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도 없는 햇살에 까무룩 길고양이가 졸았다. 후미진 골목에 내리쬐는 햇살은 시멘트 벽면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놀라지 마라! 얘기라도 하듯 빗물받이 홈통을 꼭 쥐고 살금살금 고양이 옆에 앉더니만 가르랑 가르랑 고양이의 목소리로 졸았다.
하얀 수염을 잔뜩 세우고서 주변을 경계하던 녀석이 마침내 수염 끝에 집중됐던 힘을 빼더니 햇살에 기대 눈을 감았다. 가르랑 가르랑 햇살이 졸고 길양이 한 마리 덩달아 졸았다. 막 피기 시작한 등나무꽃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꽃잎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엔 꽃향기가 잔뜩 들러붙었다. 찐득한 바람이었다. 졸던 고양이가 킁킁 콧등을 씰룩거리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포도송이 같은 바람이 송알송알 불어갔다.
이래도 되나 싶은 바람과 분에 넘치는 햇살이 골목 한편을 채웠다. 행여나 감았던 눈 뜰까 싶어서 까치발을 하고 불었고, 거친 벽면을 움켜쥔 채 내리쬐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웃었다. 물론 속으로만 웃었다. 까무룩 졸고 있는 것들이 사랑스러워서 곁에 쪼그려 앉아 바라보았다.
"어때? 이만하면 됐니?"
줄무늬가 예쁜 등을 쓸어주며 햇살이 물었고 바람이 거들었다. 넉넉했고 넘쳤다. 말간 햇살이 도랑물로 흘렀다. 골목을 돌아 빠져나간 햇살은 빨간 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지나쳐 이웃한 아파트단지로 졸졸졸 흘렀다. 물고기 떼 지어 유영해도 좋을 햇살이었다.