 귀를 쫑긋 세울 때까지 지치지도 않았다. 창문 밖에서 우는 건 그나마 들어줄만했지만, 열린 창으로 들어와 집안 구석에서 우는 녀석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농을 다 들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구석 깊은 곳에서 우는 녀석은 살충제도 소용이 없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선 채로 맞이하는 새벽은 멍했고, 두 눈은 퀭해서 우물처럼 파이고 말았다. 기껏해야 까만 콩 만한 놈들이 목청은 또 얼마나 좋던지 말도 못 했다. 모깃불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삶은 옥수수 하나 뜯자면, 흥에 취한 귀뚜라미들 떼로 몰려와 봄날의 개구리처럼 울었다. 마을이 들썩이고 개들은 귓구멍을 틀어막고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밤이 귀뚜라미의 시간이라면 베짱이는 벌건 대낮에도 목청을 돋웠다. 이팝나무 푸른 잎에 베짱이 한 마리 유유자적 앉아 더듬이 한 쌍 낭창거리며 쓰르락 사르락 노래를 불렀다.
"봄날의 땀방울은 소금 한 됫박 짜기도 하더니만, 가을이라 누런 들은 풍년가로 흥겹구나...."
흥겨운 발장단에 엉덩이가 들썩하고, 뭉게 둥게 어깨춤은 흰구름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하는 짓이 어찌나 곱던지 걸음을 멈추고야 말았다. 가던 걸음을 멈춘 것도 모자라 이팝나무 아래에 턱을 괴고 앉았다.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작심하고 앉은 남자는 베짱이를 요목조목 뜯어보기 시작했다. 버들가지 낭창거리듯 길게 늘어진 더듬이며, 이슬 같은 눈망울이 햇살에 반짝였고, 연미복처럼 길게 뻗은 날개 집은 풀잎처럼 단아했다. 저 앙증맞은 입으론 뭘 먹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제 몸뚱이 보다도 크고 튼실한 뒷다리는 나무 하나쯤은 너끈이 뛰어넘겠다 싶었다. 초록으로 치장한 갑주 밑에는 아마도 초록빛 피가 파도처럼 온몸을 돌고 있겠지? 킁킁 냄새라도 맡는다면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날까? 아니면 푸릇한 풀냄새가 날까? 엉뚱한 생각도 떠올렸다. 날개 집에 고이 접어 둔 날개는 오래전 대나무 우산살에 파란 비닐을 씌운 우산처럼 투명하게 바스락거렸다. 귀뚜라미와 수놓던 가을밤의 소나타는 두 날개 비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던가? 은하수 맑은 물은 바람에 찰랑거렸고 베짱이의 노래는 투명하게 허공을 갈랐다. 쓰르락 사르락.... 이에 질세라 귀뚜루 귀뚤, 귀뚜라미가 울면 우수수 별들이 쏟아질 듯 차르르 바람에 흔들렸다.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수수만 년 이어온 풀벌레들의 노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베짱이를 뚫어져라 뜯어보는 남자의 시선을 의식했을까? 베짱이는 짐짓 모른 척 시선을 피하면서 턱을 치켜세웠다. 못 본 척 딴짓을 하는 거 같았지만 베짱이는 으스대고 있었다. 많이 보세요. 어디서 나처럼 기품 있는 베짱이를 보는 건 쉽지 않을 테니 말이에요. 거들먹거리는 모양이라니....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배를 뒤집어 아양을 떠는 고양이의 그것처럼 보드랍고 귀여웠다. 이내 짧은 앞다리를 바삐 놀려 더듬이를 다듬더니만 사르락 날개를 폈다. 이팝나무에 내려앉았던 햇살이 베짱이의 날개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투명한 얼음에 맺힌 햇살이었다. 말고 투명하게 빛나는 날개 위로 가을바람이 불었다.
"어이, 거기 아저씨? 나는 이만 실례할게요!"
쓰르락 사르락 날개소리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처럼 울었다. 녀석의 으스대는 꼴이 결코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고 우스워서 남자는 한참을 웃었다.
