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을 끓이고

맥주와 소주를 불렀다

by 이봄

밤이 깊었으나 잠들지 않았으므로

친구를 불렀다.

부른다고 해서 모두 호출에 응하지 않음을

알기에 응하지 않을 놈들은 애초에 부르지 않았다.

살생부와도 같은 명단을 옆구리에 끼고서

올 놈과 그렇지 않을 놈을

침바른 연필로 그었다.

꾹꾹 눌러 그은 놈들은 명부에서 지워야 했다.

전화번호부에 빼곡한 이름이 백을 넘기고

이 백을 넘긴다고 해서 뭔 소용일까.

불러 오지 않을 이름은 단지 빈칸을 채우는

악세사리, 고명에 불과한 장식이었다.

긋고 지우고 털어낸 명단에 남은 것들.

짜장면이나 비빔면으로 불리우는 라면 하나와

쓰고 냉정한 녀석 소주, 그리고

맛대가리 없다 타박에 타박을

더하고야 마는 맥주를 불렀다.

물론, 얼쑤 장만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을

담배도 불러 곁에 앉혔다.

주절주절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을 친구는

고작해야 녀석들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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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되지도 않는 사람이 가끔 그를 찾았었으나

그도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다.

마을은 조그맣고 한적해서

개들은 언제나 눈꼬리에 몇 섬의 나락을

매달고 살았고, 목구멍엔 거미줄이 촘촘하게

드리웠다고도 했다.

짖을 일이 없는 개들은 언제나 너른 마당에 대자로

뒹굴거리기 일쑤였고, 빈둥거림에 지친

몇몇은 잡지도 못 할 산짐승을 쫓아 종일

산을 배회한다고도 했다.

늦은 밤, 소주와 맥주를 꺼내고

양은냄비에 바글바글 라면을 끓이고야 마는

남자는 그런 마을에서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더는 찾는 사람도 없었고 더는 찾을 사람도 없는,

혼자 웅웅거리는 티비와 가끔 뜻도 없이

컹컹컹 우는 개새끼가 절묘하게

외로움을 깨우는 마을과 남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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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별을 준비했고,

온통 이별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는

가을의 복판에서 남자도 덩달아

이별을 맞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가뜩이나 구겨진 남자의 삶은

더는 희망이라거나, 내일이라거나 하는

따위의 꿈을 더는 꾸지 못한다고 했다.

어쩌다가 꿈이라고 꿀라치면

"이제 우리 그만해!"

매몰차게 말을 내뱉고는 휑하니 돌아서는 악몽,

등줄기에 식은땀 두어 됫박 쏟고서야

발버둥치며 깨어나는 가위에 눌린 악몽이 전부라고도 했다.

남자는 당당할 수 없는 처지여서

살얼음판을 걷듯 늘 조심조심 삶을

살폈다고 했지만 살핀다고 해서

달아나려는 것들과 이별하려는 마음을

곁에 묶어 둘 수도 없었다고 했다.

어떤 묘책도 없었고,든히 묶을

동아줄도 없었다고 했다.

하긴, 마음이 알아서 하루에도 열두 번

변덕을 떠는데 어느 장단에 나발을 불고

또 어느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랴.

끈은 끊어지고, 마음은 흩어져서 먼지가 됐다.

기약도 없는 이별이 미친놈 발광하듯 춤을 추었다.

게거품 잔뜩 물고서 희번떡이는 눈알로

작심이라도 한 듯 칼춤을 추었다.

"그래, 여기까지가 딱 좋아!"

이왕지사 이별을 꿈꾼다면야 더는 초라하지 않을

결단이 필요했고, 그 결단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았으므로 미적거리거나 주춤거릴

여유는 없었다.

부서지는 햇살에 월도月刀가 번뜩였다.

반쯤 넋이 나간 눈으로 망나니는 입에 물었던

술을 하늘을 향해 뿜었다.

안개처럼 쏟아졌다.

느리거나 혹은 빠르거나

주위를 감싸며 몰려들기도 했고,

늑대의 질긴 추격처럼 목을 조이듯

달려들기도 했다.

짧고 빠른 그래서 헐떡이는 심장을 향해

곧게 날아드는 화살의 일격.

멈춘 듯, 흐르는 듯 경계가 무너져

모호한 시간을 그는 걸었는데

사실, 걸었는지 멈췄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찰나와 영원이 뒤엉킨 시간,

허공을 가르는 망나니의 월도가

부디 예리했으면 하고 남자는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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