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들길 걷다가

꽃甘菊 한송이 만났다

by 이봄

가을은 메말라 바람 한 조각에도 서걱였다.

신작로 너른 길을따라 낙엽은

바스락거리며 떼로 몰려다녔고,

내릴 듯 말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잿빛 구름이

장악하고서 심술을 부린다.

구멍가게에 드러누워 발버둥치는 코흘리개의

공허한 발짓이 길에 가득하다고나 할까.

"그만, 그만 해!"

어미는 눈을 부라리며 아이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운다고 해서, 발버둥친다고 해서

뜻을 이루기엔 계절이 너무 깊었다.

가을의 끝자락, 땅은 땅으로 들은 들대로

마르고 헐벗어 또다른 뭔가를

다독이기에 힘겨웠다.

저 하나 추스리기에도 버거운 세월이 깊다.

세상은 얼빠진 사람 몇몇의 이름으로 도배를 했다.

내려오라! 그만 두라!

목은 쉬었고 가끔 마른기침에 입은 탔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더러운 몸짓은

선무당 작두를 타듯 난잡하고 어지럽다.

향이 타오르고 독경이 웅웅 바람으로 울었다.

독경과 기도는 각자의 바람으로,

제 각각의 낯빛으로 벌겋게 타올랐다.


저 산마루 돌아서면 겨울이라고 했다.

여기는 마른 가을의 끝자락이고 저기는 겨울.

가을이 겨울을 위로해야 하는지

겨울이 가을을 위로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된서리 몰려간 들에는 마른 잎 서걱이며

부서질 뿐, 내일을 얘기할 움 하나 남지 않았다.

기대할 것 없는 그래서 쌓아 둔 내일이 없는

절망의 시간이 길게 누웠다.

.

.

.

.

걷어내고 치워야 할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뭘 기대하며 길을 걸었는지 몰랐다.

헐떡여 넘은 저 산마루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누렇게 뜬 생기 없는 것들의 무덤.

향기없는 조화만이 만발한 꽃집.

뜻도 없는 독경의 반복.

그래서 그러했는가?

이별은 아프고 쓰라렸다.

붉은 피 철철 흐르는데 왕소금 한 줌 상채기에

비벼대는 잔인함이 거기에 있으리라.

혹시나 하는 막연함이라도 해도 기대함이

있다는 건 먼지같은 희망 하나쯤은 남았구나!, 하는 안도의 세월이겠는데

그 시간이 남았는가?


길을 걷다가 걷어내지도 못한 미련에 걸려

휘청거렸다. 돌부리로 돋은 미련, 마음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 시원하게 씻어내지 못하는

몸뚱이의 아둔함. 그것도 미련이겠다.

서릿발 이겨내고서 노랗게 핀

감국 바라보다가

꽃가지 뚝뚝 끊어냈듯이 돌아오지 않을

인연의 찌꺼기 시원스레 끊는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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