의도치 않은 백수의 나날이 해처럼 뜨고 달처럼 이지러졌다. 시간은 또 얼마나 빠른지 손톱 달 하나 떠오르는가 싶더니만, 이내 배를 불리고 몸짓을 키웠다. 반달에서 보름달이 찰나 지간이었고, 다시 손톱 달로 저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뒤도 돌아보지 않듯, 먼지 풀썩이며 떠난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딱히 할 것도 없는 남자의 시간은 황금으로 빛나지 못했다. 오히려 잉여의 시간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먹고 자고 다시 부스스 일어나 밥을 짓는 일상의 반복이라면, 딱히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잉여의 시간이 맞았다. 평소 시간을 금처럼 썼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달을 넘기고 해를 바꾼 시간은 너무도 아까웠다. 겨우 한 개비 꺼내 핀 담배를 통째로 잃어버렸을 때 느끼게 되는 아까움이라고 해도 좋았다. 눈만 감으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아까움이다. 그냥 흘려보낼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만 하지 않을까? 당장 일이야 몸이 아프니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살 수는 없었다. 아까운 것도 아까운 거였지만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기도 했다.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도 하루 이틀이었고, 재잘재잘 쉴 틈도 주지 않는 라디오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끌고 나가 바람을 쐰다는 것도 그랬다. 혼자 찾는 한적한 곳은 집이나 다르지 않았다. 제 아무리 풍경이 좋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야가 탁 트인 바닷가라고 해도 이내 높다란 담장이 가로막아 답답했다.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동행이라도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차피 혼자 보내야만 하는 시간은 장소가 문제는 아니었다. 머리를 싸매고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답이 없었다. 뭔가 몰두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대단한 무엇을 떠올릴 수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만, 무료하다거나 너무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작은 것이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남자는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고, 연필도 몇 자루 깎아 탁자에 올려놓았다. 일기를 쓰듯 하루에 몇 문장의 글이라도 쓰자고 마음먹었다. 듬뿍 먹물을 적신 붓을 들고서 화선지 위에서 씨름 한 판을 벌여도 좋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발목까지 빠진 모래는 요란스럽게 허공으로 튈 터였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바람처럼 시원하겠지. 잔뜩 뒤집어쓴 모래를 털어내다 보면 하루는 그만큼 짧고, 빨리 지나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지만 그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저 일상의 소소함이라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영웅전이나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야 난세의 영웅이 할 일이요, 이야기꾼의 몫이니 감히 기웃거릴 일이 없었다. 각자의 몫이 있었다. 영웅호걸을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면 이미 얼추 비슷한 언저리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을 터였다. 허송세월을 안타까워하며 골방에 틀어박혀 있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남자야 그저 죽어나가는 시간에 손톱만큼의 의미라도 부여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설프고 한심한 글이라면 또 어떠랴. 읽어주고 귀 기울일 사람이 없으면 또 어떠랴 생각했다. 굳이 독자가 필요한 날이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스스로 읽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낭송할 수야 없겠지만, 뚫린 귀에 대고 읽어주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쌓이고 남는 것이 시간뿐인 백수가 심심풀이 땅콩을 아작아작 씹는다 생각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를 날마다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이 백지를 메우고, 때로는 화선지 한 자락을 차지하고 앉았다. 누군가 몰래 훔쳐본다면 끌끌 혀를 찰 수도 있었다. 아니면 박장대소 씁쓸하게 비웃을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좋기만 했다. 지겹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지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것 만으로도 제 할 몫은 다했고, 밥값은 차고 넘쳤다. 오뉴월 호박잎 늘어지듯 늘어졌던 시간이 똘망똘망 정신을 차렸다. 눈빛은 반짝였고, 손끝은 야무지게 굳은살이 박였다. 근육이 풀려 말랑해진 장딴지는 다시 단단해지고 힘이 실렸다. 지루하던 날들은 어느 먼 나라의 신화처럼 아득했고, 끼니를 챙겨야 하는 사이사이로 이야기를 쓴다는 건, 저잣거리처럼 부산스럽고 바빴다. 몇 평 되지도 않는 원룸이었지만 열린 창으론 늘 해 질 무렵의 강바람이 불었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전망대에 오른 것처럼 시야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작은 창이었지만 끝없는 지평선과 마주했고, 가끔은 물을 뿜는 고래도 한 마리 머물다 가고는 했다.
남자는 가끔 아무도 없는 방에서 턱을 한껏 추켜세우고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뜯어봤다. 희끗희끗 귀밑머리가 샌 남자가 거기에 있었지만, 나름 봐 줄만 하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마주하고 가끔은 허세도 떨었다. 그러다 몸뚱이만큼이나 긴 더듬이를 낭창거리며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남자를 마주했다. 초록의 연미복 속에는 투명한 날 개 두 장을 곱게 접고 있었다. 덩달아 가을볕은 온몸에 내려앉아 반짝였다. 손에 쥔 연필이 말릴 틈도 없이 바삐 움직였고, 연필이 움직일 때마다 쓰르락 사르락 소리를 냈다. 노래였다. 가을 노래였고, 하루의 이야기였다. 노랫소리에 맞춰 별들은 우수수 바람에 흔들렸다. 짧은 가을볕이 서산에 기울면 어김없이 귀뚜루 귀뚜라미가 울었다. 말들은 한데 어우러져 노래가 됐고, 이야기로 피었다. 남자의 방은 늘 시끄럽고 부산스러웠다. 밤마다 베짱이와 귀뚜라미가 탁자에 앉아 날개를 펼쳤다. 쓰르락 사르락 귀뚜루 귀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