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울타리를 세우고
문을 걸어 잠그려 한다.
울타리는 견고하고 높아 훌쩍 뛰어넘을 수가 없어서 나는 한동안 울타리를 따라
걸어야만 했고, 어쩌면 아주 오랜 동안 겉돌다가 말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떠랴. 길은 곧기도 하고 구불부굴
어지러울 수도 있다. 게다가 막다른 길은 또 없을까. 길은 그래서 길이다.
부슬부슬 가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바람은 잔잔해서 고요하다.
나는 물결도 없는 수면에 동동동 부유하는
한 마리 소금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 없으니 촌각을 다투지 않아도 되고,
비 오시니 방구석에 앉아
생각의 갈피갈피를 헤집는다.
마음은 잡다한데 실상은 텅 비어서 여유롭게 느껴지는 진공의 시간.
가다가 막혀 주저앉아
올려다보는 울타리는 높다.
끝은 뾰족해서 사납고, 두드림의 울림이 터엉 텅 깊으니 단단하다.
그래도 가던 길이니 뚫어야 하고,
넘어서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
그러라는 말들도 없으니 순전히 자의적인 생각이고, 고집이겠으나
산이 가로막으면 터널을 뚫고,
강물이 막고 서면 다리를 이을 일이다.
타닥타닥 장작을 태워 향기로운 아궁이어도 좋겠고, 아니면 뭉근하게 끓는 콩물에 또르륵 부어질 간수여도 좋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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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柵를 뜯어다가
하나하나 태워내면 결국은 구들을 데우고,
스스로 가두려던 네 마음에도 훈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어서 크지는 않아도 좋을
아궁이 하나 마음에 품기로 했다.
네가 좋아한다던 콩깍지 타는 소리라면
마을마다 돌아다녀 달구지로 모아다가
밤 새 태워도 좋겠고, 적당히 좋은 알불에
밤을 구워도 좋겠다.
아니면 뭉근하게 끓는 콩물에 또르르 부어주면 몽글몽글 맺히는 간수여도 좋겠다.
허공중에 부서질 말들과 마음들이 일순간 순두부 몽글몽글 맺히듯 마음에 맺혔으면 좋겠다. 허무하지 않나?
말이란 가슴에서 수백 수천의 움을 틔우고 슬어지길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자라난
꽃과도 같다.
그 꽃이 길거리에 버려져 바람에 나부낀다 생각하면 아프지 않은가.
너에게로 달려가 아니면 내게로 불어와 향기롭게 꽃향기 뿜어내길 소원하기도 한다.
柵을 태워 冊만 남았으면 좋겠다.
날카롭고 위협적인 가시 뽑고 태우고 나면
너로만 온전한 책 한권 남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사는지도 알고 싶겠고,
다 읽고 난 뒤 좋고 싫음에 분별이 서거든
그 때에 이런저런 말들과 몸짓으로 얘기하고 싶다. 마음이 그렇다.
마음은 끝없이 어디론가 달려가려 하고,
길은 그래서 세상 끝까지 이어져 마음을 잇는다. 마음이 있으니 나는 네게로 가고,
그 가는 발걸음에 길 있으니
다다를 날도 있지 않을까.
그 길의 끝에 온전한 말들이 활자로 피어나고, 갈피갈피 마다 따듯한 온기 전해지는
책으로 남아 너의 뜻이나, 나의 말이 온전한 이야기로 남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