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수평선 맞닿은 곳, 바다

배 하나 무심히 간다. 바다를 나는지, 하늘을 항해하는지도 모르게

by 이봄

망망대해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너무도 아득한 그곳에 하늘과 바다는 뒤엉켜 하나의 몸뚱이로 떠돌았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는

알 수도 없었다. 다만, 나의 시선이 수평으로

곧게 닿은 그 어디쯤을 경계삼아

위로는 하늘이고, 아래로는 바다가 분명하다 짐작만 할 뿐, 더는 바다와 하늘을 나눌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크게 선회했다.

올망졸망 점점이 떠돌던 섬이 사라지고

아스라한 바다의 수면은 파도도 없어 그저 파랑. 어쩌면 태풍이라도 부는 듯

온통 심술 가득한 파도로 허옇게 눈알을 뒤집어깠을지도 모르겠다만 내 시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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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파랑과 바다의 파랑이 뒤섞여

좀처럼 그 낯빛을 가늠하기 어려운 풍경 속에서 나는 하나의 점으로 떠돌았다.

매어진 끈 끊어내고서 사방팔방 날뛰는

염소의 헛헛한 뜀박질이

어디로 갈 것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듯이

점들이 들어찬 비행기

허공을 선회하며 길을 찾는다.

바다에 그것이 있는지

하늘에 그것이 있는지 누가 알까?

꿈길을 헤매이듯 눈에 들어차는 건

온통 얼버무려진 파랑. 그것은 마치

밭고랑 가득 웃자란 열무를 뽑아다가

소금에 절이고, 붉은 고추에다 쪽파 숭덩숭덩 혹은 송송 썰어 넣고서, 다진 마늘에

고추가루와 멸치액젓 적당히 부어주고

대충대충 버무린 열무김치같아서

이것도 저것도 분명 보이고 만져지는데,

본연의 맛은 어디로 갔는지

새로와서 헷갈리는, 버무려진 것만이 갖는 맛.

그 맛에 혀는 미몽을 걷고, 버무려진 공간에

서 있는 나도 그러하다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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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보이는 것은 분명 고요한 구름바다,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없는 갇힌

점들의 동요, 돌밭길을 타닥이며 구르는

우마차의 곡예, 엉덩이는 들썩이고

날개죽지는 덩달아 춤사위로 신명나는

길에서 벌어지는 걸쭉한 춤판.

정해진 항로를 규칙적인 호흡으로 비행하는

것에도 돌발변수는 늘 상존하고,

우리는 또 그 돌발이 가져오는 순간의

기로에서 치매처럼 찾아오는

절망을 맞이하고, 돌아서며 버릇과도 같은

희망을 꿈꾸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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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그만 일어나! 뭔 낮잠을 이리 길게 자누?"

어미의 낮은 음성과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떨쳐낸 악몽처럼

바다와 하늘 그 모호한 경계를 무너뜨리며

배 한 척 바삐 파도를 갈랐다.

길게 이어지는 삶의 끈처럼 파도는 부서져

허옇게 꼬리를 남겼다.

집으로 이어져야 마땅할 길은 종종

그 등짝을 감추었기에 헨젤과 그레텔은

빵부스러기 뿌려가며 길고 긴

포말을 남기었을까?

제주로 오는 '하늘길', 창 밖에서 벌어지는

것들의 무심함에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난해함과, 절망과, 벼랑에 매달려 피어나는

그래서 그 향기 짙고, 무거운 희망을 본다.

또렷하고 선명한 것 얼마나 될까?

삼라만상 모든 것의 등에는

그림자 하나 대롱대롱 매달려서

순간 초점을 흐리고 눈을 가린다.

五里霧中

우연함에 무너지는, 버무려진 풍경에

배 한 척 항해하듯

안개 자욱한 그 길 위에도 등대로 반짝이는

뭔가가 터덜터덜 길을 걷는다.

오늘도 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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