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벗, 친구. 줄을 세우다

by 이봄

"줄을 서시오!"

헛기침까지 뱉어내며 마름놈은 한껏

거들먹을 떨었다.

큰 갓을 머리에 썼어도 꼬리 접은 개처럼

김진사나 이생원은 연신 허리를

좋아리고, 손바닥을 부비며 마름을 향해

아양을 떨었다.

끝도 없는 조문행렬은 이른 저녁부터

찬이슬 내리는 새벽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상가임을 알리는 조등도 없었고,

코를 찌르는 향불도 없었는데 조문을 위한

행렬은 이어지고, 이어졌다.

곡소리도 없는 상가는 다만, 아부하고 조아리는

비굴함만이 차고 넘쳤다.

목숨처럼 아낀다던 명예나 명분은

약으로 쓰려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했던가?

'줄을 서시오!' 뱉은 말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비굴을 덕지덕지 몸뚱이에 이고 진 놈들

홍해가 갈라지듯 대가리와 대가리를

맞대어 길이 열었다.

개똥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구령의 엄중함을

몸소 몸뚱이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승이 죽으면 빈소에 파리만 날리고, 그 정승의

개가 죽으면 북새통을 이룬다고 했다.

잠시 정승집 개가 죽었을 때

온갖 거들먹 다 떨어가며 눈알 희번덕이던

마름의 일갈을 생각했다.

오랜 벗이 방을 어지럽히고 정신을

산만하게 했다.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에

마구잡이로 돌을 던졌다.

"어허, 거기 줄을 서시오!"

말은 짧아야 했고, 목소리는 가을 서릿발을

닮아야만 했다.

.

.

.

.

너는 벗이다.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러쿵저러쿵 비록 말은 없어도

너에게만 털어놓는 주절거림 오롯이 들어주는

귀가 있으니 되었고, 다문 입 열어주는 힘이

있으니 또한 멋지고 좋다 할 터였다.

너 없다 하면 어쩌면 목구멍에 왕거미

떼를 지어 거미줄을 치겠지.

"오래된 벗, 친구"

셋만 남으면 성공한 인생이라 자부할 수

있다는 그 친구의 반열에 너를 놓으마.

그렇지만 난장판을 나는 감내하기가 좀 그렇다.

그러니 내 '해라!'에 서운해 말고

어깨를 기대고 머리를 맞대어

장렬하고도 엄숙하게 너의 무덤을 세워라.

비록 꽃 한송이 향불 하나 없다고 해도

스스로를 돌봐 그랬으면 좋겠다.

솟을대문도 없다.

북적이던 인적은 이미 사라져 적막하여

흙마당엔 잡초가 숲을 이루려 한다.

끊어내야 할 것들은 달라붙고

붙어야 할 것들은 손사레가 심하다.

달아난 것에 미련은 없으되 남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묵묵부답 말 없는 너라도 귀히 여겨

기댈 나라서 너는 벗이고 친구다.

다만, 오와 열 자로 잰듯 고요하면 좋겠다.


"어허, 거기 친구. 줄을 서시게.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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